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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정체성을 설득할 필요는 없잖아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주인공 ‘루미’와 포개지는 영화다. 악령으로부터 인간 세계를 수호하는 헌터이자 악령의 문양을 지니고 태어난 경계인, 그것이 ‘루미’의 정체성이다. 루미는 악령의 문양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힘을 발휘한다. 두 개의 정체성이 화합하는 순간, 희망을 이야기하는 스토리. 이 스토리는 메기 강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메기 강 감독은 5세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한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그는 한국에서 방학을 보내며 문화를 몸으로 체득했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문화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북미에서 자랐기 때문에 양쪽 세계에 다 발을 딛고 있는’ 그가 그려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케데헌>은 처음 본 세계다. 인물들은 영어를 사용하지만 한국 음식, 한국 문화, 한국 풍경과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드라큘라를 떠올리게 하는 저승사자와 한국 전통 민화에서 영감을 받은 더피, 어딘가 엉성한 여성 히어로 루미까지. 기분 좋은 기시감을 선사하는 <케데헌>은 설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태도가 돋보이는 영화다. <케데헌>은 메기 강 감독의 정체성을 녹여낸 '유일한' 세계이기에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세계가 된다. 정체성을 설득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이 영화는 그렇게 전 세계인의 마음에 녹아들었다.
<케데헌>은 메기 강 감독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자 7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제작한 영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다른 시공간을 살았다는 것이다. 멀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듯이, 영화에 구현된 한국은 새삼스럽게 아련하고 아름답다.
이 세계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테서랙트를 떠올리게 한다. 테서랙트는 중력을 이용해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블랙홀 내부의 공간이다. 우주와 지구, 과거와 현재를 잇는 테서랙트에서 쿠퍼는 딸 머피에게 사랑의 암호를 보낸다. 블랙홀에 뛰어드는 무모함, 차원을 넘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의 근원은 우주 공간에서 지내 온 시간에 있다. 쿠퍼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한없이 아름다웠고, 다른 시간에 사는 딸 머피는 너무나 그립고 애틋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우주 공간을 빌려 사랑을 이야기한 것처럼, 메기 강 감독은 <케데헌>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이렇게 부르고 싶다. 7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마침내 착륙한, 순수한 고백을 담은 러브레터 그리고 메기 강 감독이 테서랙트에서 보낸 사랑의 암호라고.
2. 귀마의 존재, 에고의 목소리
‘근거 없는 수치심’. 2025년 넷플릭스 인기작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의 명대사다. 이 키워드는 한 출연진이 인터뷰에서 언급해 많은 대중들의 공감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존재론적 수치심은 <케데헌>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중심 캐릭터들은 모두 귀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목소리가 들려올 때, 캐릭터는 통제력과 희망을 잃고 고통과 비참함 속으로 침잠한다.
즉, 귀마의 ‘목소리’는 인간 내면의 에고(ego)의 목소리로 치환된다. 정확히는 에고와의 동일시를 통해 나타난 산물, ‘수치심’이 귀마의 목소리인 것이다. 에고(ego)란 타인의 내면화된 목소리로, 가족, 학교, 사회라는 크고 작은 공동체에 의해 학습된 신념이다. 일부 정신분석학자들은 에고의 개념을 자신에 대해 가정하는 ‘이상’이 응축돼 있는 허구적인 자기규정으로 해석한다.
가령 루미, 진우를 조종하는 목소리의 근원은 플래시백을 통해 제시된다. 진우는 귀마의 유혹에 넘어가 엄마와 동생을 버린 과거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떨쳐낼 수 없는 기억이 치부의 흔적으로 남아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 진우 플래시백은 유일하게 시점 쇼트로 재생되는데, 관객이 진우의 감정과 쉽게 동화됨으로써 귀마의 음성에 힘이 실린다.
*시점쇼트: 연기자의 시점으로 포착한 장면, 1인칭 시점
루미의 어린 시절은 멘토이자 보호자인 셀린과 함께다. 셀린은 줄곧 루미에게 속삭인다.
‘악령의 문양을 가려’
루미를 조종하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셀린의 음성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K-pop과 에고(ego)의 교차점이다. ‘사자 보이즈’의 노래가 대중을 매료시키듯, 에고의 노래는 인간을 유혹한다. ‘Soda Pop’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어깨와 흥얼거리는 입은 직관적으로 에고의 목소리를 느끼게 한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반복 재생되는 멜로디, 이것이 둘의 교차점이다. <케데헌>은 전 세계인들을 연결하는 주제,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케이팝과 연결했다는 점에서 또다시 특별한 위치를 점유한다.
짐작건대 영화의 클라이맥스, 콘서트장 시퀀스는 두 개의 목소리가 충돌하는 인간의 머릿속이다. 사자 보이즈의 ‘Your Idol’이 인간의 영혼을 빼앗기 직전, ‘헌터릭스’의 ‘What It Sounds Like’가 울려 퍼진다. 이 극적인 전환이 와닿는 것은 이미 우리가 경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머릿속엔 사자 보이즈와 헌터릭스의 노래가 동시 재생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특정 목소리의 볼륨이 커지고 작아지는 것일 뿐이다. 자, 그럼 우리는 누구의 노래에 볼륨을 올릴 것인가.
3. 혼문의 가능성
매기 강 감독과 크리스 애플한스 감독은 이 영화를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기획했다. 교류 단절이 의무화된 시기, 이들은 소통과 조화가 인간 세계를 지탱하는 혼문임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 혼문은 혐오와 배제의 시대에 맞서, 연대와 공명을 통해 유지되는 문으로 형상화된다.
‘혐오로 귀마를 꺾을 수 있다면 내가 진작에 했을 거야’
진우의 대사는 ‘혐오’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
하물며 본편은 악령들조차 ‘절대 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케데헌>의 악령들은 위협적이지 않으며, 어딘가 엉성하고, 귀엽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적대심과 갈등을 조장하기보다 긴장감을 느슨하게 풀어줌으로써 선악의 경계를 지우는 것이다. 예컨대 진우와 함께 다니는 호랑이, 더피가 그러하다. 더피의 첫 등장,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는 지구 생명체와 구별되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영화는 곧바로 관객의 예상을 전복시키는 더피의 행위를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완화한다. ‘귀여운 악령’이란 나와 다르면 악령으로 묘사되는 세상에서 지금 당장 필요한 ‘귀여운 발상’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더피와 서씨는 인간 세계에 여전히 남아 있다. 왜 그들은 악령의 세계로 가지 않았을까. 여기서 혼문의 새로운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혼문이란 선과 악을 구분 짓는 막이 아니라 두 세계가 진실한 노래로 화합하는 순간, 자체 소멸되는 문이다. 영혼을 루미에게 준 진우를 포함하여 더피와 서씨가 안쪽의 세계에 남은 것은 그들이 유일하게 루미와 진실한 교류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성이 은유하듯,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마침내 혼문이 소멸되는 세계가 도래할 것이다. 그것은 두려움 없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