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1. 마음을 쓰는 일


 

정치(精緻)한 문장을 쓰는 것이 직업이다. 용어는 정확해야 하고, 인과관계는 한 문장 안에서 완결되어야 하며, 불필요한 수식어나 반복 없이 필요한 정보만 정제해서 과잉도 부족도 없어야 한다.


내가 돈 받고 하는 일이란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논리적 허점을 찾을 수 없어서 기어이 납득할 수 있게. 길고 장황해서 산만해지지 않게, 짧고 비약적이라서 빈약해지지 않게 활자들을 정교하게 깎고 다듬는 것이다. 잘 다듬어진 활자들을 문장 안에 교묘하게 배치하여 형형하게 벼려낸 문장들을 엮어서 글을 쓴다.


늘 목적이 있다. 읽는 이를 설득해서 내 주장이 더욱 합리적이며 타당하다고 받아들이게 만든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전달하여 원리와 원칙을 깨우치도록 한다. 다툼이 있을 때는 상대의 주장을 격파하고 굴복시킨다.


그러나 내가 쓰는 문장들이 정치해질수록, 그래서 내 글이 더욱 뾰족해지고, 매끄러워지고, 빈틈이 없어질수록 내 삶은 빈약해지고, 얕아지다가, 마침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누웠는데 도무지 오늘이 기억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내가 살던 것이 오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남은 오늘이 없었다. 순식간에 얄팍해진 인생이 헛헛하게만 느껴졌다.


그랬다. 오늘이라는 것을 붙들어 두기 위해서는 오늘에 마음을 써야 하고, 마음을 쓰기 위해서는 정말로 마음을 '써야' 했다. 그런데 마음을 문장으로 옮긴다는 것은 뾰족해서도, 매끄러워서도, 정확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마음은 일목요연하지 않고, 오늘은 빈틈투성이에, 인생은 한 문장 안에서 완결되지 않으니까. 나는 글은 쓸 줄 알았지만, 마음은 쓸 줄 몰랐던 것이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글을 처음 배운 할머니들이 쓴 시를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빼뚤빼뚤, 맞춤법도 다 틀리고, 표준어도 아니고 사투리로 쓰인 시 한 편 한 편에 담긴 마음들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다가와 '오늘'에 남았다.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메인 포스터_제공 라이브(주).jpg

 

 

 

2. 말로 글로 다 할 수 없어서, 시가 된 인생


 

2026 오지게재밌는가시나들_공연사진(8)_제공 라이브(주).jpg

 

 

인순 : 사랑. 낭만소녀 75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오리니."


인순은 어린 시절 동네 오라버니에게 푸시킨의 이 시를 처음 들었다. 글을 몰랐지만 귀로 외웠다. 오라버니가 읽어주는 시의 가락에 반했고, 시를 읽어주는 그 사람에게 반했다. 인순에게 시와 첫사랑은 같은 것이었다. 시를 마음에 품고 살았고, 내 인생이 나를 속일지라도 내 인생을 쓴 것 같은 그 시로 위로받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첫사랑 오라버니는 세월이 흘러 무심한 영감이 되었고, 글을 모르는 인순을 은행에 혼자 보내놓고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릴 때는 좋아하는 사람 앞이라 부끄러워서, 나이가 들어서는 글을 모른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인순은 오래도록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시는 남았다. 나에게 시를 알려준 첫사랑처럼, 시는 인순의 첫사랑이 되었다.

 

 

춘심 : 꿈. 팔팔한 나이 88세.


"어렸을 때 가수해쓰마 좋았을 끌 쪼매 아쉬버서."


춘심은 팔복리의 이미자가 되고 싶었다.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갔고, 밤마다 울었다. 남편은 시어머니와 아들 셋만 남기고 떠났다. 무수히 울며 잠든 그리움의 세월에, 춘심에게는 노래뿐이었다. 노래가 없었으면 그 긴 세월 어찌 살았을까. 88세가 된 지금, 춘심은 문해학교에서 글을 배우고 노래자랑 지원서에 자기 이름을 직접 써넣는다. 평생 입으로만 부르던 노래가 글이 되고, 글이 시가 되었다. 춘심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란 : 아픔. 팔곡리 반장 89세.


아들이 물었다. "엄마, 이거 뭐라고 읽어?" 닭이었다. 영란은 읽지 못했다. "선생님한테 물어봐라." 쏘아붙이고 돌아선 그 순간이 수십 년 동안 영란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글을 모른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서울에 사는 아들네 집에도 가기를 꺼렸다. 손자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89세에 한글을 깨친 영란은 이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너를 낳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이제는 내 몸이 성하지 않아서 미안해. 밥 잘 챙겨 먹어." 그 편지가 영란의 첫 번째 시다.

 

 

분한 : 인생. 막내 72세.


내리 딸 자식만 셋, 아들이 없어 분하다고 분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름이 한탄이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부끄러웠고, 이름 자체가 존재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분했던 내 인생을 위로해 주는 것은 70 되어 배운 글이다.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불러 준다. 안 보이던 글자가 보여서, 그동안 안 해 봤던 일도 할 수 있어서 글자를 배워서 좋다. 분한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한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 이름을 자기 손으로 쓸 수 있게 된 뒤부터다.

 

 

2026 오지게재밌는가시나들_공연사진(6)_제공 라이브(주).jpg

 

 

 

3. 시는 언어의 실패



문정희 시인은 말한다.

 

 

"시는 언어의 실패에서 시작한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해 보라.

언젠가 언어로 존재를 투시하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어의 실패가 시의 시작이라는 말은, 시라는 것은 결코 언어에 국한할 수 없다는 뜻 아닐까. 할머니들은 글을 몰랐고, 활자로 옮길 수 있는 언어가 없었기 때문에, 70년, 80년, 90년을 오롯이 몸으로 살았다. 언어도 없이 살아낸 그 세월이 시의 형식을 빌려 더듬더듬 종이 위에 옮겨졌을 때, 한 번 더 삶은 선명해졌다. 감동은 깊어진다.


이 작품이 '가시나'를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 '가장 시 쓰기 좋은 나이'로 다시 읽는 장면은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어디서든 시를 찾을 수 있고, 무엇이든 시가 될 수 있고, 살아온 인생을 시에 담아 누구라도 시를 쓸 수 있다. 시는 천지 삐까리에 있다.

 

아차, 버릇처럼 목차를 잡고, 독자를 한눈에 잡아끌 수 있는 서론에 잔뜩 공을 들였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버렸다. 정치한 글쓰기를 버리지 못했다.

 

글의 말미에 와서야 아차 싶었지만, 내가 당장 어디 가겠나.

 

어쩌면 이것도 내 인생이라면 인생일 것이다. 그러면 이것도 시라면 시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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