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 ERA NEW SKIN
낯선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피할 수 없는 이 거대한 변화 속 BIFAN의 대처법은 명쾌하다.
주저 없이 완전히 새로운 색을 입는 것. 기꺼이. 변화무쌍히.
1997년 '사랑, 환상, 모험'을 기치로 첫걸음을 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호러, 스릴러, SF 등 주류가 외면했던 비주류 장르 영화들을 수면 위로 꾸준히 끌어올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장르 영화제다. 어느덧 서른 번째 여름을 맞이한 2026년의 BIFAN은 장르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는 동시에,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매체적 영토를 과감히 확장해 나간다. 기꺼이 또 한 번의 '새로운 피부(NEW SKIN)'를 덧입고 관객들을 환상과 비극의 세계로 초대하는 곳. 올해 나의 심장을 거세게 뛰게 했던 다섯 편의 개인적인 취향이 잔뜩 묻은 리뷰를 소개하고자 한다.
1. 레위기 Leviticus, Australia

Synopsis.
호주의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시골 마을로 이사 온 17세 소년 나임은 학교 친구 라이언과 비밀스럽고 애틋한 감정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이들의 퀴어 관계는 완고한 종교 커뮤니티와 가족들에게 발각되고, 마을 어른들은 이들을 '치유'하겠다며 강제적인 동성애 전환 치료(엑소시즘) 의식을 거행한다. 끔찍한 의식이 끝난 후, 소년들에게 잔인한 저주가 시작된다. 오직 둘만 볼 수 있는 초자연적인 악마가 목숨을 위협하며 쫓아오기 시작한 것. 소름 끼치는 점은 그 악마가 ‘자신이 가장 갈망하고 사랑하는 사람(서로)’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원하지 않아야만 하는, 지독한 딜레마의 공포가 시작된다.
Note.
악의 기준은 모호하다. 그리고 신의 기준 또한 모호하다. 그 경계를 규정짓는 것은 결국 인간의 연약하고 위태로운 '믿음'이기 때문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마을 어른들에게 동성애는 질병일 뿐이며, 이를 치료하기 위해 수반되는 고통은 불가피한 통과의례다. 그 고통이 자식의 일상을 찢고 영혼을 산산조각 낼 정도로 가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기어이 의식을 거행하고야 만다. 여기서 악마는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바로 가장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한 채, 철저히 혼자가 된 순간을 파고드는 것이다. 소년들은 자신이 갈망하는 존재가 사랑하는 연인인지, 자신을 파멸시키러 온 악마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끔찍한 환각에 시달린다. 그리고 두려움에 질려 서서히 서로를 멀리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혼자가 아닌 서로가 함께 맞닿아 있는 순간만큼은 안전하다. 어떤 사랑은 자신이 만든 '정상'이라는 믿음 아래에서 상대를 통제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를 고통 속에 밀어 넣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아득한 공포 속에서도 함께 서로의 손을 맞잡게 한다. 영화는 신과 악, 그리고 사랑마저도 결국 인간의 손에서 탄생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꼬집는다. 가장 사랑하는 이의 형상으로 찾아오기에 가장 위험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가장 안전할 수 있었던 아이러니. 이 지독한 역설이야말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가장 연약하고도 단단한 사랑의 형태를 대변하고 있다.
2. 사카린 Saccharine, Australia

Synopsis.
사랑에 상처받은 의대생 하나는 인간의 유골 가루를 먹는 기이한 다이어트 열풍에 동참한 후, 사악한 존재의 공포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Note.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낮은 자존감을 채워줄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 나타난 날씬해진 동창은 비틀린 열망에 불을 지른다. 잘못된 다이어트로 체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마침내 방 안에 유골 주인의 원혼이 들이닥쳐도 나날이 줄어드는 체중계 숫자의 매혹에 그녀는 결국 멈추지 못한다. 그것은 더 이상 감량이 아닌 '갈취'였다. 그녀 스스로가 무언가에 의해 먹어 치워진다. 잠에서 깨어나면 집 안의 모든 음식을 비워낸 뒤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몸무게는 나날이 줄어만 간다. 그제서야 멈추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아 나서지만, 눈을 떠보니 이미 자신이 그토록 갈구했던 연인의 아름다움마저 집어삼킨 뒤였다.
영화 <사카린>은 외모지상주의와 체중 감량을 향한 현대인의 집착과 강박을 극단적이고 불쾌한 장면들로 펼쳐낸다. 성분조차 모를 약을 삼키며 즉각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점차 그 알약에 중독되어 가는 모습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유골 복용'이라는 기이한 설정을 빌려와, 우리에게 점차 익숙해지고 있는 이 일상적인 중독을 불쾌하고 극단적인 스펙터클로 몰입감 있게 끌어낸다.
3. 쉿! Silence, Spain

