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체코 여행을 가서였다. 호스텔에서 같은 방을 썼던 독일 여자아이가 내게 무하 박물관에 꼭 가보라고 추천하기에 우연찮게 그곳을 방문했었다. 알폰스 무하의 생애와 예술활동을 중심으로 그의 물건과 작품이 전시 되어있는 그곳에서 나는 체코의 달달한 향기와 잘 어울리는 그를 만났더랬다. 부드러운 곡선과 은은한 색감, 명확한 상징으로 어떤 예술가 못지않게 자기만의 색깔이 확고한 예술가였던 알폰스 무하. 그를 마주한 지 삼 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 내가 사는 이곳에서 그를 다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찬 기쁨을 안고 이번 전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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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누보?  

 아르누보 양식의 정수라 불리는 알폰스 무하. 그렇다면 아르누보는 무엇일까?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 이라는 뜻으로 1890년에서 1910년 사이 유럽과 미국, 남미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유행했던 양식이다. 그 명칭은 1895년 지크프리트 빙이 운영한 화랑 ’메종 드 아르누보‘에서 유래했는데, 이곳에서 빙은 국제적인 미술가들의 작품과 유리, 공예, 보석, 포스터와 같은 각국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전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화랑의 성격은 새로운 예술에 목마른 당대 예술가들을 응집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독일에서는 유겐트 양식, 프랑스에서는 기마르양식, 이탈리아에서는 리버티 양식이라 불리는 아르누보는 세기 전환기의 시대적 요구와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일종의 예술운동이었다. 19세기 아카데미 예술의 반작용으로 등장한 아르누보는 특히 꽃이나 식물 덩굴 등에서 따온 장식적인 곡선들을 중시했으며 예술가는 건축에서 가구까지 삶의 모든 부분을 예술의 시각으로 접근해야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모든 분야에서 새롭고 통일적인 양식을 추구하고자 한 당시 진보적인 미술가들의 도전이었다.
 자연으로부터의 모티프, 유연하고 유동적인 선과 장식성. 알폰스 무하는 바로 이러한 아르누보 양식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예술가였으며 일명 ‘무하 스타일’로 아르누보의 정수로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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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폰스 무하는 1860년 7월,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던 슬라브 지역 중 하나였던 모라비아 남쪽의 작은 마을 이반 지체에서 태어났다. 회화, 책, 삽화, 조각뿐만 아니라 디자인포스터와 보석, 인테리어 장식, 연극과 제품 디자인 등에서도 이름을 떨친 놀랍도록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던 무하는 한편으로 위대한 체코인이기도 했다. 체코의 첫 번째 우표를 디자인하고 <슬라브 서사시> -슬라브를 위한 기념비- 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과 인류의 정신적 개선을 위해 활발하게 정치적인 활동을 벌엿던 프리메이슨의 주요 멤버로 활동할 만큼 적극적인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 
사람을 위한 그림을 만드는 화가가 되기를 원한다.” 


2016 알폰스무하-지스몽다.jpg▲ Alphonse Mucha, Poster for 'Gismonda', 1894
 

 그가 36살이 되던 1895년, 무하의 삶과 예술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 탄생했다. 바로 파리 연극계의 슈퍼스타인 사라 베르나르를 위해 디자인한 그의 첫 번째 포스터 <지스몽다 Gismonda>. 길고 폭이 좁은 구성의 실사 크기의 여배우를 표현한 그의 디자인은 당시 파리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기존 포스터와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포스터였고 단숨에 대중의 관심을 이끌었으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1896년 무하는 인쇄업자와 광고 포스터 및 장식 포스터 제작을 위한 독점 계약을 체결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시켜 나갔다.  
 

"포스터는 더 많은 대중을 계몽하기에 좋은 수단이다. 
일하러 가는 그들은 멈춰 서서 포스터를 보게 될 것이고, 정신적인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전시장이 될 것이다" 





 알폰스 무하, 그 두 번째 이야기

 2013년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展>에 이어 기획된 무하의 두 번째 전시, <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의 선구자 展>은 무하의 예술적 커리어의 발전을 기반으로 철학적 측면을 부각시킨 지난 전시와 달리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로서 그의 업적에 중점을 두고 있다. 

 파리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에 프랑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의 포스터와 품위 있는 여성과 꽃들을 소재로 한 장식패널(panneaux décoratifs), 네슬레(Nestlé)와 모에 샹동(Moët & Chandon) 등의 브랜드를 홍보하는 포스터 작가로서 유명세를 떨치며 19세기 새로운 예술 포스터의 시대를 예고했던 그는 당대의 작가뿐만 아니라 만화가와 상업 디자이너 등 많은 현대의 그래픽 작가들에게도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번 전시는 우아한 인물 표현과 화려하고 세련된 장식으로 세기말 파리 거리를 수놓은 신선했던 알폰스 무하의 원작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결코 흔치않은 기회이다. 알폰스 무하 재단 컬렉션에서 엄선된 300여 점의 유화, 판화, 사진, 디자인 상품, 장식품, 드로잉을 만나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하의 영향을 받은 한국과 일본의 만화가들을 소개함으로써 아르누보의 꽃이라 불리는 무하의 생애 전반에 걸친 예술세계와 그가 오늘날 현대예술과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미친 영향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SECTION 1: 
프롤로그-무하 스타일을 완성하다(PROLOGUE-Making of the Mucha Style)

