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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19세 청년 시몽의 심장이 51세 여성 ‘끌레르’의 몸에 이식되는 24시간의 과정을 그린다. 무대 위 단 한 명의 배우는 시몽, 그의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 남겨진 가족,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그리고 장기 이식 수혜자 등 각각의 인물과 그들을 관통하는 서술자까지 다양한 태도를 연기한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 『플라토노프』에서 빌려온 문장, “죽은 자는 매장하고, 산 자는 수선해야 한다”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관통하는 서늘하고도 뜨거운 골격이다.


‘수선’이라는 행위는 본래 생명 없는 사물을 고치는 기계적 공정을 뜻하지만, 이 작품이 향하는 종착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회복에 닿아 있다. 우리의 장기는 제각각의 기능을 수행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몸에서 떼어낸 장기는 그 순간 인격을 거세당한 채 ‘육신의 조각’으로 남는다.


우리가 텍스트를 읽는 눈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의식하지 않고 그 눈을 온전히 ‘나의 눈’ 혹은 ‘당신의 눈’이라는 존재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듯,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어진 육체에 특별한 의미와 서사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지점에서 장기는 단순한 부품을 넘어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가 된다.


특히 이 작품이 1인극의 형식을 취했다는 점은 공연을 기다리는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홀로 무대에 서는 배우는 과연 심장의 주인인가, 혹은 수혜자인가? 이에 대한 궁금증은 배포된 자료를 통해 '교차와 전이'의 형태일 것이라 짐작해 볼 뿐이다.


한 명의 배우가 그 모든 인물과 과정을 수행한다면, 이는 단순히 1인 다역의 기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몸 자체가 심장이 통과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그릇’이 된다는 선언이다. 모든 분절된 과정을 한 명의 신체로 통과시키는 이 시도는, 장기 이식이라는 긴박한 릴레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가장 강력한 연극적 장치이며, 신체 예술로서의 연극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적확한 표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죽음 앞에서 육체는 의미를 잃고 의사의 손에 들린 심장은 차가운 ‘펌프’로 정의되지만, 남겨진 부모에게 그것은 여전히 사랑하는 아들의 파편이다. 관객은 이 이질적인 시선을 동시에 목격하며, 의학적 기술이 성공하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감각의 다층성을 경험한다.


장기 이식은 단순히 생물학적 기능을 전이하는 행위가 아니라, 떠난 자의 역사를 이어가고 남겨진 자를 위로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인공적인 의례다. 드라마 <키딩>에서 죽은 아들의 심장을 품고 달리는 마라토너의 고동을 들으며 비로소 숨을 쉬던 아버지의 모습처럼, 이 수선의 과정은 존재의 소멸에 저항하기 위해 인간이 발명해낸 숭고한 서사다. 파도가 모래밭을 적시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듯 생명의 순환을 긍정하려는 이 오만하지만 가냘픈 시도가 무대 위에서 어떤 박동으로 되살아날지, 그 찬란한 수선의 현장을 조심스럽게 기다려본다.


연극<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26년 1월 13일 국립정동극장에서 개막한다.

 



1. 포스터_연극,살아있는자를수선하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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