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내 마음 하나 이해하지 못할 때는 화나고 슬프고 아쉬운 복합적인 마음이 들어 마음엔 절로 구린 하늘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어떻게 해소하고 맑은 하늘로 복원시켰는지, 내가 해낸 일이지만 정말 내가 손쓴 일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각기 다른 구린 하늘이 떠오를 때마다 당황하는 나를 보는 일은 반복될수록 버거웠다. 두둥실 떠오르는 감정의 원인과 그 원인을 다루는 작동 방식에 이렇다 할 설명서를 도통 모르겠는 채로 살아왔다. 이 드라마를 만나기 전까지는.

 

 

스크린샷 2026-05-10 오전 1.36.22.jpg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을 인생 드라마 반열에 올리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단순히 김고은 배우를 좋아해서 시작했기에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고 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묘사하자면 웃기지만 집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던 중이었다. 운동을 너무 싫어해서 다리는 힘들어도 눈은 즐겁자는 생각에 [유미의 세포들]을 틀었다. 자전거 타이머에 찍힌 25분의 시간과 같이 내 얼굴에 꾹꾹 떨어지고 있었던 건 눈물이었다. 주책맞게 운동하면서, 그것도 사람이 아닌 세포라는 캐릭터가 말하는 순간에 말이다.


그 장면은 ‘우선순위’와 ‘이별’에 관한 장면이었다. 나를 울린 것의 초점은 ‘이별’보다는 ‘우선순위’에 둔다.


인간은 각자 마음속 깊은 곳에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다. 순위는 수시로 변경될 수도 있고 요지부동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유미의 세포들] 시즌1에는 ‘유미’와 ‘구웅’의 우선순위를 언급하는 화가 있다. 연애하면 1순위가 본인이 아닌 남자 친구 ‘구웅’으로 바뀌는 ‘유미’와 연애하지만 1순위가 자기 자신인 것은 변하지 않는 ‘구웅’ 사이에서 사랑과 자존심, 자기방어가 이리저리 뒤섞인 미묘한 심리가 연애에 반영되어 묘사된다. 주목해야 할 건 1순위의 변동이다. 유미도 구웅도 절대 변치 않을 것 같던 1순위가 바뀌는 순간이 있다.

 

 

스크린샷 2026-05-10 오전 1.33.08.jpg

 

 

먼저 유미의 변동이다. 연애하는 내내 1순위가 웅이였던 유미는 웅이와 크게 다툰 후 이별 알람을 맞추고 괴로워한다. 싸움 후 24시간 이내로 웅이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으면 이별을 고하려 했던 유미는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결국 웅이를 찾아간다. 둘 사이 큰 방해꾼이었던 웅이의 여사친 ‘새이’에게 지금껏 느낀 불편함을 직설적으로 얘기하지만, 조력은커녕 유미에게 그만하라고 다그치는 웅이의 말에 유미는 곧 멍하니 우두망찰해진다. 그 순간, 유미의 사랑 세포는 ‘이별 카드’를 소지하게 된다. 웅이와 헤어질 생각이 없는 상태의 유미는 웅이로부터 본인을 지킬 수가 없지만, ‘이별 카드’를 지니고 있으면 유미는 마음대로 본인의 의지를 펼칠 수 있다. 이때 유미의 1순위는 웅이가 아닌 유미 자신이 된다.


유미의 우선순위 변동으로 마음이 저릿했던 것도 잠시, 실내 자전거 위에서 페달을 돌리는 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했던 건 다름 아닌 웅이의 순위 변동이었다. 유미가 이별을 결심한 날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유미의 목소리로 웅이 또한 이별을 직감한다. 나름의 억울함을 품은 채로 유미를 만나러 가는 웅이는 회전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유미의 얼굴을 보며 억울함이 언제 존재했냐는 듯 뭔가를 깨닫는다. 유미의 일방적인 행동에 억울함을 느낄 때 1순위가 자신이었던 구웅은 이별을 생각하는 유미를 보자 곧 1순위가 유미로 변동된다. 아, 타이밍이 안타깝다.


자신을 지키기 위했던 유미의 변동과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이 생긴 웅이의 변동이 그 자체로 서글펐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좋은 연애를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이 1순위여야 하는지, 서로가 1순위여야 하는지, 엇갈려야 하는지. 나아가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나를 잃지 않으려면 1순위는 나이여야 하지만, 상대를 잃지 않기 위해 나를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중한 사람을 놓쳐버릴 수 있다.


