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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란도트> 줄거리

 

고대 중국의 공주 투란도트는 자신에게 청혼하러 온 남자들에게 세 가지의 수수께끼를 낸다. 모두를 맞추는 남자는 그녀와 결혼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참수형을 당한다. 수많은 남성이 투란도트의 미모에 반해 수수께끼에 도전했다가 참수형을 당한 바 있다.

 

그 무렵 전쟁으로 나라를 잃은 이방인 칼라프 왕자는 투란도트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수수께끼에 도전하여 세 가지의 수수께끼를 모두 푼다. 그럼에도 공주가 청혼에 응하지 않자 칼라프는 공주에게 자신의 이름을 맞추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고 역으로 질문한다.

 

이에 칼라프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중국의 관리들이 백성들을 추궁하던 중 칼라프의 하녀였던 류가 그와 연관된 인물로 지목되어 궁으로 불려 가게 된다. 하녀 류는 몰래 오랜 기간 짝사랑했던 칼라프 왕자를 지키기 위해 자결을 택한다.

 

칼라프는 동이 트기 전, 투란도트에게 입을 맞추고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는데 투란도트는 그의 이름을 알아냈다며 궁으로 달려간다. 청혼을 거부할 것이라는 관중들의 예상과 달리 투란도트는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며 칼라프 왕자의 청혼을 받아들이며 극은 막을 내린다.

 

 

 

시작하며


 

1926년 초연을 한 것으로 알려진 오페라 <투란도트>가 2024년 10월 12일부터 19일까지 국내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내한 공연을 펼쳤다. 이번 내한 공연은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인 ‘아레나 디 베로나’가 창단 이래 최초 100년 만에 내한한 공연으로 이미 많은 이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반박할 여지 없이 웅장한 스케일의 오페라 공연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번 <투란도트> 오페라를 보고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주인공에게 공감한 상태에서 감정의 폭을 극대화한 음악과 가사를 들으며 오는 전율을 경험하지는 못해서다.

 

대개 탄탄한 필연성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현대작이 익숙한 내게 고전작 <투란도트>의 우연성에 기댄 서사는 관객을 설득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는데, 그에 반해 오페라 특성상 감정이 풍부하게 담긴 극적인 노래가 끊이지 않아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을 극이 강요하는 듯했기 때문.

 

한 마디로, 주인공과 서사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한 채 극적인 노래와 연기를 마주쳐 괴리가 들었고, 그로 인해 감동을 완벽히 전달받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투란도트 리뷰에 ‘단조로운 스토리에 공감이 어려웠다’는 평도 있었던 것을 보니, 비단 나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물론 고전 오페라를 줄거리 등의 문학적 요소만을 중점으로 관람하긴 무리가 있다는 걸 잘 안다.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오페라는 음악, 문학, 연극, 미술, 무용 등의 요소를 아울러 이해하는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적절하며, 오래 누적되어 전해진 고전 오페라의 경우엔 역사나 그 시기의 관점을 품고 있다는 의의도 담겨있기에 서사 외에도 여러 가치를 견주어 즐기는 시각이 필요할 터.

 

그러나 (나와 같이 평범한) 관객 입장에선 서사나 주인공에 몰입할 수 있어야, 그러니까 문학적 요소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공감을 이뤄야, 마음 한구석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의문들에 시야를 방해받지 않은 채 음악, 연극, 미술, 무용 등 공연 예술의 다양한 요소마저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여 이번 리뷰는 고전 오페라 <투란도트>를 감상하며 든 서사적 의문에 스스로 답변하며 작품과 소통해 본 개인적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오페라 투란도트의 서사만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치 않아 관람하는 동안 고개를 갸우뚱했던 관객이 있다면, 이 리뷰를 가볍게 읽으며 투란도트 주인공들에게 공감을 이뤄 다양한 오페라적 요소까지 거리낌 없이 다시금 향유해볼 수 있기를 바라며 썼다.

 

 

 

내가 <투란도트>를 보며 한 생각들


 

생각 [1]

칼라프와 류의 ‘첫눈에 반하는 사랑’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란 게 과연 존재할까. <투란도트>에는 칼라프 왕자와 류 등 첫눈에 반하고 목숨까지 불사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류에 가깝다.

 

난 ‘첫눈에 반하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엔 섣부르다는 입장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건 대개 외모와 스타일, 언행 등을 토대로, 그러니까 감각적인 정보를 토대로, 제멋대로 유추한 환상에 기대어 상상한 ‘이미지’에 몰입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그것은 사랑이 시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리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사랑의 다양한 속성(헌신, 친밀감 등)을 내포하지는 못하기에 ‘사랑’이라 이름 붙이기엔 설익은 무엇이 아닌가 싶어서다. 말하자면 ‘첫눈에 반한 것’은 ‘사랑’의 전 단계랄까.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첫눈에 반해 목숨을 내거는 주인공에 몰입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나보다. 서사가 단순하고 우연성에 기대는 면이 짙은 고전작임을 알면서도 나는 칼라프 왕자와 류가 지나치게 낭만에 젖어있고 무모하다는 생각을 극을 보는 내내 지울 수 없었다.

