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집념이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강하는 점이다. 그들은 평탄한 길만 걷지 않는다. 굴곡진 인생사 속에서 좌절을 여러 번 맛보지만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앞서기에 쉽사리 꿈을 놓지 않는다. 원하는 꿈을 향한 뜨거운 승부욕이 숨겨져 있다.
음성해설 작가이자 성우로 활동하는 서수연 저자도 그러하다. 아직 국내에서 음성해설이라는 분야가 생소했던 2003년부터 현재까지, 그는 오직 음성해설만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이름 앞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 타이틀은 저자가 걸어온 길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밭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밟은 자국이 그대로 남듯 그의 길이 곧 음성해설의 길이 되었다. 그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묵묵히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음성해설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음성해설은 자막과 엄연히 다르다. 자막이 ‘들리는 것을 읽게 하는 것’이라 한다면 음성해설은 ‘보이는 것을 듣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영화나 드라마, 공연 등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상황을 귀로 들려주는 일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물의 표정, 동작, 배경 등 시각 정보를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때 단순히 보이는 것들을 나열해서는 안 된다. 기계적으로 받아쓰기만 하는 건 진정한 음성해설이라 할 수 없다. 눈을 감고 귀를 열었을 때 작품을 음미할 수 있게 생동감을 불어넣어야 한다.
음성해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저자가 책 속에 남긴 음성해설 대본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 작품을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대본을 읽는 것만으로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상상하고, 유추하고, 작품을 더 깊게 파고들게 만들었다. 실재하는 듯 섬세한 묘사와 표현력은 마치 한 편의 소설책을 연상케 했다.
나는 음성해설 대본을 보며 작가의 상상력이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했다. 없는 것을 지어낼 수는 없지만 있는 것을 더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 상상력은 큰 도움이 된다. 작품 속 모든 장면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그 장면을 보여주는 이유, 연출 의도는 분명히 존재한다. 상황을 건조하게 읊는 것은 작품의 진가를 전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장면을 구성하는 요소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 안에 얽힌 의미를 매끄럽게 연결해야 한다. 장면 속 보이는 모습과 함께 보이지 않는 감정과 분위기까지 아우를 때 작품의 몰입도는 극대화된다. 여기서 음성해설가는 화면과 시청자 사이를 잇는 ‘중재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음성해설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친구, 그 외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를 누군가 소외된 채 살아간다면 건강한 사회라 부를 수 없다. 예술을 향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이 삶을 윤택하게 하듯 그 가치를 모두가 나누기 위해서 음성해설은 필수적이다. 세상은 혼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다.
‘함께’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음성해설처럼 접근성을 높이는 시도들이 더욱 많아져야 할 것이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우린 서로 다르지만 서로에게 가닿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p.2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