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결심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메인 스토리는 어촌의 젊은 청년 ‘용수’의 죽음에서 시작하지만 주인공은 용수가 아니다. 용수의 빈자리를 보고 있는 세 사람, 용수가 타는 배의 선장이자 가까운 이웃 어른 ‘영국’, 용수의 엄마인 ‘판례’, 용수의 아내 ‘영란’이 그 주인공이다. 그래서 영화도 이 세 명의 심정을 표현하는 데 애를 쏟고 그 덕에 나도 이들에게는 공감도 많이 하고 정도 많이 갔지만, 용수에 관해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용수의 죽음은 진짜가 아니다. 이는 보험금을 타기 위한 자작극인데, 용수는 이 사실을 엄마와 아내에게는 전혀 말하지 않고 이 자작극을 도와줄 영국에게만 사실을 밝힌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판례는 아들을, 영란은 남편을 잃는다. 이들이 겪을 상실이 얼마나 클지는 가늠할 수 없다.
용수는 판례와 영란에게 자신의 의미가 그리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판례는 남편이나 다른 자식 없이, 오직 외아들 용수 하나만 믿고 사는 시골 어른이다. 아들의 죽음을 들은 후에도 몇 날 며칠을 바다 앞에 앉아 아들을 기다린다. 베트남에서 시집을 온 영란이 용수에게 얼마나 의지하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영란은 처음 소식을 듣고 유산하고, 이후에는 한국인 남편도,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도 없으니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기까지 한다. 용수는 이런 결과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억 단위의 보험금만 받으면 모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 걸까?
그들의 아픔을 상상하지 못하고 이런 선택을 한 것과, 그들의 아픔을 상상했음에도 이런 선택을 한 것, 둘 중 무엇에 더 실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죽지 않을 결심
영화의 본격적인 사건(용수의 자작극 겸 죽음)이 시작되기 전, 영국과 용수가 배를 타고 나가 고기잡이를 하는 장면이 있다. 배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용수는 그물에 끌려 내려가 바다에 빠지며 정말 죽을 뻔하다가 간신히 살아나온다. 이 이후에 용수는 자작극을 감행한다.
그물에 끌려내려가 정말 죽을 뻔했던 용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고민하게 된다. 차라리 잘됐다,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제껏 자기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살고 싶다는 생각? 영화에서는 용수의 분량이 많지도 않고 그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다른 단서를 통해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단서는 영국의 말이다. 영국은 대체 왜 용수에게 협조한 것일까?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영국 본인도 사기 방조죄 같은 걸 저지른 게 될 텐데. 아니 그보다도, 영국 또한 자식을 잃어본 사람이다. 판례가 용수를 잃는다면 어떤 고통을 겪을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인데, 왜 이런 잔인한 일에 같이 뛰어든 것일까.
이 영화의 장르가 범죄였다면, 영국이 함께한 이유는 돈이었을 것이다. 보험금을 수령하고 나누기로 한다거나. 하지만 그런 것은 영화 안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영국이 협조한 이유는, 용수의 눈이 초롱초롱해졌기 때문이다. 맨날 죽은 눈을 하고 있던 용수가, 이 계획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눈이 초롱초롱해졌는데, 어떻게 돕지 않느냐고 한다. 자포자기한 눈이 영원히 켜지지 않을 것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도운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켜지지 않던 눈이 이제서야 켜지길래 켜진 것이라면, 친아들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그를 봐온 영국이 어찌 그를 돕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용수는 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겠다. 용수는 물에 빠졌을 때 간절히 살고 싶었겠다.
다음을 살 결심
용수는 이 사기극이 엄마에게 보험금을 주기 위해서인 양 말했지만, 실은 본인이 살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대로는 죽을 것 같아서, 살고 싶어서 이런 어리석기 그지없는 선택을 했다. 이 바닷가 마을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고 나는 새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너무나 이기적인 선택이지만, 차라리 이렇게 생각할 때 용수의 마음과 그 선택이 이해가 간다. 우리는 다 내 목숨 하나를 건사하는 것이 전부인 동물일 뿐이니까. 이기적이고 매정해 보이는 선택일지라도 그게 용수가 살아남는 길이라면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가 끝을 향하며 모두의 감정이 폭발한다. 끈끈하고 안정적인 고부지간이던 판례와 영란의 사이도 마지막에는 난장판이 되고, 결국 영란은 보험금을 챙겨 마을을 떠난다. 그날 밤 판례가 전화를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고 그대로 사라진다.
다음 날 아침, 영란의 ‘야반도주’에 관해 마을 사람들이 말을 얹는다. 다들 영란을 욕하지만 한 사람은 고개를 젓는다. 자기 돈을 챙겨가는 것뿐인데 뭐가 문제냐며, 영란이 똑똑한 선택을 했다고. 영란도 도망을 치는 것이 아니다. 영란도 다시 삶을 살러 가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