 무하가 미국을 처음 방문하던 1904년, 그는 이미 전 유럽에서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미국의 주요 신문 매체들은 무하를 ‘포스터 예술가들의 별’ 혹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식 예술가’ 라고 칭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무하의 삶과 더불어 19세기 말 파리의 문화적, 예술적 배경과 함께 모라비아에 기반을 둔 그래픽 아티스트로서의 작품 활동을 보여준다. 이 섹션은 무하가 자료수집 용으로 모은 장식품들과 함께 사진, 유화, 드로잉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SECTION 2: 
스토리텔링의 예술(The Art of Storytelling)
 
 무하는 근본적으로 ‘선형작가’였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전 제작된 초기 삽화에서는 빠르게 형태를 잡아내는 천재적인 재능과 더불어 풍성한 선들을 통해 이야기를 담아내는 창조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기술과 스타일을 판화 제작에 도입하면서부터 그는 포스터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전 이미 파리에서 성공한 삽화가가 되어 있었다. 이 섹션에서는 연극적, 서사적 요소 등 무하 스타일을 이루는 주요 요소들을 살펴보며 파리에 머물기 전 체코의 풍자잡지에 실렸던 연재만화부터 그가 직접 디자인한 책, 잡지의 삽화 등을 만나볼 수 있다.


SECTION 3: 
광고 예술(The Art of Advertising)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모델로 한 첫 번째 포스터인 지스몽다(Gismonda)가 성공한 1895년에 무하는 포스터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벨 에포크 시절의 파리는 다색 석판화의 대량 생산을 통한 광고 효과로 인한 소비 증가로 포스터 광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1896년과 1904년 사이 무하는 출판업자 샴푸누아(Champenois)를 위해 100점 이상의 포스터 디자인을 진행 하였는데, 이는 무하가 아르누보 양식을 이끄는 선구자로서 명성을 쌓는데 큰 일조를 했다. 이 섹션에서는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가로 성장한 무하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된 1890년대를 주로 다룬다. 사라 베르나르를 디자인한 작품을 포함해 상징적인 포스터들과 다양한 상업적인 제품 등 대중적인 ‘브랜드’이미지로의 소통을 위한 무하의 디자인 전략을 보여준다.

2016 알폰스무하-카멜리아 (동백꽃 부인) 포스터.jpg▲ Alphonse Mucha, Poster for 'La Dame aux Camélias', 1896
 

SECTION 4: 
만인의 예술가(Picture Maker for Ordinary People)

 전반적인 그의 삶을 살펴보면 무하는 사회에 헌신적인 예술가였다. 예술가는 예술이 주는 영감의 힘을 빌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1898년 프리메이슨과 같은 다양한 사회 개혁 집단에 가입해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의 대중화 프로젝트를 시행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번 섹션에서는 아르누보 양식 그 자체라고 평가되는 무하의 장식 패널과 그의 판화가 성공하기까지의 문화적 배경을 살펴본다. 또한 무하의 예술적 철학과 무하 스타일 이면의 디자인 요소를 찾아본다.

2016 알폰스무하-백일몽.jpg▲ Alphonse Mucha, Rêverie, 1898
 

SECTION 5: 
미(美) –일상생활의 영감(Beauty-Inspiration for Lifestyle)

 아르누보 양식은 20세기 모던 디자인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고전적인 장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과 빠르게 변모하는 사회 환경에 발맞추어 미학의 아름다움을 보급하고 많은 대중의 삶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무하가 디자인 한 제품과 패킹 디자인, 파리에서 활동한 보석가 조르주 푸케(1858-1929)와의 콜라보레이션 등을 살펴본다. 또한 Documents decoratifs(1902)와 Figures decorative (1905) 등 예술가와 제조업자를 위해 제작한 디자인 핸드북을 만나볼 수 있다.

20160929_115800.png▲ Alphonse Mucha, Documents décoratifs: final drawing for Plate 49, 1902
 

SECTION 6: 
에필로그-‘무하 스타일’ 이후의 이야기(Epilogue-The After of ‘le style Mucha’)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무하의 명성과 아르누보 양식은 잊혀져가는 듯 했으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주목 받게 된다. 1963년 런던의 빅토리아&알버트 미술관에서 무하의 아들 이르지 무하(1915-1991)와의 협업으로 개최된 무하의 회고전 ‘아르누보와 알폰스 무하 展’은 이러한 움직임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1960년대를 풍미했던 영국과 미국의 그래픽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의 관심에 불을 지폈으며 1980년대에는 머나먼 동양국가들의 새로운 세대들에게까지도 그러한 여파가 전해졌다. 이에 일러스트레이터와 만화 작가들이 직간접적으로 무하 스타일에 영감을 받아 빠르게 시각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 한국과 일본에서 부상하기 시작한 만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무하 스타일이 어떻게 그들의 작품에 영감을 주고 새로운 시각적 언어로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의 유타카 이즈부치와 클램프, 한국의 고야성, 임주연, 그리고 추혜연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비록 이제는 유행하지 않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길게 남는 아르누보 양식, 그리고 그 선두에 서있었던 인간미 넘치는 예술가 알폰스 무하. 그가 작품 속에 그려낸 유한 선과 색채, 그리고 이야기 한없이 따뜻해질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지난 여행의 향기를 다시금 맡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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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뚱미니
이제는 미술계까지!!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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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8 13:52:0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