Synopsis.
흑사병이 휩쓸던 14세기, 모계 혈통의 뱀파이어 군락은 '순수한 인간의 피'가 고갈되는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들을 진정으로 위협한 것은 결핍이 아니라, 존재를 감춰야 했던 침묵이었다. 수백 년이 흐른 뒤, 그들의 후예는 스페인의 에이즈 팬데믹 앞에서 같은 위기에 다시 선다. 그리고 깨닫는다. '병든 자'와 '건강한 자' 사이의 사랑,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의 사랑을 향한 공포와 혐오는 시대를 달리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영원함이 수 세기에 걸친 침묵으로 채워질 때, 무엇이 남는가? 뱀파이어 장르를 새롭게 해석한 이 비극적 희극은 자비 없이 심판하고 배제하는 세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어둠과 열망을 탐구한다.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어 온 모든 것을 흔들며, 인간 존재의 심연 속에서 기쁨과 슬픔이 하나로 녹아드는 순간을 응시한다.
Note.
침묵은 과연 죽음인가?
이 영화는 흡혈귀와 인간이라는 오래된 알레고리를 통해 침묵, 낙인, 퀴어, 질병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짧고 굵게 벼려낸다. 흡혈귀는 침묵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들이다. 어둠 속에서 인간의 피를 마시며 조용히 살아간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인간이 죽음을 몰고 올 것이기 때문에. 그런 흡혈귀가 금기된 침묵을 깨고 마침내 입을 열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었고, 그 안에 뿌리내린 믿음이다. 이해받고 싶고, 온전히 드러내 보이고 싶고, 그렇게 사랑하고 싶은 욕망. 그러나 그 믿음은 언제나 증오와 죽음으로 도달했다. 스스로 죽거나, 상대를 죽이거나.
인간 역시 침묵으로 죽어간다. 혐오와 증오가 강요하는 사회적 낙인 아래에서, 그들은 몸부림치며 끊임없이 그 침묵을 찢으려 한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하나, 미움이다. 인간은 흡혈귀가 자신을 떠나려는 이유가 에이즈 때문이라고 믿는다. 흡혈귀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발각되어 미움받을까 봐 그보다 먼저 달아나려 한다.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두려움을 안은 채, 결국 둘은 서로를 끌어안는다. 포옹은 두 존재의 빈틈을 맞닿게 하고, 공허와 냉기를 촘촘하게 메운다.
침묵은 지금 이 순간을 구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리가 필요하다. 소리는 나를 죽일 수 있는 만큼, 나를 살릴 수도 있는 것. 그러나 어느 길을 택하든 죽음은 찾아온다. 영화는 침묵을 찢고 나와 피투성이가 된 채 기어이 입을 맞추는 두 주인공을 통해, 살아있음으로써만 쟁취할 수 있는 사랑과 구원과 믿음의 과정을 매혹적이고도 세련되게 그려낸다.
4. 미아즈마 캠프에서 생긴 일 Teenage Sex and Death at Camp Miasma, UK, Canada

