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여성의 결혼은 왜 비즈니스가 되었을까 - 제인 오스틴의 '설득' [도서/문학]

아주 오래된 고민, 사랑이냐 조건이냐

by 윤선주 에디터
2026.07.13 14:55

 

 

131.jpg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그렇듯 <설득>도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이다. 결혼은 뻔한 로맨스의 결말일 수 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위기를 겪고 사랑을 확인한 뒤, 대단원의 막을 내리듯 맞이하는 결혼. 하지만 결혼은 이야기의 끝이 아닌, 사회구조를 보여주는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제인 오스틴은 로맨스의 클리셰 안에서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비즈니스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설득>의 주인공 앤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8년 전 결혼을 약속했던 상대이자, 앤이 파혼을 택하며 밀어냈던 상대다. 두 사람의 이별은 집안의 반대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눈에는 가난한 해군 장교가 탐탁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기에 재산도 준남작이라는 지위도 딸들이 아닌 사촌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그러니 딸들이 누구와 결혼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였다. 어머니처럼 따르는 레이디 러셀마저 이 결혼으로 네가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며 설득하자 앤은 결국 파혼을 택하고 말았다.


8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남자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대령이 되었고 달라진 지위만큼이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돌아왔다. 8년 동안 그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앤은 호기심에 설레면서도 씁쓸해한다. 지금의 자신을 웬트워스가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웬트워스 대령은 나한텐 그렇게 관심을 보이면서, 언니한텐 신사답게 굴지 않네. 함께 산책을 하면서 헨리에타가 그분한테 언니에 대한 인상을 물었더니, 글쎄 ‘언니가 너무 변해서 알아보지 못할뻔했다.’ 라고 하더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했다고!’ 앤은 지그시 굴욕감을 삭였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리라.

 

그녀로서는 복수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는 변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적어도 모습이 나빠지진 않았으니까. 그게 그녀가 그를 보자마자 한 생각이었다. 그가 그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의 모습을 본 그녀의 생각은 변할 수 없었다. 

 

아니, 그녀의 젊음과 청춘을 망가뜨린 그 세월 동안 그의 모습은 더욱 빛나고 남성답게 활짝 피어 있었다. 그의 잘생긴 모습은 조금도 망가진 데가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과거와 똑같은 바로 그 프레더릭 웬트워스였다.

 

- 민음사/91쪽

 

 

웬트워스를 마주하며 앤은 지난 세월을 절감하게 된다. 8년이라는 시간은 그를 만났던 시절의 생기를 빼앗아 갔고, 결혼의 걸림돌이 됐던 경제적인 격차는 뒤집히고 말았다. 집안의 살림을 통제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언니의 씀씀이가 커져 버린 게 이유였다. 귀족다운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며 사들인 것들이 오히려 집안을 기울게 했다. 씀씀이를 줄이면 해결될 일이건만 부녀는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길 고집했다.


레이디 러셀은 엘리엇 부녀를 설득한다. 집에 세를 주고 이사를 가면 지출을 크게 줄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며 차선책을 제안한 거다. 그렇게 엘리엇 가문의 저택은 은퇴한 해군 제독에게 넘어가고 만다. 그렇게 제독 부부의 가족인 웬트워스와 앤의 일상이 다시 얽히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8년 전 그들을 반대했던 이들을 설득해 결혼한다. 경제적 자립도 사회적 지위도 손에 쥐었으니 이제는 누구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재미있다. 두 주인공이 서로를 오해하고 다투다 사랑에 빠지거나,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헤어짐을 후회하다 다시 만나 또 한 번 사랑에 빠진다. 조건과 사랑을 놓고 고민하는 이야기도 많다. 이 모든 것이 흔한 로맨스 클리셰이지만 그렇기에 재미있다.


로맨스만큼이나 흥미로운 지점은 제인 오스틴이 여성들이 처했던 사회구조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여자의 결혼은 어째서 비즈니스가 되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하고자 하는 주인공들은 얼마나 어려운 선택을 하는 것인지, 여성의 삶이 어떻게 억압받아 왔는지를 신랄하게 다룬다. (물론 남성의 사회적 의무와 상속 문제도 함께 다룬다.)


 

“그런데 엘리엇 양, 말했듯이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의 의견은 일치할 것 같지 않군요.

 

아마 어떤 남자와 여자도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모든 역사, 모든 이야기, 산문과 시가 다 앤양의 견해를 반박하는 예를 담고 있다는 걸 지적해야겠군요. 내 기억력이 벤윅만큼만 된다면 지금 당장 오십 가지쯤 예를 들어 보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여자의 변덕스러움을 말하지 않은 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노래와 속담도 모두 여자의 변덕을 이야기하죠. 하지만 당신은 그게 다 남자가 쓴 거라고 하겠지요.

 

“아마 그럴 거예요. 맞아요. 맞아. 책에 쓰인 사례는 들지 마세요. 남자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기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에요. 남자들이 훨씬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손에 펜을 쥐고 있었잖아요. 책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어요.

 

- 민음사/338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책등에 자리한 작가 사진들을 유심히 본 적 있는가. 사진 속 인물 대부분이 남성이다. 500권까지 출간된 세계문학전집에 이름을 올린 여성 작가는 스물일곱 명에 불과하다.


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그 글이 널리 읽히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중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사랑과 결혼을 다루는 통속적인 이야기라며 무시하겠지만, 그녀의 소설들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으며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읽히고 있다.

 

 

제인 오스틴.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