[Review] 해바라기, 응어리를 녹여줄

마음이 따뜻해지는 뮤지컬
글 입력 2015.08.2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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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개연성은 조금 부족했지만
관객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하는 뮤지컬


포스터_수정_2015신진연출가전.jpg
 

공연을 보고 이틀 뒤 「해바라기」를 같이 본 언니랑 있는 데서 아는 오빠가 질문을 했다.

“넌 최근에 눈물을 흘렸을 때가 언제야?”

그래서 이틀 전이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언니도 나랑 우는 시기가 똑같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틀 전 당시 「해바라기」 공연을 봤을 때 언니가 우는 줄 몰랐다. 공연을 보다가 옆에 잠깐 봐도 아무렇지 않게 턱을 괴고 공연을 보고 있기에 ‘나만 슬픈가?’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언니는 남에게 자신이 우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 울어도 눈물을 닦지 않는다고. 뮤지컬 볼 때 눈물이 주륵 주륵 흘렀었다고 했다. 나도 우는 걸 부끄럽게 여겨서 잘 티를 안내는데 뮤지컬 보면서 울컥할 때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서로 울었지만 서로 울었는지 몰랐었던 해프닝.  



줄거리



하늘과 맞닿은 언덕 위, 평범한 주택가.

재만의 집에는 치매할머니 수복과 그녀의 딸 애란, 그리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작가 지망생 우현이 세 들어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뜨거운 여름 날, ‘뱀파이어 증후군’이라는 햇빛을 볼 수 없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연서가 그들의 옆집으로 이사오면서 밤에만 운영하는 슈퍼를 연다. 

어느 날, 수복이 사라진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해프닝 때문에 우현은 연서의 오지랖과 기이한 행동이 점차 호감으로 변하게 되고, 연서는 자유로운 우현의 상상력과 순수함에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행복하고 아름다울 것 같았던 두 사람에게 기나긴 장마가 찾아온다.

연서는 긴 장마를 이겨내고 뜨거운 태양과 마주할 수 있을까?

대지 위에 서서 고개를 들고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뮤지컬 「해바라기」는 ‘신진연출가전’ 작품 중 하나이다. ‘신진연출가전’은 한국 연극계의 의미 있는 사업들을 주최하고 있는 한국연극연출가협회와 연극 - 뮤지컬 중심의 인큐베이팅 공연장을 표방하는 성수아트홀이 젊은 연출가들에게 창작기회를 제공하고 신인 연출가를 발굴하고자 마련되었다. ‘신진연출가전’에 뽑힌 작품은 총 네 작품으로, 「뮤지컬 해바라기」를 제외하고 「고독의 기원」, 「거위가 꿈」, 「정의」가 있다.


뮤지컬은 성수아트홀에서 진행되었다. 서울숲 1번 출구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성수아트홀이 크게 보여서 지도 보지 않고 건물 따라 갔다. 늦게 들어가서 뒷좌석에서 봤는데 배우들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응어리가 있으면서도 마음이 따뜻한 뮤지컬이었다. 그리고 뮤지컬이라 노래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노래에 화음을 넣을 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뮤지컬을 실제로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래서 뮤지컬을 보는구나.’했다.


신진연출가 분께서 연출을 해서 그런지 갑자기 장마가 찾아온다거나, ‘뱀파이어 증후군’인 연서가 햇빛을 보고 쓰러져도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다거나 하는 등 개연성이 약간 부족한 장면들이 있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작품의 내용을 모두 보여주려고 하니 몇몇 장면들을 건너뛴 것 같았다. 자세한 내용이 지속되다가 훅 건너뛰고 다시 자세한 내용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상황에 맞게 캐릭터들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치매 걸린 할머니 ‘수복’이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아들과 남편인 줄 알고 대하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 치매가 걸렸어도 자신이 보고 싶은 아들과 남편은 잊지 않고 그들 옆에 계속 있으려고 한다. 정작 할머니 ‘수복’옆에 있는 사람은 그녀의 딸 ‘애란’이다. 애란은 자신은 몰라봐주면서 계속 남편과 아들만 그리워하는 수복 곁에 있기 싫다. 차라리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너무하다는 생각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수복과 애란 사이에 서로가 감정이 엇갈려 힘들어 하는 상황이 잘 그려졌다.

특히 캐릭터 중에서는 재만이 제일 개성이 있었다. 재만의 캐릭터는 마치 영화배우 박철민을 연상시키듯이 재미있기도 하면서 친근한 매력이 있었다. “됐고, 끝.”하는 대사는 유행어로 밀어도 될 정도다. 힘없는 목소리로 대사를 치면서도 귀에 쏙쏙 박히는 대사, 애드립인지 실제 대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대사도 있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됐고, 끝.

이런 캐릭터들이 잘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닌가 싶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무대에 확 빠져들게끔 잘했던 것 같다. 특히 치매 걸린 할머니 수복의 연기는 진짜 할머니께서 연기에 참여했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재만도 툭툭 내뱉는듯한 대사에 연기가 아닌 듯 자연스럽게 행동을 취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있다. 


“엄마가 내 꽃잎을 떼어내는 것 같다.”

딸 애란이 할머니 수복에게 말했다. 치매 걸린 어머니 뒷바라지를 하느라 속이 수천 번도 더 썩었을 애란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대사라고 생각했다. 애란에게는 꽃같이 아름답고 예뻐야 할 시기인데 그 시기를 수복에게 바쳤으니까.


“술에는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 … 술은 마시게 되면 진심을 담아 말하게 되니까 술술 말한다고 하여 이름이 술이다.”

재만이 우현, 연서, 애란, 수복과 같이 술을 먹을 때 했던 이야기이다. 술에는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 공감되었다. 대부분이 말하길 술이 정말 맛있어서 마시기보다는 그 분위기 때문에 마시는 거라고. 나도 그렇다. 술 같이 마시는 사람들이 좋아서, 그들의 진실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마시는 경우가 많다. 


작품에서 특이했던 점은 소품이었다. 처음 무대를 봤을 때 웬 박스들이 저렇게 많나 했는데 박스 안에서 소품이 나왔다. 박스들은 수복이 모아놓은 쓰레기들이 되기도 하고, 연서가 슈퍼에서 파는 물건들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재만과 애란을 위한 의자가 되기도, 배우들이 나오지 않을 때 숨어있는 곳이 되기도 했다. 보통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사용되는 의자나 탁자가 없었는데도 깔끔함을 유지하면서 박스들을 잘 활용한 것 같다. 


‘해’를 바라는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가진 연서. 그녀의 밝은 모습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녀를 점차 좋아하게 된다. 수복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도 결국 잘 해결되고, 장마가 찾아오지만 늘 밝은 해바라기처럼 결국에는 굴하지 않고 버텨낸다. 수복 때문에 마음이 아프면서, 연서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뮤지컬. 연기들도 다들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신진연출가가 한다고 해서 별로 기대안했는데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이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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