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포스터0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4/20260426052318_ffntdxdp.jpg)
후계동 어느 골목, 오래된 술집 ‘정희네’. 세면대에서 물이 새고, 벽에는 미세한 균열이 번져 있다.
연극 <정희>는 이처럼 사소하고 낡은 고장들로부터 출발한다.
이 고장들은 언제부터였을까? 정희는 왜 고치지 않았을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스핀오프 연극 <정희>는 드라마 속 인물 ‘정희’의 이야기를 같은 세계관 속에서 다른 시선으로 조명한다. 그녀의 인생과 상처,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정희의 성장기를 ‘가게 수리’에 은유해 섬세하게 풀어간다.
친구 동훈의 소개로 젊은 수리공 ‘가람’을 만나게 된 정희는 그간 고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가게 ‘정희네’의 대대적인 수리 공사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자기자신과도 같은 가게가 무너지는 거냐며 안타까워하던 정희에게 ‘고칠 수 있다’는 가람의 말은 큰 희망이 된다. 완전히 망가진 것이 아니라면, 무너져버린 것이 아니라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것이었다. 가게도, 그리고 정희 자신도.
그렇게 정희는 가게를 손보기 시작한다. 동시에 생채기 가득한 자신의 마음도,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과거의 기억도 차근차근 고쳐나가기로 한다.
“뜯어봐야 어디를 고칠지 보여요.”
가게를 고치기 위한 가람의 진단이었다. 벽도, 사람의 마음도, 우선 뜯어보아야만 어디를 고칠지 알 수 있다. 결국 내면 치유의 첫 걸음은 쓰라린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데에 있다. 그렇게 정희는 지나간 시간 속 자신의 상처를 마주한다. 학창시절 하나뿐인 가족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의지하던 연인 상원이 어느 날 갑자기 불교에 귀의해 곁을 떠나고, 혼자가 되어 끔찍한 외로움을 견디는 현재까지. 과거의 정희가 어떻게 지금의 정희가 되었는지 관객은 정희와 함께 그 아픈 기억을 들여다 본다.
현재의 정희와 과거의 어린 정희가 무대에서 교차하는 회상 장면 속에서 현재의 정희는 과거 어리던 자신을 바라보며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에 미소 짓기도, 다시금 슬픔에 잠기기도, 처절한 울화를 쏟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혼자 모든 것을 감당했던 자신을 안쓰러워하고, 그 가운데 당차게 버티던 스스로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웃는다. 같은 상처가 서로 다른 시간대, 서로 다른 표정을 하고 존재한다. 외면하고 눌러담던 기억을 마주한 순간 단단한 벽이 자리했던 정희의 마음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무너질 것 같아 버텨왔던 가게의 벽은 정희와도 같다. 그러나 정희는 그 벽을 기워 쓰는 대신 아예 부수고 새로 만들기로 한다. 고장난 곳을 외면하고 슬픔을 꾹꾹 눌러담으며, 고치는 일은 늘 나중으로 미루던 정희가 그 벽을 힘껏 내리쳐 부수는 순간, 벽 너머로 볕이 들고, 바람이 통하고, 잃었던 것들이 돌아와 제대로 인사를 건넨다. 그제서야 정희는 사랑받고 싶어서, 상원의 마음에 걸리라고 스스로에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던 치기 어린 마음을 보내준다. 그렇게 비로소 자신이 지나온 시간에 작별 인사를 하고, 이전 챕터에 새로운 문을 달아 꼭 닫아준다. 평화로울 정靜, 기쁠 희喜. 그 이름이 품은 의미를 정희 스스로 마침내 건네받는 순간이었다.
정희는 참 짠한 인물이다. 온 세상의 억울함을 혼자 감당해온 슬픈 사람이다. 사랑이 고파 악에 받치고, 온기가 고파 실없어지는 사람. 울지 않으려고 웃는 안쓰러운 사람.
그렇지만 마침내 용기를 내 자신의 이전 챕터에 문을 꼭 닫아주고, 스스로의 행복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사람. 그렇기에 누구보다 대견한 사람이다. 늘 울거나 취해있거나 울지 않으려고 웃던 정희가, 막이 내릴 무렵 진짜로 홀가분한 미소를 짓는다. 관객은 퇴장하는 그녀를 향해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삶은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고,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또 사람에게 치유받는다. 별것 아닌 일에 무너졌다가 또 별것 아닌 일에 일어설 힘을 얻는다. 친절하지 않았던 인생에 금이 간 자신의 벽을 외면한 채 그저 버티고 있다면, 연극 속 정희를 통해 ‘뜯어고칠’ 용기를 얻기를, 그렇게 상처를 어루만지고 스스로를 위한 걸음으로 새로운 날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