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 작가의 신작 "기병과 마법사"는 그 제목만으로도 판타지 소설이 주는 특유의 설렘과 흥분감을 준다. 기병, 마법사, 그들이 맞서 싸우는 어둠의 세력. 그러나, 이 소설은 단지 판타지라는 장르의 클리셰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반대로, 소설 속 세계와 인물들이 이 책의 장르적 구분을 움직인다. 그만큼 이 소설의 세계와 인물들은 틀에 박혀 있거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지만, 결국 모두의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를 던진다는 점에서 잘 짜인 판타지 소설이라고 부를 만하다.
판타지라는 장르는 멀리 떨어진 세계를 다루곤 한다. 혹은, 존재하지 않거나 오직 상상만으로 가 닿을 수 있는 세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에서 발생하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의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쪽 끝의 거대한 산맥과 계곡, 폭정에 시달리는 백성들, 아름다운 초원의 이미지, 괴물과의 전투, 설정 자체는 환상적일지라도 이것들이 현실에 대한 일종의 은유라고 생각한대도 큰 문제는 없다. 인류는 언제나 거대한 부조리와 부정의를 마주하며 살아왔으며, 그것들을 파훼할 영웅을 기다리거나 직접 그러한 영웅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판타지는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를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새로운 질감으로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되는 것이다.
![[크기변환]기병과 마법사 표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6/20250617010003_gbrxkaea.jpg)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주제의식은 '연결'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파괴와 소멸이라는 부정의를 돌파하는 힘이 연대와 협력이라는 메시지 자체는 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러한 연대와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과정이다. 연대는 저절로 발생하지 않는다. 윤해와 다르나킨이 처음부터 손을 맞잡았던 것도 아니다. 기병과 마법사라는, 유목 민족과 농경 사회 출신이라는 서로 다른 신념과 환경 속에서 살아 온 두 사람이 끝내 마음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대가 없이 서로를 신뢰하는 윤해와 다르나킨의 관계는, 결국 그러한 연대는 충분히 가능하며, 모든 시련 끝에 남아 있는 연대는 그 무엇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주인공 윤해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물론 초인적인 힘을 지녔지만, 그러한 힘에 과하게 의존하기보다는 책임감과 배움의 자세를 통해 의연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 인물이다. 또한,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단단한 모습이 읽는 동안 윤해라는 인물에 애정을 갖게 하고 더 몰입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던 것 같다.
나아가,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이야기 속 상황을 생생하게 구현해 내기 위해 들였을 모든 노력이 보이는 듯 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작가가 저자의 말에서 언급하듯이, 수많은 연구와 사료를 통해 직조해 낸 세계인 만큼, 읽을수록 머릿속에 장면 하나하나가 그려지는 듯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소설이 드러내는 세계를 통해 한국형 판타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저자가 자신의 소설이 한국형 판타지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어떠한 특정 배경을 상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꼭 한국이 아니더라도 한자 문화권의 판타지라고 하자. 그렇다고 할지라도, 지금까지는 판타지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중세 유럽의 왕국, 드래곤, 기사와 공주를 떠올리곤 했다. 왜 판타지의 배경을 떠올리는 상상력에 이토록 큰 제약이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판타지는 상상의 영역이기에, 이미 그 문화권에 가깝게 살고 있었다는 이유로 상상할 가능성을 닫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기병과 마법사"가 주는 의미 역시 특별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판타지라는 장르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사는 가장 가까운 세계의 문제에 대해 가장 열정적으로 상상할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판타지는 도피가 아닌 현실로의 몰입을, 내가 사는 세계에 더 충실해짐을 뜻한다. 그런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배명훈 작가의 "기병과 마법사"를 읽어 보도록 꼭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