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돈이 모이는 곳에서 예술이 태어난다(2) [문화전반]

글 입력 2015.02.2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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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 주 (1)에선 전반적인 예술과 자본의 관계, 그리고 후원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이번 글은 '후원' 에 대해 자세히 들어감과 동시에, 대표적인 예술 후원자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 가문과 근현대 미국의 구겐하임 가문을 세 파트로 비교해 설명하겠습니다. 




1. 후원의 배경


      메디치 가와 구겐하임 가 모두 예술에 적극적인 후원을 하였다. 공통적으로 두 가문 모두 순수하게 예술을 위하여 투자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익을 위함이 컸다.

      메디치 가문은 지중해 무역의 교통 요지인 피렌체에 자리했다. 그들은 상인들에게 돈을 맡거나 환전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아 크게 번성했는데, 이러한 상업적 성장 배경은 당시 종교와 충돌하는 위치에 있었다. 강력한 세력을 지닌 기독교는 고리대금업, 특히 은행업을 죄악으로 여겼는데 이는 상업 가문인 메디치 가문이 신앙적으로 매우 불리한 지위에 있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문화예술을 통해서 극복하고자 했고, 이는 후원의 방식으로 드러났다. 메디치 가문은 저명한 예술가들로 하여금 거대한 교회를 짓고, 종교화와 종교 조각을 제작하도록 했으며 이에 필요한 자금 또한 지원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천국에 가기 위한 면죄부를 얻는 것과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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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기를란다요, <예언자 스가라라에게 나타난 천사>, 1486


      <예언자 스가라에게 나타난 천사>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벽화로, 위에서 설명한 메디치 가의 신앙적 정당성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왼쪽 하단에 시선을 왼쪽으로 향한 남자는 메디치 가의 수장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천사와 성인이 등장한 성화에 세속인물을 넣어 종교적인 약점을 보완하고자 했다

      더불어, 메디치 가는 정치적 위치에서도 약세에 있었다. 동시대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유력 가문들은 대부분 전 왕가 출신이거나 귀족 가문이었다. 하지만 메디치 가는 금융업으로 성장한 일개 평민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들은 문화예술의 후원을 통해 부족한 명예와 기품을 얻고자 하였다. 또한 피렌체의 다른 가문들보다 훨씬 큰 규모로 예술을 후원했는데 이는 메디치 가가 기존의 가문들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선전하기 위해서였다. , 메디치 가의 모든 후원활동은 신흥가문이었던 메디치가 도시의 중심에 세력의 지반을 굳히려는 목적 하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구겐하임 가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구겐하임 가문이 예술 후원을 하게 된 이유에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먼저, 사회경제학적인 면에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구겐하임 가는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얻은 부를 예술품이라는 형태로 사회에 환원하였다. 이는 그들이 얼마나 돈을 건전하고, ‘투명하게 쓰는지 대중에게 보여주었고, 대중이 긍정적으로 기업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더하여 세금 감면의 혜택까지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미국에는 예술품을 기증하거나 후원한 자에 대해 제도적으로 소득세를 감면해주었는데, 이로 인하여 구겐하임 가문은 정부에 막대한 세금을 내는 대신 예술품을 수집해 약 33%의 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았다.

      또한, 국가적 요구의 측면이 존재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경제와 더불어 문화예술의 1인자가 되고자 하였는데, 기업이 적극적으로 예술을 후원해 이 계획에 보탬이 되어주길 원했다. 따라서 록펠러 가나 구겐하임 가 등은 국가의 요구에 부응해 천문학적 자금으로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수집한 예술품으로 미술관을 세워 예술의 중심지가 유럽 대륙에서 미국으로 옮겨오는 데 공헌했다.



2. 후원의 내용


       메디치 가의 후원은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교류의 방법이 있었다. 메디치 가는 피렌체의 저명한 예술가들을 다른 지방의 왕이나 귀족들에게 소개하여 보내는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1482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1488년 안토니오 다 산갈로를 나폴리에, 프라 필리포 리피를 로마에 보낸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인적 교류는 정치적인 외교정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주문의 측면에서는,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메디치 궁에 머무르게 하면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인문학자 피치아노에게 자신의 별장을 주어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연구하도록 했으며, 보티첼리 등의 화가에게 막대한 양의 벽화와 조각을 주문해 일거리를 끊임없이 주었다. 메디치 가문은 특히 수집을 활발히 행했다.

    

"나는 이 도시의 기분을 잘 안다. 우리들 메디치가 쫓겨날 때까지 50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건은 남는다"  (코시모 데 메디치)

 

       위와 같은 말처럼, 메디치 가는 예술품의 영속성을 잘 알았다. 설령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이 추방당할지라도 가문의 위신은 예술작품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은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골동품을 사들여 피티 궁에 전시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피렌체가 당대 최고의 예술 도시임을 나타내는 증거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방법이 있었다. 메디치 가는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Academia Platonica) 라는 고전 연구의 중심 학교를 세웠는데, 이곳에 몰락하는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많은 학자들이 유입되어 곧 피렌체는 그리스 학문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또한 메디치 궁내에 당대의 저명한 조각가 베르톨도 디 지오반니를 선생으로 삼아 조각학교를 설립했다. 다양한 그림과 고대 흉상들을 젊은 인재들에게 제공했고, 이 조각학교에서 미켈란젤로를 발굴했다. 뿐만 아니라, 1472년 피사대학을 토스카나 지방의 주요 대학으로 정립했으며, 매년 국가에서 받는 보조금의 두 배가 넘는 돈을 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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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메디치 가의 별장을 개조해 세운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


        구겐하임 가문은 수집의 면에서, 1937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을 설립하고 전 세계의 예술품들을 모았다. 이러한 구겐하임 재단의 컬렉션은 3대에 걸쳐 이루어졌다. 1920년대의 추상회화, 1942년 페기 구겐하임의 금세기 화랑의 초현실주의와 뉴욕 화파의 작품들, 그리고 1950년대 이후 미니멀 아트와 개념미술 작품이 그것이다. 그들은 먼저 칸딘스키, 클레 등 추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했는데 이는 20세기 초 유럽 모더니즘을 미국에 이식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유럽은 나치즘 아래 추상 미술을 타락한 미술이라 규정해 추방시켰다. 쫓겨난 미술가들은 미국으로 향했고, 구겐하임 재단이 이들을 후원함으로써 미국은 현대예술의 중요 거점이 되었다. 한편 페기 구겐하임은 구겐하임 재단과 독자적인 노선으로 달리, 마그리트, 피카소 등의 전위예술 작품을 모았다. 그녀의 수집품들은 사후 구겐하임 재단에 기증되어 미술 사조를 아우르는 컬렉션을 남겼다. 그리고 1950년 이후 구겐하임 재단은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바뀌었고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장소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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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구겐하임 가문이 수행한 특별한 역할은 발굴이다. 페기 구겐하임의 금세기 화랑은 수집뿐만 아니라 젊은 미국 작가들에게 데뷔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녀는 신진 작가였던 잭슨 폴록, 로스코 등에게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전속 계약을 맺어 수차례의 개인전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발굴' 은 그녀가 "추상표현주의는 나의 화랑에서 시작되었다" 고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미술 사조를 탄생시켰다. 또한 1947년 화랑을 닫았으나, 자신이 발굴해 후원하던 작가들을 다른 화상들에게 소개해줌으로써 '교류'의 역할도 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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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페기 구겐하임이 발굴한 잭슨 폴록의 작품 <라벤더 안개 no.1>







다음 주에는 세 번째 비교 파트와 현대 후원의 양상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최한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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