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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올바르게 진화했을까? 올바르게 진화했다면, 왜 이렇게 공허한 걸까? 진화를 위해서 없애 버린 무언가가 나를 이렇게 공허하게 만드는 걸까? 연극 <간과 강>, 현대인의 만성적인 통증이 되어 버린 상실감을 연극적 언어로 풀어낸다.

       

 

이래저래, 이 세계의 마지막 날일지 모르는 하루. 한강이 보이는 낡은 빌라에서 부부인 L과 O가 그 하루를 함께 보내고 있다. L의 알 수 없는 어깨 통증이 심해져 가고, L과 O는 집에 언제 생겼는지 모를 커다란 구멍을 내려다보며 농담을 주고받다 서로의 진실을 대면한다. 집을 나선 L은 한강의 곳곳을 방황하며 서서히 기울어가는 이 세계의 깊은 공허를 만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인간과 다르게 진화해 온 인어의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연극 <간과 강> 시놉시스]

 

 

 

공허함에 공명하기


 

우리는 왜 연극을 관람할까. 연극이 다른 예술 장르와 구분되어 수용자에게 줄 수 있는 효용은 무엇이 있을까. 현장성이나 순간성 같은 답변들이 떠오른다. 같은 대본으로 같은 배우가 연기를 하더라도, 그 ‘순간’, 관객들과 퍼포머가 함께 만드는 공명의 카타르시스는 다른 어떠한 것으로 대체되지 못한다고. 그 매력에 한 번 빠지게 된 사람은 지속해서 그 전율의 순간을 찾게 된다고. 이러한 전율의 순간은 강렬한 감정과 쉽게 연결된다. 에너제틱한 록 넘버나 배우의 격한 감정 연기들, 이러한 순간이 표현하는 명확하고 강렬한 감정은 퍼포머가 표현하기도 비교적 쉽고, 수용자가 공감하기도 쉽다.

 

그러나, 일상에서 매번 행복하고 강렬한 순간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느껴지는 은은한 불쾌감, 무언가를 잃은 것 같다는 상실감 같은 것들은 어떠한가? 만성적인 통증 같은 공허함은 분명히 존재한다. 작품을 감상하며 이러한 감각에 공명할 수 있을까?

 

연극 <간과 강>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 고요한 감각을 무대 위의 퍼포머와 함께 느낄 수 있게 한다.

 

 

 

<간과 강>의 문법: 언어로 가두어 설명할 수 없는 고통


 

이 작품에는 <간과 강>만의 문법이 있다.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일상적인 말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어렵게 느끼게 한다. 그 괴리 속에서 관객들은 인물들이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과 말의 어긋남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계속 고민하며 연극을 관람하게 된다.

 

<간과 강>은, 인물 간 대사의 어긋남을 통해 L이 느끼는 ‘고통’의 근원을 표현하려고 한다. ‘어깨 통증’으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증상이다, 하고 단정 지어 설명할 수 없다.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 같고, 아픈데 어떻게 아픈지는 모르겠고, CT상으로도 의사의 소견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어떠한 것이다’라고 언어로 정의해버리는 순간, 그 고통에는 상실이 일어나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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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간과 강>은 일상적 대화의 어긋남으로, 조명, 영상, 몸짓, 음향과 무대로 그 고통을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가 진화하면서 잃어버린,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관객들이 느끼도록 한다.

 

고요하고 어두운 극장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눈앞에 보이는 그 무대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관객이 ‘나, 저거 뭔지 알 것 같다’라고 생각한다면, <간과 강>의 문법이 성공한 것이리라. 책이나 영상물로는 전달할 수 없는, 내 앞의 살아있는 사람이 전달하는 에너지만이 관객들에게 ‘그것’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겠지만.

 

 

 

나는 인간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 연극에서 ‘그것’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나는 ‘첫사랑’ 소년의 대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나는 인간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작중 결핍을 느끼는 인간들은,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했다. 내일을 살기 위해서, 당연히 찾아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미래를 위해서. 그런데 그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당장 집안에는 싱크홀이 생겼고, 언제 일상이 무너질지 모른다. 그러자 그 포기한 무언가가 생각난다. 그 포기한 무언가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술을 찾고, 약을 찾고, 그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병원에 간다. 그러나 병원은 그게 무엇인지 소명하고 아픔을 해소하는 대신, 아픔이 느껴지지 않도록, 그 통증을 ‘덜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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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덜 느끼는 것, 그것이 인간 진화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자신으로 진화했을지도 모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발라 먹을 수 있는 것, 그 정도로 무감각한 것이 인간이다. 작중 L은, 그리고 첫사랑 소년은 너무 많이 느끼는 자신들이 인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어쩌면 자신으로 진화할 수도 있었던, 인어에 대해 생각한다.

 

 

 

잊고 있던 ‘첫사랑’ 마주하기


 

인어. V, L의 첫사랑. L은 자신의 첫사랑 V를 아주 잊고 있다가,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 또 L의 첫사랑 V는 인어로 표현된다. 나는 작중 계속 언급되는 ‘첫사랑’이 ‘근본적인 나’를 이야기한다고 느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상실하고, 진화를 통해 없애 버린 인간과는 다른 ‘나’. 그것이 첫사랑이자, 인어이자, V라고 비유된다고 느꼈다. 그 존재를 잊고 있다가, 어렴풋이 인지했다가, 그리워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그와 조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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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L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잠을 설칠 동안 코를 골며 자는 O를 지나,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기 전의 인간인,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V를 만나고, End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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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좋아합니다. 폭넓은 문화 향유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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