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모두에게 시간은 한정적이고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통해 기대하는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최근 매주 5일 동안 회사에서 듣고 있는 말이다. 맞는 말이고 딱히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반박할 수 없다. 회사란 성장하고, 이윤을 만들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성장해야 개인이 성장하고 (반대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매일 단 24시간 주어지는 시간을 빈틈없이 유익하게 채우는 것이 유리하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삶에서 익숙할지도 모를 이 말을 굳이 첫 문장으로 강조한 이유는, 안타깝게도 필자에게는 살면서 우선순위로 두지 않았던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안일한 사람을 봤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안일하다’라는 말은 사실 2016년 처음 누군가 활용하는 상황을 본 이후, 대학을 거치고 사회에 발을 들인 지금까지 필자의 머릿속 한구석을 꾸준히 차지하던 표현이다.

 

편안하고 한가로운 사람. 그렇다. 필자는 무위무능하지는 않아도 무용한 것에 시간과 체력을 쓰는 사람이다. 전공은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말하는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문화예술을 좋아하고, 학기 중에 동아리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시나리오 회의를 하고, 장소를 섭외하러 다니고, 배우 오디션을 보는 사람이다.

 

어쩌면 지금처럼 글 쓰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일로 비추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완성된 글을 보면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그 과정을 들여다본다면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싶을 만큼 오랜 시간 노트북 앞에 앉아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깜박이는 커서만 바라보고 끝나는 하루도 있다.

 

효율을 추구하지 않는 삶에 만족하며 살다 보니 극한의 성과주의를 추구하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이 든다. 그러다 만나게 된 머리나 밴줄렌의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는 필자에게 위안과 쉼을 주었다. 부족한 점과 성장해야 하는 영역들에 초점을 둔 날들이 많던 시점이었는데 유익한 산만함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얼굴도 모르고, 만나보지도 못한 작가에게 먼 한국에서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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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두껍지 않다는 점도 감사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던 필자는 일을 시작한 이후로 일의 효율과 성과를 올리기 위한 비문학이 아니고는 책을 읽은 지 꽤 되었기 때문이다. 무언가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닌 정말 읽고 싶어서 읽는 책인데 두께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목차가 매우 단순해서 놀랐다. 각 챕터별 제목과 소제목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본론은 책 제목과 같은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뿐이다. 그래서일까, 책 전체가 하나의 긴 문장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문장은 간결했지만, 여백이 많아 생각이 틈에 들어가기 적당했다. 그 여백 덕분에 일하는 동안 하지 못하던 생각과 감정들을 문장 사이로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었다. 짧은 책임에도 문장을 읽으며 최근 들어 편하게 풀어지지 않던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오래 붙잡고 책을 읽고 있었다.

 

 

특정한 나이대에는 누구나 문학과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그 관심에 적절한 자양분을 꾸준하게 공급하지 않으면, 그것은 매일같이 우리를 덮치는 다른 관심사들에 잠식당해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는 습관이 되기는커녕 위축되고 퇴화해 사라져 버리기 십상이다. (36쪽, 윌리엄 제임스의 <선생님이 꼭 알아야 할 심리학 지식>)


산만함이 없다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고, 최소한의 동기부여와 끈기가 없다면 산만함은 무기력으로 변해버리기에 십상이다. (55-56쪽)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에서 말하는 한가롭게, 느긋하게 사색하는 것의 필요성은 현대인들에게 사치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강의하는 프린스턴대학교의 학생들도 같은 생각으로 ‘게으름과 산만함의 미덕’이라는 수업을 반신반의하면서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론은 강의에서 배운 천천히 사유함을 통해 삶이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생산성에 매몰된 정신을 해방하는 가장 지적인 시간’에 대해 말한다. 유익과 결과만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환경에서는 사고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창조적 영감을 느끼는 감각 또한 쉽게 무뎌진다. 하루 중 단 몇 시간이라도 결과를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선명해졌다.

 

책에서 인용한 찰스 다윈의 글에 집중력을 지속적으로 사용할수록 아름다움을 느끼는 능력이 퇴화한다는 내용이 있다. 성과를 위한 몰입이 예술을 향유할 능력을 마르게 할 수 있다는 통찰은 일하는 동안 기계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목적 없는 사유와 감상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럼 우리도 이제부터 복잡한 내면의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기 위해 우리는 홀로 있는 법, 두려움을 감내하는 법,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크고 작은 경험은 짧고 순간적이며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116쪽)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는 어렵지 않게 읽힌다. 잠시 세상을 사는 법이 달리는 것뿐이라고 착각하던 뇌가 휴식이라고 느낄 만큼 작가의 생각 흐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맡기고 흘러가면 된다. 그러는 중에 많은 ‘나’의 생각이 스치는 경험을 한다. 컴퓨터처럼 결과값에만 몰두하며 잊고 있던 사색과 산만함의 시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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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혜와수
에디터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글이 올라오지 않은지 꽤 지났지만 정적이 필요할 때면 여전히 에디터님의 글을 찾습니다. 유독 찬 겨울이지만 아무쪼록 한 해 마무리가 편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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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2 19:33:24 0
도란
안녕하세요, 혜와수님!
저의 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겨울을 지나 돌아왔습니다.
새해 따뜻하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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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0 17:39:0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