글이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다면 이 드라마는 여느 드라마같이 로맨스 드라마로만 여겨지겠지. 시즌3에 이르기까지 상대 남자 역이 등장하고 프라임 세포가 사랑 세포인 유미의 특징에 따라 ‘연애 감정’이 빠질 수 없는 요소긴 하지만, 이건 단순 연애 드라마가 아니다. 그렇게만 치부해 버린다면 애초에 이 드라마를 시작하길 권하지도 않는다. 이건 ‘유미’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

 

시즌1 마지막 화에서 유미는 세포 마을에 방문하는 꿈을 꾼다. 그곳에서 웅이와 해피엔딩을 바라며 소원을 적어 게시판에 붙이려는데 게시판 세포가 등장한다. 정말 웅이와 해피엔딩이길 바라냐는 게시판 세포와 웅이가 본인 인생의 남자주인공이길 믿는 유미가 마주 대화한다. 순수한 얼굴로 유미 인생에 남자주인공은 없다고, 주인공은 유미밖에 없다고 말하는 게시판 세포의 말은 너무도 당연한 진실로 느껴져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나도 내 인생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연인은 이 마음과 별개로 존재해 왔다. 나의 1순위가 나인 것과는 상관없이 내 옆에 밀착시켜 함께 나아갈 또 하나의 삶이 옆에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사랑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나를 지키고 싶은 방어 기제와 그럼에도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해 만들어 낸 건 어쩔 줄 모르고 정처 없이 떠 있는 마음이었다. 연애하고 싶은 건지 나를 가꾸고 싶은 건지, 남들 다 하니까 하고 싶은 건지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건지, 복잡하게 생각 말고 마음 따르는 것이 중요한데 그 흔한 말을 따르는 게 지겹도록 어려웠다.


유미가 당면한 상황에 내 처지를 대입해 공감하는 한편, 유미를 구성하고 응원하는 세포들을 보면서 내 마음도 다독일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혼자 지탱하기 어려운 버거운 일이 생길 때마다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을 영상화한 세포 캐릭터들을 보며 논리적인 위안을 얻었다. 타인이 줄 수 없는 위안을, 내 마음 안쪽 마을에 있는 세포들이 마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 주는 위안을 건네받았다. 마음이란 게 이유도 모른 채로 흘러가는 것이 다반사라 때마다 느껴서 넘기는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내 마음속에 어떤 세포가 원하는 일인지를 상상하고 나면 이상시리한 책임감이 들었다. ‘내 세포는 내가 지킨다.’ 같은…. 내 마을을 이뤄주는 모든 세포들에게 제때 필요한 것을 주고 싶다는 생각. 그냥 어렴풋하게나마 세포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 모든 이해가 모여 ‘나’를 오롯하게 숨 쉴 수 있게 해줬다.

 

 

스크린샷 2026-05-10 오전 1.29.43.jpg

 

 

상상력으로 점철된 이 이야기는 과학적인 요소와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지만 나는 다분히 과학적인 면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성적이지만 이성적이고, 허황해 보여도 논리적으로 인간의 속을 묘사하는 이 이야기가 사람 체내를 구성하는 요소를 설명하는 과학 논리와 비슷하다고 여겨져 두루뭉술하지 않은 안도감을 얻기도 했다. 허구에 사실성이 가미되니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확실한 힘으로 보태졌다.


웹툰을 보지 못했으므로 유미와의 첫 만남은 5년 전이었다. 5년 전 시즌1부터 매해 유미의 일상을 기다리며 얼마 전 시즌3까지 마무리 지었다. 시즌3는 [유미의 세포들]의 종착지다. 방영 전부터 ‘순록’의 존재를 두고 기대감을 품은 이들도 있었지만 내 시선은 줄곧 ‘유미’였다. 정확히는 유미의 ‘성장’. 내 마음이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유미가 적어 내려준 이야기를 지도 삼아 더듬어 보며 그 속에서 성장할 내 모습을 상상하는 건 다가올 미래도 모르고 설레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세포들에게 충실히 귀 기울여 주어야겠지?


유미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 앞으로 소식을 듣지 못해도 풍성하고 이채로운 감정으로 삶을 충실히 채우고 있었으면. 나도 그래볼테니!

 

 

이한별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서투름을 잃지 않는 기세!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