Synopsis.
여러 편의 졸속 속편을 거쳐 팬덤마저 급격히 줄어든 슬래셔 프랜차이즈 영화 〈캠프 미아즈마〉. 열정 넘치는 젊은 여성 감독이 이 시리즈를 부활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메가폰을 잡는다. 그러나 오래전 세상과 등진 채 은둔 중인 수수께끼의 1 편 주연 배우를 찾아간 순간 모든 것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두 여성은 욕망과 공포, 기괴한 환각이 뒤엉킨 핏빛 세계 속으로 끌려가기 시작한다.
Note.
<미아즈마 캠프에서 생긴 일>은 공포가 위치하는 곳이 외부인지, 내부인지를 뒤흔든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인간 내부에 침전된 불안, 트라우마, 수치심이 어떻게 삶의 이야기를 은밀하게 지배하는가이다.
작품 속 ‘리틀데스’는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 인물이 외면해 온 내면의 심연이자 욕망의 반대편에서 자라난 또 하나의 주체에 가깝다. 영화는 이 불안정한 주체성을 강조하듯이 형식적으로도 계속 내보인다. 찍는 자와 찍히는 자, 보는 자와 보이는 자, 감독과 배우, 인물과 관객의 자리는 끊임없이 교란된다. 시선의 권력이 뒤집히는 순간마다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아니면 깊이 잠긴 공포가 우리의 선택을 대신 쓰고 있진 않은지에 대해서 질문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사랑과 욕망은 인물을 구원하기보다 오히려 더 위험한 곳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그 위험 속에서 희열은 피어나고 쾌감이 들이차면서 몸은 생동한다. 피, 쾌락, 죽음의 이미지는 파괴가 아닌 생의 증거가 되었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는 해방은 리틀데스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더는 공포에게 이야기를 맡기지 않겠다는 것에서 이루어진다.
<미아즈마 캠프에서 생긴 일>은 장르적 공포의 외피를 빌려, 인간이 어떻게 객체의 자리에서 벗어나 다시 자기 몸의 주체로 돌아오는지를 매혹적으로 집요하게 탐문해낸다.
5. 옵세션 Obsession, USA

Synopsis.
짝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신비로운 장난감 '원 위시 윌로우'를 부러뜨린 구제불능의 로맨티스트. 그는 자신이 바라던 것을 정확히 얻게 되지만, 이내 어떤 욕망에는 어둡고 사악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Note.
커리 바커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옵세션〉. 찌질하고 회피적인 남자 주인공, 베어는 고백 한 번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기회를 흘려보내다, 결국 스스로 용기를 내는 대신 초자연적 힘에 소원을 맡긴다. 〈사카린〉이 그러했듯, 원하는 것을 스스로 쟁취하지 않고 외부의 힘에 의탁하는 순간 공포영화의 재앙은 이미 예고된 결말이나 다름없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 한 줄의 소원은 그 자체로 이미 재앙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저 사랑받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아니라, 그녀의 모든 것 위에 군림하고 싶다는 욕망. 영화는 이 사소한 언어의 차이 하나로 서사 전체를 관통하는 공포의 근원을 짚어낸다. 어떤 욕망에는 반드시 어둡고 사악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쪽은 언제나 소원을 빈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이라는 잔인한 아이러니.
이 억지스럽고 찌질한 설정을 스크린 위에서 팽팽하게 당겨내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니키 역의 인디 나바레테는 광기와 집착, 그 이면에 감춰진 애처로움까지 넘나들며 공포로 러닝타임을 장악한다. 한 번의 용기를 내는 일이 두려워 비겁한 방식을 택하고, 그 대가로 주변 모두를 위험으로 몰아가는 이 이야기는 언뜻 옹졸하고 답답해 보인다. 그러나 카메라는 그 못난 모습을 끝까지 따라간다. 관객은 그 모습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어느 순간 자신의 과거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찰나의 쾌감을 안겨줄지언정, 그 끝에는 언제나 집착과 통제, 그리고 공포가 기다리고 있다. 〈옵세션〉은 '나'를 가장 먼저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건강한 사랑의 출발점이라는 단순하고도 오래된 진실을, 가장 잔혹하고 비극적인 장면으로 되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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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에서 선보이는 장르 영화의 매력은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서사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강하고 직관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나약함을 정확히 꼬집고, 최악 중의 최악인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우리 안에 기묘하게 용기가 생겨난다. 스크린 속 이야기가 그리는 파국이 지나치게 극단적일수록 현실의 나는 그보다는 낫다는 안도, 그리고 그 어떤 선택의 결말도 이보다는 덜 잔혹할 거라는 응원 같기도 하다.
비 내리던 날의 서늘하고 눅눅한 공기가 오히려 상영관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었던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르 영화 특유의 잔혹함, 그러나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는 그 매혹적인 분위기에 젖어들다 보니, 상영관을 나선 뒤 다시 진행되는 나의 현실도 마치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지나가고 잠시 숨을 고르는 인터미션처럼 느껴졌다. 평소 공포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편인데도 영화제에서만큼은 이야기가 다르다. 객석이 빼곡히 들어찬 극장 안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숨을 참고, 짧은 비명을 나누어 지르는 순간, 공포는 어느새 함께 즐기는 하나의 스릴로 변한다.
여름철 더위는 싫고, 에어컨 냉방병은 걱정된다면, 선풍기 하나 틀어놓고 이 장르 영화들이 건네는 시리도록 서늘한 공포에 자발적으로 잠식당해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