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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연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불교적으로 서술하면 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중 하나가 이번 해에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혹은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은 누구였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요즘에는 관계를 계속 붙들기보다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관계를 정리하는 선택이 더 익숙해진 시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인연 하나하나가 지는 무게를 깊이 들여다볼 여유도 점점 줄어들었다.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 익숙해질수록, 인연이라는 말도 점점 가볍게 느껴졌다. 사람 사이의 만남을 오래 붙들기보다는 빠르게 지나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데 더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살아간다. 길을 걷다 스쳐 간 사람, 음식점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누군가까지. 모두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만남 또한 사실은 쉽게 지나쳐버리기엔 꽤 묵직한 인연이 아닐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그해의 인연을 돌아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매년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인연을 단 한 명 꼽아보자면, 오래도록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이기보다는 각자의 일상을 살다 우연히 다시 마주친 사람이었다. 기억 속에 늘 좋은 감정으로 남아 있던 그 인연은 어느 순간 일상 속으로 훅 들어와 무난하던 하루에 새로운 꿈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시야를 열어주었다.
그렇게 문득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룬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셀린 송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인연'이라는 개념을 담아낸 영화다. 지난 8월 개봉한 <머티리얼리스트>가 다양한 사유의 지점을 남겨주었던 터라, 이 작품 역시 기대를 안고 보게 되었다. 슴슴한 온도의 작품이었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지난 인연들을 모두 돌아보게 만들었다.
패스트 라이브즈
영화는 한 여성과 두 남성이 바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건너편에 앉은 타인은 세 사람의 관계를 추측한다.
이후 이야기는 세 개의 시간대로 나뉘어 전개된다. 첫 번째는 12살의 해성과 나영, 두 번째는 그로부터 12년 뒤, 그리고 다시 12년이 흐른 이후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해성과 나영은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나영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며 헤어지게 된다.
12년 후, 뉴욕에서 살아가던 나영은 SNS를 통해 해성을 찾아보게 되고, 해성 역시 이전부터 나영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두 사람은 영상 통화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해성은 나영에게 서울에 올 수 있는지를 묻고, 나영은 해성에게 뉴욕에 올 생각이 있는지를 묻지만 현실적인 조건으로 인해 직접 만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락이 일상이 되어가던 어느 시점, 나영은 해성에게 연락을 끊자고 제안한다.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시기인데, 자신이 서울행 비행기표만을 찾아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두 사람의 연락은 잠시 중단된다.
그 후 나영은 작가를 꿈꾸며 예술인 레지던스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아서를 만나 결혼한다. 다시 12년이 흐른 뒤, 해성은 나영을 보기 위해 뉴욕을 찾고, 두 사람은 24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만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해성, 나영, 아서는 함께 바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이때 해성과 나영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해성은 과거의 선택에 대한 가정을 말하고, 나영은 자신이 떠나는 사람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의 자신들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며 대화를 마친다.
12살로부터 12년 후 만약 해성이 뉴욕에 왔었다면
영화의 마지막, 세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바 장면에서 해성은 나영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만약 12년 전 그때 자신이 뉴욕에 왔었다면 어땠을지,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을지를 묻는다. 사귀었을지, 헤어졌을지 혹은 부부가 되었을지를 상상하며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12년 전 뉴욕에서 만났다면 어땠을지를 떠올려 보았다. 아마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관계가 결혼으로까지 이어졌을 것 같지는 않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SNS를 통해 12년 만에 다시 연락을 하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현재의 서로라기보다 과거의 기억에 더 가까워 보인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감정의 중심에는 여전히 12살 시절의 기억, 첫사랑의 감정이 놓여 있다.
이 점은 나영의 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영은 해성에게 "네가 기억하는 나영이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그 어린애는 존재했어"라고 말한다. 이는 두 사람의 감정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감정이 현재의 자신들과는 다른 시간에 속해 있음을 말해준다. 결국 해성과 나영이 바라보는 서로는 ‘지금의 상대’라기보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기억’에 가깝다.
사람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해성이 12년 후 뉴욕을 찾았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으로 이어졌을지언정 결혼이라는 형태로까지 나아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마주한 것은 현재의 서로라기보다 더 이상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은 과거의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인연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인연’을 사랑이나 결혼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인연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대상은 대부분 연인이나 부부와 같은 관계에 한정된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나영은 아서에게 인연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한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작업을 걸기 위해 쓰는 말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영화는 해성과 나영의 관계를 통해 인연이 반드시 사랑이나 결혼이라는 형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분명 인연이었지만, 그 인연은 결혼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를 실패나 미완으로 규정하지 않고, 인연이란 모두에게 동일한 결말을 요구하지 않는 개념임을 제시한다. 특히 해성의 말은 영화가 제시하는 인연의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낸다.
이것도 전생이라면 우리의 다음 생에서는 벌써 서로에게 다른 인연인 게 아닐까.
그때 우린 누굴까. 그때 보자 - 해성의 말
이 대사는 인연을 운명처럼 붙잡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두는 관점에 가깝다. 인연은 나영과 아서가 예술인 레지던시에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 것처럼 이어질 수도 있고, 해성과 나영의 인연처럼 스쳐갈 수도 있으며 형태는 매번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인연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콘텐츠가 인연의 결과로 결말을 마무리했다면 <패스트라이브즈>는 인연이 결과가 아닌 과정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의 기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함께하지 않더라도 한때 분명히 서로의 삶에 자리했던 관계. 이것이 영화가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인 듯하다.
애매한 인연은 언젠가 정리할 시간이 온다
영화는 인연을 쉽게 소비하지 않는다. 해성과 나영은 각각 서울과 뉴욕이라는 장소에 살며 서로의 삶에서 멀어졌지만, 그 관계를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2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그 인연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였음을 인정한다. 인연의 소중함이 쉽게 경시되는 시대에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그 관계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 두 사람의 태도는 관객에게 부러움을 남긴다.
하지만 영화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 반드시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해성과 나영은 끝내 연인이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을 쉽게 정리하거나 지워버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 만남을 통해 각자가 품고 있던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관계를 삶의 한 부분으로 매듭짓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는 인연은 붙잡아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언젠가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애매하게 끝난 인연도 충분히 소중하게 여겨졌다면 결국은 의미로 남는다. 인연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가 나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를 잊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