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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타벅스 애호가에 가까웠다. 브랜드에 충성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그 나라의 스타벅스에 들러 텀블러를 사 모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스타벅스는 어느 나라에서든, 어느 지역에서든 익숙하게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사실 처음부터 커피 맛을 잘 알았던 건 아니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면서 커피는 내게 필요한 음료가 되었고, 그때부터 조금씩 맛을 구분하게 되었다. 서울의 여러 카페를 다니며 가장 자주 마신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가격에 비해 오래 마실 수 있고, 어디서든 크게 실패하지 않는 음료였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덕분에 좋은 원두를 쓰는 카페, 산미가 뚜렷한 커피, 바리스타가 직접 설명해주는 메뉴도 경험했다. 그 맛을 알고 나니 스타벅스가 커피 맛만으로 사랑받는 브랜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스타벅스를 좋아했던 이유도 결국 맛보다는 다른 데 있었다.

 

스타벅스는 내게 실패할 확률이 낮은 장소였다. 급하게 약속 장소를 정해야 할 때,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을 때, 노트북을 펴고 글을 써야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어느 동네에 가도 있고, 오래 앉아 있어도 비교적 눈치 보이지 않으며, 메뉴도 익숙했다. 스타벅스는 커피 한 잔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팔았다. 공간, 굿즈, 계절 메뉴, 사이렌 오더까지 포함해 하나의 생활 습관을 만들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꽤 설득력 있는 마케팅이었다.

 

그래서 이번 일이 더 안타깝다. 누구보다 분위기와 브랜드의 언어, 공간 경험의 힘을 잘 알고 있을 회사가 왜 이런 맥락을 놓쳤을까. 좋은 마케팅은 단어 하나, 날짜 하나, 이미지 하나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어떻게 닿을지 생각하는 일이다. 스타벅스가 지금까지 쌓아온 고급화도 결국 사람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읽는 능력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판단이 가장 필요한 자리에서 빠져 있었다.

 

2026년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탱크 데이’라는 이름의 텀블러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홍보물에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도 함께 쓰였다. 누군가에게는 제품명을 활용한 말장난이었을지 모른다.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여러 프로모션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었다. ‘탱크’라는 단어는 광주에서 결코 가볍게 들릴 수 없고,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 역시 한국 현대사의 폭력적인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행사는 중단되었고, 회사는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이 남았다.

 

나는 광주 사람이다. 어떤 일은 한 사람의 기억을 건드린다.

 

처음 든 감정은 분노라기보다 당혹감이었다. 자주 찾던 브랜드가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놓쳤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모든 실수에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했다고 단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상처는 의도의 부재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몰랐는지, 왜 확인하지 못했는지, 그 결과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닿았는지 돌아보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 일을 단순히 '불매해야 한다'는 말로만 끝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스타벅스는 일터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장 가까운 카페이며, 누군가에게는 필요의 공간일 수 있다. 나 역시 그 편리함을 잘 안다. 불매라는 단어는 단호하게 들리지만, 실제 일상에서는 훨씬 복잡하게 나타난다. 앱을 켰다가 닫는 일, 약속 장소를 다시 찾는 일, 시간이 붕 뜬 날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막막해지는 일. 만만하게 갈 곳이 하나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보다 더 싫었던 것은 이 일이 곧장 정치적 갈라치기의 재료가 되는 장면이었다.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고 과민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불매하지 않는 사람을 쉽게 비난한다. 어떤 이들은5·18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자기 진영을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데 사용했다. 이 문제는 어느 편이 이기기 위한 소재가 아니라, 우리가 역사적 상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광주의 기억은 정치적 무기가 되기 전에, 먼저 시민들의 죽음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간이다. 그 기억을 불편해하는 마음까지 특정 진영의 감정으로 몰아가면,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하게 된다. 5·18은 누군가에게 역사책 속 사건일 수 있지만, 광주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조금 다르다. 매년 5월이 되면 다시 떠올리게 되는 도시의 일이고, 가족과 학교에서 배워온 일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불매를 선택할 수 있고, 누군가는 사과와 후속 조치를 지켜보겠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너무 쉽게 단정하지 않는 일이다. 불매를 한다고 모두가 급진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불매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역사에 무감각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각자의 선택 앞에 질문은 필요하다. 나는 무엇을 불편하게 느꼈는가.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나는 어디까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가.

 

어떤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브랜드의 모든 선택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주 이용했고 익숙하게 기대었던 곳이기에 더 묻게 된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브랜드는 자신의 영향력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브랜드가 던지는 말들을 얼마나 자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을까.

 

소비는 취향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취향만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사고, 어디에 가고, 어떤 브랜드를 계속 선택하는지는 때때로 하나의 입장이 된다. 물론 커피 한 잔을 마시지 않는다고 세상이 바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한 사람의 소비 변화가 거대한 기업을 단번에 바꾸지도 못한다. 하지만 어떤 변화는 자주 가던 곳을 한 번 덜 가는 일에서, 익숙한 주문을 잠시 멈추는 일에서, 마음에 걸리는 일을 그냥 넘기지 않는 일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문제를 정확히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누구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일을 두고 서로를 공격하거나 편을 가르는 데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제대로 알고, 그다음의 선택을 각자 책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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