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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영화에서 원하는 건 딱 한 가지다.
요즘처럼 불안으로 가득 찬 시대에, 현실에서는 좀처럼 마주하기 어려운 말랑말랑한 감정들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것.
그런 의미에서 2020년대에도 극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극장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희노애락을 불어넣는, 일종의 대형 산소호흡기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역할을 꽤 성실하게 수행하는 작품이다. 미지의 우주라는 낯선 공간, 그리고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 끝에서 ‘다정함’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건네기 때문이다.
영화는 종말 위기에 놓인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향하게 된 주인공 ‘그레이스’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은 지금껏 매체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지구를 구하는 영웅’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다. 정식 과학자라기엔 어딘가 애매한, 중학교 과학 교사라는 이력부터 그렇다. 그의 성격 역시 용감함보다는 ‘엉뚱함’과 ‘찌질함’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더 좋았다. 영웅으로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 주변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평범한 인물이기에 오히려 감정이입이 더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레이스는 겁도 많고 소심하지만, 그 안에 순수함과 따뜻함을 품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 영화 전반에서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DUMB하지만 BRAVE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이 우주에서 만난 외계 생명체 ‘로키’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관객으로부터 큰 감동을 이끌어낸다.
소심하고 평범해 보이던 한 사람이, 결국 인류와 또 다른 생명체를 함께 구해냈다. 지구에서 제대로 된 가족과 친구 하나 없던 인물이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영웅에 가까워지는 과정은, 과장된 영웅 서사보다 오히려 더 큰 공감과 울림을 남긴다.
우주 한가운데, 선체에 연결된 얇은 로프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걸고 채집에 나서는 그레이스의 모습, 그리고 그런 그레이스를 살리기 위해 다시 한번 죽음을 각오하는 로키의 선택은 단순한 스펙터클을 넘어선다. 평범한 일상 속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지치는 관객의 입장에서, 이 장면들은 묘한 위안을 준다.
저 거대한 재난 속에서도 누군가는 끝까지 희망을 붙잡고 행동한다는 사실이, 현재의 내 삶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낯선 소재와 미지의 공간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결국 지구 위의 관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 작품은 생각보다 더 다정하다.
보고 나면, 평범한 나 역시 누군가를 위해서는 조금 더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조금 덜 버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남는다.
그런 점에서 극장은 다시 한번, 나에게 산소호흡기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