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깐의 외출만으로도 땀이 흐르던 무더위는 어느새 잠잠해졌고, 피부 위로 스치는 선선한 바람이 여름의 끝자락을 알리는 요즘이다. 나는 지난 9월 21일,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에 다녀왔다. 올해 라인업 중 특히 이소라가 헤드라이너라는 소식을 듣고서는 일요일을 놓칠 수 없었다.
페스티벌 일정은 오후 1시부터 시작되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2시쯤 서울숲에 도착해 게이트로 걸어가니 평화로운 서울숲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페스티벌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곳은 아니었지만 나무 사이로 들리는 여유로운 재즈 선율이 공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과 어울리니 재즈페스티벌에 왔다는 사실이 조금씩 체감되기 시작했다.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은 다른 페스티벌과는 다르게 전부 피크닉 존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었다. 사람들은 돗자리를 펴고 누워 무대를 바라보거나, 함께 온 일행과 담소를 나누며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즐겼다. 최근에 갔던 락페스티벌처럼 몸을 흔들고 소리치며 즐기는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오히려 재즈라는 장르와 잘 어울리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원 소풍 같았다. 나 역시 친구와 함께 잔디 위에 자리를 잡고 음악을 들으며 때로는 하늘은 올려다보고, 간단한 음식을 나누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이 특별하게 느껴진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개방성이었다. 다른 페스티벌은 티켓을 가진 사람만 즐길 수 있고, 외부에서는 울타리 너머로 새어 나오는 소리만 간신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은 조금 달랐다. 무료로 개방된 외부 공연장이 있었고, 푸드트럭과 같은 시설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서울숲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 덕분일 것이다. 분명히 페스티벌 내부와 외부는 구분되어 있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시민들이 산책하고 운동하는 일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페스티벌은 도시 속 수많은 작은 이벤트들과 자연스럽게 겹쳐지고 스며들었다. 입구에 들어가기 전, 분수대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쨍한 햇빛 아래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 그리고 그 너머로 들려오던 재즈 선율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그 풍경이야말로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의 정체성이자 특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조화가 가능했던 건, 아마도 그 음악이 재즈였기 때문일 것이다. 재즈는 장르 자체가 지닌 개방성과 유연함 덕분에, 공간과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이 페스티벌의 또 다른 매력은 ‘와인 반입’이었는데,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은 공식적으로 와인 한 병을 반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근처에서 시원한 화이트와인 한 병을 샀다. 날씨 좋은 날 서울숲 한가운데 잔디에 앉아 음식과 술을 마시며 알 디 메올라의 기타 연주를 들었다.
특히 그의 공연 시간대가 무척 좋았다. 노을이 물드는 해질녘, 잔잔히 붉게 물든 하늘과 숲의 그림자가 겹쳐질 때 흘러나오던 그의 어쿠스틱 기타 선율은 자연과 공연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했다. 알 디 메올라의 정교하면서도 발칙한 재즈 기타는, 내가 오래 좋아해온 팻 매스니의 몬트리올 공원 라이브 무대를 떠올리게 했다. 두 무대가 겹쳐 보이면서 눈앞의 풍경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는 상쾌함과 재즈의 자유로움이 동시에 살아 있는 순간이었다.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장식한 무대는 내가 가장 기다리던 이소라였다. 우리나라 보컬 중 가장 재즈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지만 실제로 그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건 처음이었다. 무대에서 그녀는 ‘난 행복해’, ‘처음 느낌 그대로’, ‘청혼’ 등을 불렀다. 이미 수없이 들어온 곡들이었지만, 그녀의 깊고 절절한 목소리를 실제로 듣는 순간 더더욱 가사와 감정이 내 몸 안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특히 ‘청혼’은 이소라의 노래 중에서도 보사노바 풍의 밝은 분위기를 가진 곡인데, 흔치 않게 경쾌한 그녀의 색깔을 담고 있어 평소에도 내가 좋아하는 곡이었다. 그 노래를 직접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던 경험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반가웠다. 어둑해진 서울숲의 밤공기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페스티벌의 마지막 아쉬움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다시금 느낀 건, 재즈라는 장르의 힘이었다. 락이나 힙합처럼 요즘 더 많이 들리는 장르와 달리, 재즈는 훨씬 오래된 음악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다양한 뮤지션들에 의해 연주되고, 수많은 다른 장르에 영향을 주며, 또 스스로도 변화와 실험을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아왔다.
서울숲 한가운데에서 알 디 메올라의 현란한 기타와 이소라의 깊은 보컬을 직접 들으며, 그 오랜 시간 이어져온 재즈의 생명력이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체험을 했다. 음악이 단순히 소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람, 공간을 연결하며 여전히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음악은 익숙한 장소를 낯설고 특별하게 바꾸어놓는다. 그날 서울숲에서 들었던 알 디 메올라의 기타와 이소라의 목소리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익숙한 공원을 아름다운 기억의 배경으로 만들어주었다. 애정하는 재즈를 들으며 보낸 그 특별한 오후는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