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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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불안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의 작가 허나영은 자신의 삶에서 얻었던 마음의 상처와 고난을 예술 작품과 예술가의 삶을 통해 치유받는다고 회자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피카소, 이중섭, 르네 마그리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 등 많은 예술가의 작품과 그들의 연대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우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나는 허나영 작가가 서술하는 그들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며 가슴 속 깊이 남아있던 흉터들을 위로받는 기분을 느꼈다.


학교에서 불문학 공부를 했을 때도 나는 시몬 드 보부아르,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여성 작가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그들의 삶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큰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소개하는 예술가 중 여성 화가들의 삶에 더욱 집중하여 들여다보게 되었다.

 

 

 

부서진 ㅡ 역할들 사이에서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지만 그의 연인이자 모델인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었다.

 

베르트 모리조는 로코코 화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1732~1806) 집안 출신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둘째 딸이었다. 어머니는 딸들을 당대 최고 화가에게 배우게 하며 아틀리에를 마련하는 등 최고의 지원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명문 가문의 '여식'이라는 꼬리표를 지울 수 없었다. 명문가 여식들의 사회적 활동은 일종의 '보호'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려 있었고, 언니가 결혼하며 화가의 길을 접고 어머니 또한 마네를 향한 베르트의 마음을 치기 어린 투정 정도로 보며 끝내 당대 여성이 가진 사회적 역할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다행히 이런 베르트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에두아르 마네의 동생인 외젠 마네(Eugene Manet, 1833~1892)가 남편이 되며 베르트는 남편의 성이 아닌 '모리조'를 유지하면서 화가의 삶을 계속 이어나갔다. 베르트는 <창문에 걸터앉은 소녀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 딸인 줄리의 모습을 계속 화폭에 담아냈고, 그녀의 삶은 비록 끝은 '아내이자 어머니'의 삶이었지만 끝까지 화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례적인 여성 화가였다.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하며 이와 닮은 부분을 베르트 모리조의 삶에서 읽어낸다. 동생이나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는 대신 자유롭게 글을 읽고, 쓰며, 공부하고 더 많은 삶의 기회를 쟁취할 수 있었을 과거의 여성들이 떠올랐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지금 내게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이, 어쩌면 내가 '베르트 모리조'의 '줄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보다 ㅡ 아픈 마음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의 삶을 언급하는 허나영 작가는 당시에는 절망적이었지만, 이제는 덤덤해진 말투로 고단했던 육체를 이끌고 육아와 작업을 하다 병을 얻었던 순간을 회고한다.

 

프리다 칼로도 대형 사고를 겪어 온 몸에 철심을 박는 육체적 고난이 있었던 화가다. 그러나 그녀가 더욱 고통받았던 건 육체도 육체지만 화가이자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의 방탕한 생활이었을 것이다. 계속된 불륜과 외도 생활은 프리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고, 프리다는 그것을 심장이 뜯겨나간 자화상인 <두 명의 프리다>로 심적 고통을 표현한다.

 

왜 계속해서 남편을 용서하고 받아주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프리다는 전보다 더욱 성장한 내면으로 리베라를 마주했다는 것이다. 마냥 용서하고 받아주는 것이 아닌, 특정 조건을 걸며 스스로 관계의 주도권을 갖고 행동했다. 프리다의 삶은 물론 고통이었지만, 프리다 칼로는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했다. 삶의 괴로움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이를 다양한 작품으로 표현해낸 프리다 칼로의 모습은 실로 경외스러웠다.

 

작가는 이러한 프리다의 모습에 깊은 존경심과 연민을 느꼈다. 프리다 칼로만큼 자신의 삶이 고통스러웠는지 돌아보며, 그녀의 작품들을 통해 마음 속에 묵혀 둔 감정을 해소하기로 결심한다. 물론, 누구나 겪는 고통의 강도는 다르고, 자신의 삶에서 각자만의 고민과 고난, 고통이 있다. 누가 더 아프고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고 헤쳐나가며 해소하는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너무 과거의 파편에 사로잡혀 나 자신을 난도질하진 않았나 하는 생각에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다시보게 되었다.

 

 

 

단죄하는 ㅡ 두 손


 

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 1562~1647)의 딸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4)는 딸의 그림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아버지 덕분에 공방에서 그림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딸을 가르치는 동료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 1580~1644)가 아르테미시아를 성폭행하고 만다. 아버지는 크게 분노했지만, 주변은 쉬쉬하는 분위기였고 오히려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둘의 결혼을 통해 사건을 수습하고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타시는 알고보니 유부남인데다 살인사건의 용의자였기에 추방당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성폭행으로 처벌받았은게 아니라는 것이다. 살인 범죄력 때문에 추방당한 것일 뿐이었다. 아르테미시아는 믿고 의지하던 아버지와 그림 덕분에 자신을 유지했지만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결백을 증명하고,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런 아르테미시아는 여성을 다른 시선으로 그림에 담게 되었다. 이제껏 유디트의 매력만을 강조해온 그림과 달리 우리가 아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의 유디트는 강인하고 결연한 눈빛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가차없이 베고 있다. 아르테미시아는 이후 자신을 성녀 캐서린에 투영해 '결백'과 '순수'의 입장에 서 있는 자신을 용기있게 그려낸다.

 

작가는 아르테미시아가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굳건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고 회자하며 이에 감탄한다.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과 영혼이 산산조각 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이 아픔을 딛고 '살아갔다.' 당시 남성 화가 위주의 작업실에서 아르테미시아가 겪었을 고난을 생각하니, 나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정신력이었다. 유디트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그림 정도로 이해하고 있던 내게 그녀의 삶이 투영되자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장면이 사뭇 다르게 보였다.

 

남성 화가들의 삶이 주로 개인적인 고통과 사회를 향해 뻗은 고뇌의 경계에 걸쳐져 있다면, 과거 여성 화가들의 삶은 생존과 투쟁에 가까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화가로서의 여성들과 작가로서의 여성들, 그들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 현재의 나는 좋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 두 분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에서 원하는 만큼 공부하게 된 것이 행운과 같은 일이지만, 한때 투쟁적이었던 그들의 삶을 기억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의지와 힘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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