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경험을 시작했다. 광고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무가지 매거진을 발행하는 연합 동아리에 들어갔다. 오늘 처음으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건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에디터팀으로 모인 우리는 하나같이 글을 쓰는 활동은 거의 처음이라며 기분 좋은 걱정을 꺼냈다. 이어 책과 관심사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어떤 분이 '저는 사랑과 사람에 관심이 많아요.'라고 하신다. 나는 혼자 조용히 아트인사이트와 이곳에 글을 적기 위해 지난 4개월 동안 늘 가지고 다니던 수첩에 대해 생각한다.
아트인사이트에는 나름대로 정제의 과정을 거친 글을 올리지만, 나는 대부분의 생각을 수첩에 휘갈겨 쓴다. 대부분은 여전히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 그 양상은 여름에 더욱 두드러진다. 적힐 때는 모양이 잡혀있지 않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어떤 건 시가 되고 어떤 건 수필이 된다. 지난 6월과 7월, 8월에 적은 글에는 이제서야 각각의 모양을 명명해 주었다.
새로 모인 에디터 팀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면접 당시 기억에 남았던 질문을 떠올렸다. “지난 가을호의 주제는 '조각'이었는데요, 만약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된다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싶나요?”. 난 일기장이나 다이어리, 수첩 등에 휘갈겨져 있는 내밀한 텍스트들이 그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고,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이나 나의 그러한 텍스트들을 아카이빙 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지난 프로젝트 당신에서 내 '일기'의 일부를 살짝 보여주었는데, 이번에는 그 이후 글 워밍업을 위해 늘 지니고 다녔던 '수첩'에 적힌 사랑과 관련한 글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실 보여주기 위함보다는 스스로 각인시키고자 함이 더 큰 동기인 것도 같다.
①
붉은 창이 떠오른다
감히 내가 한 번도 가지지 못할 눈을 가지고
느리게 기지개를 켜는 노을의 모습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나는 우울을 액체로 담은 머그컵처럼 찰랑거린다
말이 불투명해 그렇지 늘 하고 싶던 말은 사랑한다는 거였어
다 녹아버린 사탕처럼 눌은 입을 가지고는 뻐끔대던 사랑 이야기
영원이라는 말로 감히 너를 농락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②
영원
너무 사랑해서 놓아준다는 말 같은 건 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세상은 정말 모호하다. 흑백 논리라는 건 어떻게 생겨난 건지 궁금해질 정도로 그 어디에도 백이 없고 흑이 없다. 어물텅하게 느릿느릿 섞여가는 것 중에 그 무엇도 명백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중에 정답이 있다고 나의 선택이 있다고 말하는 건 참 어렵다. 그럼에도 모두가 으레 말하듯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양날의 검, 이면, 좋은 점과 나쁜 점, 손익. 모두 함께 존재함을 알면서도 그중에 더 나은 것을 고르려고 노력하지. 그래서 쉬운 삶이 없고 모두 관자놀이 꾹꾹 눌러가며 눈을 부릅뜨나 보다.
세상을 담은 게 사람이라 사람도 모호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나 사랑스럽다가도 다른 부분을 보면 섬찟 놀라 한 걸음 뒤로 떨어진다.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간극이 더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너무 사랑하는데도 놓아주고, 너무 사랑해서 헤어지고, 너무 사랑해서 미워지고. 뜨거운 피부를 꾹꾹 누르면서 눈물을 참고 그렇게 사나 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들 그렇게 사나 보다 싶더라도, 그게 내 일이 되는 건 여전히 참기 힘든, 심장으로부터 올라오는 영혼의 울렁임. 계속 생각을 내버려두면 사랑의 정의까지 도달하는데, 여전히 그건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아마 죽어도 모를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쓰려면 슬퍼야 한다. 슬프고 마음이 덜그럭거려야만 나는 글을 쓴다. 그리고 슬퍼지려면 무언가를, 대부분 경우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해야 했다. 누군가를 울렁거릴 만큼 강렬하게 사랑해야만 한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햇볕에 오래 서 있던 사람처럼 빙그르 헛구역질이 나야 한다. 그 사람을 보면 자주 어지러워서 기분이 안 좋아야 한다. 사실 그래야만 사랑인 것은 아니지만 내 사랑은 종종 그런다. 너무 갑작스럽고 강하게 사랑을 하면 그렇게 된다.
나는 적당히 좋아해서 사랑하는 이로서 서로를 만나고, 연인이 되기에는 열기가 충분히 돌지 않아서 그냥 미지근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냥 그런 피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 같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나는 그게 안 된다. 나도 그러고 싶다고. 그런 사랑도 해보고 싶다고. 언뜻 어느 여름날 맥주를 마시며 들었던 친구의 사랑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생각했다. 그렇지만 혈액형이 다른데 어떻게 수혈을 받아 그 혈액의 사랑을 해보겠는가. 내 사랑은 O형이 아니다. 내 사랑은 RH-B형인 것 같단 말이다.
여름, 비, 스포티파이 재생목록 중 내가 만든 ‘Deszcz’.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여름만 오면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새로운 사랑에 빠져 있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내가 유난히 기억하여 챙기지 않아도 심장은 늘 내 몸에 지니고 있는 것처럼. 미련한 심장은 끊임없이 수축하고 이완하여 내 몸 말단까지 타고난 혈액을 묻히고 또 묻혀 잊지 않고 매일 내가 가진 사랑을 상기시킨다.
또다시 여름이다. 언제나 여름이다. 여름이 온다는 건 사랑에 흠뻑 빠지는 일. 모호한 세상에서 너무나 분명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너무 사랑해서 놓아주고, 너무 사랑하는데도 헤어지고, 너무 사랑했다는 이유로 미워하다 결국에는 어물텅하게 섞여버리는 여름을 보내고 싶다.
③
부아가 끓는다고 착각할 만큼 열렬하게 지금 내 속에서 사랑이 끓고 있다
이러다 어느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힐 것만 같아
그리고 알 수 없을 미래가 미치도록 공포스러울 것
그게 한여름 같은 사랑
④
하늘에서 하늘을 날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
그러나 소나기가 오고야 말 거라던
옥상은 대부분 진한 녹색이었다
저 작은 건물들을 도미노처럼 쓰러뜨린다면
그런 나쁜 생각을 해보고
독소나 매연을 배출하듯
잔뜩 끈적거리는 오래된 때로 더럽힌 마음을 마음껏 배출하고 싶던 어제를
열리지도 않는 창문 밖으로 마구 던져버리고 싶었다
⑤
물결이 곱아든다
서로에게 엉키려고
⑥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흐릿해지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도 또다시 사랑에 빠져버리는 여름
너무 아파서 행복해지는 기분은 왜 이리도 벅찬가
나는 이제 지구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너의 소식을 듣지 못한다
품고 있는 것은 모두 온 세상에 흩뿌려야 직성이 풀릴
곧이어 터지고야 말 거성 같은 사랑
융합하고 융합하다 더는 가까워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폭발하는 여름
고통도 기화하면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다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