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ALÍA는 그녀의 네 번째 정규 앨범 LUX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다음 단계를 명확히 선언한다. 전작 MOTOMAMI가 신체와 욕망, 파열된 정체성의 앨범이었다면, LUX는 그 이후에 찾아온 내면화된 사유와 영적 감각에 가깝다. 이 앨범은 더 이상 ‘장르를 부수는 팝 스타’의 태도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소리의 밀도와 여백, 반복과 침묵을 통해 로살리아의 음악 세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아티스트 ROSALÍA는 전통 플라멩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이를 동시대 팝, 힙합, 전자음악의 언어로 재구성해온 뮤지션이다. 그녀는 데뷔 초기부터 장르적 정체성에 안주하지 않고, 전통과 실험 사이를 끊임없이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음악적 어휘를 확장해왔다. 이러한 행보는 단순한 스타일 변주가 아니라, 동시대 팝 음악 안에서 ‘정체성’과 ‘표현 방식’이 어떻게 재정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LUX가 흥미로운 이유는, 과잉과 절제의 극단성에 있다. 이전 작업들에서 두드러졌던 리듬의 공격성이나 즉각적인 훅은 대부분 뒤로 물러난다. 대신 오케스트레이션, 합창, 잔향이 긴 사운드들이 앨범 전반을 채운다. 클래식, 성가, 실험 전자음악의 요소가 결합되며, 곡들은 개별적인 팝 트랙이라기보다 하나의 긴 의식처럼 이어진다. 이는 대중성과 실험 사이의 줄타기라기보다, 대중음악이라는 형식 자체를 잠시 보류한 선택에 가깝다. 다만 대개 실험적인 음악이 난해함으로 귀결되는 것과 달리, 이번 앨범은 대중에게 익숙한 스트링과 성악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청자의 곁에 오래 머무는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필자가 이 앨범에서 가장 흥미롭게 들은 곡은 2번 트랙 〈Reliquia〉이다. 이 곡은 LUX가 지향하는 미학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보여준다. 과도한 장치 없이도 공간감과 잔향만으로 감정을 쌓아올리며, 로살리아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더 확장해 나갈지에 대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LUX는 완결된 선언이라기보다, 다음 장을 예비하는 질문에 가깝다.
이 앨범에서 로살리아의 목소리는 더 이상 중심을 점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기, 합창, 공간감 속에 스며들며 하나의 질감으로 기능한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LUX에 약 14개국의 언어가 사용되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신앙과 여성성, 초월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앨범의 성격을 고려할 때 그 신비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선택으로 작용한다. 언어는 의미 전달의 수단이기보다, 감정을 환기하는 소리로 기능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LUX가 ‘영성’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앨범은 종교적 상징을 차용하지만, 신앙을 선언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대신 빛, 신체, 고통, 구원의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호출되며 하나의 정서적 공간을 형성한다. 이는 신을 향한 노래라기보다, 인간이 스스로를 초월하고자 할 때 발생하는 감정의 흔들림에 가깝다. 로살리아는 이를 극적인 서사 대신, 미세한 음향 변화와 호흡의 길이로 표현하며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체감하게 만든다.
대중성이라는 관념에서 한 걸음 멀어진 만큼 LUX는 유행을 좇는 앨범이 아니다. 오히려 로살리아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작업에 가깝다. 그녀는 이 앨범을 통해 여전히 실험적이지만, 동시에 더 이상 실험을 과시하지 않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팝 아티스트로서는 드문 선택이며, 그만큼 위험한 결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위험성은 곧 이 앨범이 지닌 진정성으로 환원된다. 로살리아가 새로운 방식으로 들려줄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