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외 영화에 그다지 빠삭한 편이 아니고, 일본 배우 생태계는 더욱이 잘 모른다. 하지만 올해 내 마음을 파고든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일본의 94년생 배우 요시자와 료다.
<배뱀배뱀뱀뱀파이어>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올해의 상영작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시선을 끄는 제목은 단연 입력하기조차 어려운 <배뱀배뱀뱀뱀파이어>였다.
시놉시스는 450살 뱀파이어 '모리 란마루'가 15살 소년 '리히토'의 신선한 피를 먹기 위해 그의 동정을 지켜내고자 한다는 것. 평소 판타지, 코미디를 잘 보지 않고 BL도 딱히 접해본 적이 없던 내게 이 시놉시스는 무척이나 도전적이고 자극적이었다.
그렇게 홀리듯이 예매해 놓고 볼까 말까 50번 정도 고민하다 결국 (취소 수수료가 생겨서) 보러 갔는데, 결론은 올여름 손꼽히게 즐거운 기억 중 하나가 되었다. 꽉 찬 극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몸을 들썩이며 웃었고, 자존심이 상하도록 재밌었다. 깔끔하게 밀어붙이는 B급만큼 기분 좋은 게 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일등 공신은 단연 주연을 맡은 요시자와 료라는 배우였다. 이 영화는 특히 자신의 목표에 시종일관 진지하고 심각한 모리 란마루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주는 웃음이 크다. 그 진지하면서도 코믹해야 하는 연기를 요시자와 료는 쓸데없이 잘 해냈다.
초반부 춤추며 목욕탕을 청소하는 장면이라든지, 홀로 고뇌하는 장면, 근엄하게 있다가도 리히토만 보면 폴짝 뛰는 장면 등등이 지금도 기억에 남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만화적인 부분들을 과하지 않으면서도 재치 있게 배우의 역량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보>
관심도 없던 웬 일본 배우의 이름을 그렇게 기억해 두고 있던 어느 날, 영화 <국보>의 국내 개봉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필자는 <패왕별희>가 인생 영화인 사람으로서, 요시자와 료가 주연인 가부키 소재의 정극 영화라니 벌써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물론 영화 자체만 보면 그 기대를 충족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일대기 영화치고 서사가 절절히 와닿지 않는다고 느꼈다. (<패왕별희> 수준을 생각하고 간다면 분명 아쉬울 것이다)
또, 그 자리에 가기까지 여러 사람을 희생시키던 모습이 눈에 밟혀서라도 주인공 키쿠오의 고통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천재 예술가의 고독과 인내, 성장 서사로 보기에는 그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보니 전적으로 키쿠오의 시점에서 전개됨에도 그의 삶을 공감하며 따라가기 어려워 영화의 감동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요시자와 료만큼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는 사실이다.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에 달하고, (영사 사고 후 재관람으로) 어쩌다 두 번을 보게 되었는데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좋았다.
뱀파이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얼굴뿐 아니라, 연기도 그저 아름다웠다. 그는 청년부터 노년기까지, 또 일상 연기와 가부키 무대 연기, 삶의 고점과 저점에서의 감정 연기 등을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몇몇 장면들에서는 넋을 놓고 스크린만 바라봤을 정도로.
영화의 호불호가 갈리는 와중에도 영상미와 연출 측면에서는 극찬을 받고 있는데, 그것과 맞물려 펼쳐지는 요시자와 료의 모습이 내내 매혹적이고 인상적이다. 그것만으로 내게 <국보>는 충분히 좋은 작품이었고, 아직 32세인 그가 앞으로는 또 어떤 필모그래피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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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나를 실소하게 만든 꽃미남 뱀파이어가, 가을에는 처연한 인간 국보의 얼굴을 하고 다시 왔다는 것. 영화를 좋아하고 배우를 좋아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런 즐거움이 가득한 일이다.
무난하고 잘 아는 한국 작품을 주로 보는 나 같은 관객들에게, 생소한 외국 영화에도 두려움 없이 도전해 보시기를 권한다. 생각지 못한 기쁨을 발견할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