 


생각 [2]

마지막 수수께끼의 답이 '투란도트'인 이유


 

낭만적 사랑에게 ‘사랑’은 현실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자기를 과감히 던지고 헌신하는 사랑, 언어와 국가를 뛰어넘는 사랑,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사랑을 이상화한 사랑, 이념화된 사랑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념화된 사랑은 삶을 억누른다. 내 앞에 존재하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할 때, 사랑은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

 

- 사랑 : 삶의 재발명 - 배반인문학

 


한 책의 말마따나 상대에게 열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에도 정작 제대로 교류해 본 적도 없는 칼라프와 류는 ‘자신 앞에 존재하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의 흐름대로라면 투란도트가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낸 이유도 단순히 그녀의 더럽고 잔혹한 성질머리 탓이라기보단,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을 외치는 남자와는 진정 관계 맺을 수 없을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투란도트는 마치 사랑을 믿지 않는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나는 극이 진행될수록 어째 그녀야말로 ‘진정한 사랑’(그녀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랑)을 만나길 누구보다 바라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녀가 낸 마지막 수수께끼의 정답은 자신의 이름 ‘투란도트’.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실존을 인식하고 사랑(존중)해 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단서가 아닌가.

 

아마 사랑이 없다고 확신하는 이는 사랑에 대해 질문하거나 의심하는 데 구태여 힘을 빼지 않을 것이다.

 

 

생각 [3]

투란도트가 칼라프의 청혼에 응한 이유

 

대체 왜 투란도트는 갑자기 칼라프에게 사랑에 빠진 것일까?

 

초반에 사랑(결혼)에 있어 회의적인 태도를 가졌던 투란도트가 키스 한 방에 칼라프에게 사랑에 빠져 “이방인(칼라프)의 이름은 바로 사랑”이라는 대사를 읊으며 사랑을 긍정하게 된 것은 역시 설득되지 않았던 부분 중 하나다.

 

칼라프의 청혼 과정에서 진정 상대를 위하지 않았다면 행할 수 없는 여러 선택을 마주했을 투란도트를 떠올려 본다. 자신이 사랑하는 칼라프를 지키기 위해 끝내 자결하는 하녀 류, 원하던 투란도트와의 결혼에 실패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이름을 내어준 칼라프. 보통의 마음으로는 내릴 수 없는 결단임은 분명하다.

 

어쩌면 투란도트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그녀가 일생동안 존재를 의심해 온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발견한 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마무리하며


 

<투란도트>의 서사적 설득이 촘촘하게 이뤄지지 않아 느꼈던 개인적 아쉬움을 토대로 리뷰를 풀었다. 다만 그것은 완벽한 배우의 연기와 오페라 연출과 무대에 좀 더 깊이 있게 전율하고자 하는 시도이지, 오페라 전체에 대한 평가가 아님을 이해하고 읽어주기를 다시 한번 당부하고 싶다. (만약 필자처럼 서사적 진행에 의문이 든다면 올댓아트 블로그에 기고된 장지영 공연 칼럼니스트의 오피니언 <투란도트 공주는 정말 칼라프 왕자를 사랑하게 됐을까>를 참고해 보면 좋겠다.)

 

첫 오페라 관람이라 비교군이 없었음에도, 이번 <투란도트> 내한 오페라는 배우의 연기와 무대 연출 등의 요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감각적 포만감이 드는 공연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배우, 오케스트라, 스태프, 무용단 등의 규모가 커 웅장했으며, 무대와 의상 등도 그에 걸맞게 화려하게 연출되었으니 말이다.

 

기존 알고 있던 곡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물론이고 하녀 류의 ‘얼음으로 뒤덮인 그대여’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음향이 좋은 편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노래의 강약 조절은 공연장에 류의 순수한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간절하고 애타는 마음을 탁월하게 전달했기 때문. 이 외에도 가로로 긴 무대를 꽉 채우는 극 중 민중들의 등장, 2막이 시작될 때 화려한 왕궁의 모습, 마지막으로 네순도르마 등을 통해 투란도트와 아레나 디 베로나의 전통과 명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 오페라를 입문하기에 충분히 긍정적인 경험을 선물 받은 듯하다. 다음에 관람할 오페라는 또 나의 어떤 감각을 일깨우고 동시에 전율하게 만들지 기대해 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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