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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미술 작품을 ‘본다’고 말한다. 전시장에 서서 눈으로 껍데기의 색과 형상을 훑고 지나가는 행위, 즉 '볼 견(見)'의 상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술 에세이스트 이소영의 신작 『그림 읽는 밤』은 독자에게 ‘본다’는 동사 대신 ‘읽는다’는 동사를 제안한다. 여기서 읽는다는 것은 외형을 묘사하는 수준을 넘어, 그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볼 관(觀)'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일이다.

 

학부 시절 교수님께 들었던 견(見)과 관(觀)의 차이를 떠올려본다. 단순히 시각적 정보를 수용하는 것이 ‘견’이라면, 자신의 관점과 통찰을 투영해 대상의 깊이를 길어 올리는 것이 ‘관’이다.

 

이 책은 저자가 48점의 그림을 통해 ‘견’에서 시작해 ‘관’으로 나아가는 흐름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화가의 붓질을 찬찬히 응시하다가, 그 사실 너머에서 자신의 경험과 화가의 생애를 길어 올리고, 끝내 자신이 아껴둔 문장으로 그림의 마지막 단추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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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라는 렌즈로 다시 태어나는 그림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림과 문장을 엮는 방식에 있다. 저자는 다독가답게 그림 한 점 뒤에 자신이 수집해온 인용구들을 배치한다. 문자는 그림이라는 추상적인 세계를 구체적인 사유의 영역으로 안내하는 가이드라인이 된다.

 

예를 들어, 조르조 모란디의 차분하고 미니멀한 정물화 앞에서 저자는 샤를 와그너의 『단순한 삶』 속 "기쁨과 단순함은 서로 오랜 두 친구와도 같다.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단순하게 만나라"는 평범하지만 묵직한 문장을 꺼내 든다.

 

정적이고 단조로워 보이는 모란디의 병들 사이에서 시간의 퇴적과 일상의 태도를 읽어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문자가 없는 그림에서도 우리는 한 편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색채 또한 언어라는 피에르 보나르의 주장처럼, 저자는 캔버스 위의 색을 문장으로 번역해 독자의 마음속에 이식한다.

 

책의 중반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바다 위의 수도사>에서는 내가 보는 관점을 직접 기록해보기도 했다. 작가는 아주 먼 곳에서 풀샷으로 수도사를 담아낸다. 성냥개비처럼 흐릿하고 가냘프게 서 있는 수도사 위로 어두운 하늘이 압도적인 여백으로 군림한다. 그 기이한 구도 때문일까. 수도사는 자신을 둘러싼 그 거대한 풍경의 무게를 기어이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은 그에게 너무 무거워 보이고, 검은 바다와 스산한 짙푸른 하늘은 그를 한없이 춥고 외롭게 만든다.

 

왜 그는 저곳에 홀로 서 있는 것일까. 실제로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외딴 바다 위 돌발판에 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시야를 가리는 것 하나 없는 그곳에서 마주하는 하늘이 얼마나 낯설 만큼 광활한지를.

 

 

 

밤을 위한 큐레이션, 그리고 남겨진 여백


 

책의 제목인 『그림 읽는 밤』은 이 책의 물리적 구성과도 무척이나 닮아 있다.

 

낮의 소란함이 가라앉은 밤,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그림 한 점과 글 한 편을 음미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의식이 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책 곳곳에 배치된 여백이다. 저자는 자신의 감상을 강요하는 대신 독자가 직접 문장을 필사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적을 수 있는 자리를 비워두었다.

 

일상의 속도에 지쳐 시력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48번의 밤 동안 저자의 시선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손끝에서도 당신만의 ‘읽는 미술’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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