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시각예술이라 불리우는 미술의 영역에 소리가 개입되기 시작했다. 소리를 포함한 비디오 매체로서 미디어아트나 관객이 위치한 곳에 특정 사운드를 재생시키는 설치 작업 등 현대미술 작품은 감각의 수용 방식에 따라 구분될 수 없는 공감각적인 형태를 많이 취한다.
이러한 소리의 포용은 작품 수준뿐 아니라 전시 기획 자체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역시 소리, 특히 우리나라 전통의 공연예술인 판소리를 키워드로 설정했다. 《판소리, 모두의 울림(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 제목의 이번 비엔날레는 개인적인 것부터 공적인 것, 미시적인 것부터 거시적인 것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오페라적 전시”라고 소개한다.
특히, 판소리라는 낱말이 ‘판’과 ‘소리’, 곧 공간과 소리의 결합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혹은 음경(音景)을 의미하며 전시는 음악과 시각적 형식을 연결하는 서사로 구성되었음을 밝힌다. 전시는 “갤러리 1, 2: 부딪힘 소리(Feedback Effect)”, “갤러리 3: 겹침 소리(Polyphonies)”, “갤러리 4, 5: 처음 소리(Primordial Sound)”로 이루어졌다.
“갤러리 1, 2: 부딪힘 소리(Feedback Effect)”는 피드백 효과라는 핵심 단어를 내세운다. 피드백 효과는 두 음향기기 사이에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리가 포화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전시는 이를 우리 주변의 포화된 도시 환경에 빗댄다. 도로를 가득 매운 자동차들의 소리와 각종 매체에서 나오는 광고 소리, 많은 사람들의 대화 소리 등 번잡한 도시의 환경은 전시장 내에서도 다양한 작품들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나아가 이러한 피드백 효과가 도시를 넘어 바깥 자연환경까지 영향을 미치는 패턴을 작품들을 통해 조명한다.

브라질 작가 신시아 마르셀(Cinthia Marcelle, 1974-)의 작업 〈여기에는 더 이상 자리가 없어요(There Is No More Place in This Place)〉(2019-2024)는 어떤 회사의 사무실을 그대로 옮겨온 것만 같다. 다만 사무실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형광등이 켜진 천장도 부서져 있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준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매일 습관처럼 출근하는 공간에 혼란과 불안정을 부여함으로써 노동 구조와 사회 체계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미로같은 안쪽 공간으로 더 나아가면 폐건물의 잔해를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조각 작품이 보인다. 벨기에 작가 피터 부겐후트(Peter Buggenhout, 1963-)의 연작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The Blind Leading the Blind)〉(2018-2023)은 일상에서 버려지는 플라스틱이나 고철부터 동물들의 털이나 피 같은 유기물까지 온갖 폐기물을 그러모아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형태로 재구성한다.
제목은 잘못된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의 작품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산업 소재와 그 생산 방식을 가져와 작업했던 미니멀리즘에서 더 나아가 산업 폐기물을 활용한 그의 조각 작업은 크고 작은 각각의 구성물들이 복잡하고 모호한 형태를 갖춘다. 온갖 기호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절대적인 의미를 취할 수 없는 현대 사회를 은유하는 듯하다.

아르메니아계 리투아니아인 예술가 안드리우스 아루티우니안(Andrius Arutiunian, -1991)의 〈아래(Below)〉(2024) 작업은 어떤 주술적인 의식의 제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이어를 얇게 펼치거나 녹인 것과도 같은 이 작업의 주재료는 역청으로, 석유 추출의 부산물이자 작가가 현재 탐구하고 있는 재료이다. 역청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 주요 인프라를 구성하는 없어서는 안될 소재이기도 하지만, 과거 시체를 보존하거나 신성한 불을 밝히는 등 제의적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대 사회의 주된 동력으로서 석유라는 자원에 대한 신화는 마치 과거의 주술적 성격과도 연결된다. 더불어, 끈적하고 검은 역청의 물질적 특성의 불길한 기운은 작품에 담긴 서사-인간에게 마법, 술, 허구를 가르친 죄로 지하에서 벌을 받는 두 악마의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곧 작품을 통해 인간의 석유 발견과 기술발전, 자연 파괴가 마술적인 힘으로 함께 재구성된다.
“갤러리 3: 겹침 소리(Polyphonies)”에선 기계에서 동물에 이르는 다양한 비(非)인간 존재들과의 대화를 보여준다. 이는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며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 환경이 각각의 존재들이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영화제작자이자 비디오 아티스트 유얀 왕(Yuyan Wang, 1989-)의 〈초록색 회색 검은색 갈색(Green Grey Black Brown)〉(2024)는 조화(造花) 제조업을 포착한다.
편집증적인 구도와 대상의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타이트하게 잡은 샷, 알록달록하지만 무언가 인위적인 색감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살아있는 식물과 똑같이 보이는 플라스틱 기반의 조화들은 마치 동물 박제와 같이 언캐니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한 감각은 영상이 상영되는 어두운 공간 바닥을 메운 인조 잔디를 만질 때 더욱 극대화된다.
“갤러리 4, 5: 처음 소리(Primordial Sound)”는 세상이 시작하며 발생한 소리, 과학에서 말하는 빅뱅의 잔향이자 힌두교 전통에서 ‘옴’으로 알려진 소리를 컨셉으로 구성되었다. 우주, 종교, 신화 등을 모티프로 작업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장 한쪽 많은 수의 아름다운 등불이 매달려 있고, 그 가운데 하얀 설치물이 놓여 있다. 이 설치물은 인간 형상을 닮아 있어, 얼핏 보면 성모 마리아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 출신이자 런던에서 활동하는 작가 마르게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 1986-)의 〈*휘젓다(Stirs)〉(2024)는 미생물의 생태계라는 미시적인 세계와 판소리의 사운드를 통해 지구상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중앙 설치물이 들고 있는 그릇에는 생명의 기원으로 볼 수 있는 남조세균과 다른 광합성 미생물의 미시 생태계가 담겨 있다. 천장과 바닥에 설치된, 손으로 불어 만든 유리 전구는 알과 같은 모습으로 각각이 하나의 생명을 은유하고 있는 듯이 보이며, 작품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가 판소리를 통해 공명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번 비엔날레는 판소리라는 공간과 소리가 결합된 예술을 키워드로 시작하여 예술감독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에 대한 철학이 접목되어 구성된 전시였다.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몸, 다양성, 생태, 신화와 기술 등의 다양한 테마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다만 일부 작가들의 경우, 다소 매너리즘적인 양상도 보인다고 느꼈다. 특히 미니멀리즘과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출현 이후, 작품의 형태는 동일하되 그저 작품 안에 특정 담론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기입하는 것만으로 작업이 반복되는 경향이 보이기도 했다.
물질적인 것에서부터 비물질적인 것까지 다양한 것들이 작품의 매체로 사용되는 만큼, 각자의 이야기가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