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크리스마스 분위가 물씬 풍기는 대학로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전만큼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펴지지는 않았지만 팬시 문구점은 크리스마스카드를 사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메일, 카카오 톡 같은 SNS로 소통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도 아직까지 크리스마스카드가 가지는 아날로그적인 매력이 있나 봅니다. 번화한 대학로를 벗어나,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니 선돌 극장이 보였습니다. 대학로 중심부와 달리 어딘가 모르게 정감 있는 동네 분위기였습니다. 아파트 산지 언 10년이 넘는 저는 요즘 이러한 주택가에 더욱 정감이 갑니다. 동네 분위기에 취해 있을 무렵, 어느 덧 선돌 극장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연극 [하퍼리건]을 보며, 저에게 아직 주어지지 않은 역할인 ‘엄마’와 ‘아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엄마도 뛰는 심장을 가진다!
주인공 하퍼리건(이하 하퍼)은 겉보기엔 평범한 가정에 살고 있는 듯 보인다. 집에서 저녁 밥상을 차리고 기다리는 자상한 남편, 사춘기 또래의 반항기가 있지만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하는 딸과 함께 하퍼는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이는 밖에서는 보는 표면적인 모습일 뿐이다. 하퍼는 평범한 일상에 벗어나고 싶었고, 이는 아버지 임종을 계기로 밖으로 표출된다.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하퍼는 집을 떠나 고향으로 떠나며 일탈한다. 사실, 하퍼가 집을 떠나기 전, 첫 일탈은 딸과 같은 나이 남학생에게 가슴이 설레는 장면에서부터 이미 시작한다. 자신에게 이성은 남편뿐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딸과 같은 학교 동급생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첫 만남에서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녀가 모든 일탈을 마치고 돌아온 뒤, 그녀는 소년에게 고백한다. 그녀의 심장이 소년 앞에서 처음부터 뛰었다고… 그녀는 소년에게 한 거짓말을 그만둔다.
아내도 남편을 온전히 믿기는 쉽지 않다.
자상해 보이는 하퍼 남편은 사연 하나를 가지고 있다. 늘 집에 있는 남편은 가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누명인지 아닌지 모를 성범죄 때문에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죄명은 미성년자 성적 도찰이다. 처음에 아내는 남편을 믿는다고 말했다. 아니 남편을 믿으려 노력했다. 노력을 해도 결국 그녀는 남편에게 죄가 없음을 온전히 믿어주지 못 했다. 객관적인 증거는 남편이 범죄자라고 말했고 남편은 한 순간에 범죄자가 되었다. 그녀 역시 객관적 증거 앞에 남편을 믿지 못 했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이루고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이지만 결국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에게 고백한다. 사실 나는 당신을 완벽하게 믿지 못 했다고… 그녀는 남편에게 한 거짓말을 그만둔다.
그래서 하퍼는 거짓말을 그만두기로 했다.
연극 마지막 장면. 하퍼는 남편과 식사 자리에서 고향에서 자신이 한 모든 일탈을 털어 놓는다. 외간 남자와의 잠자리. 남편을 온전히 믿어주지 못한 자신. 술집에서 외간 남자와 한 행동. 남편은 하퍼가 한 일탈을 그대로 들어주고,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말을 그만둔 하퍼에게 고마워한다. 그렇게 하퍼와 남편은 한 발짝 더 다가선다.
여담이지만, 저는 마지막 하퍼가 남편에게 모든 일탈을 고백하는 행동은 이기적여 보였습니다. 세상에 모든 진실이 옮음을 의미하지 않으니까요. 사실, 저는 현실 속에 하퍼의 고백은 자기를 위한 후련함은 줄지 모르지만, 남편에게는 어떤 감정을 줄지는 조금 의문이 들었습니다. 남편의 감정이 긍정적일지에 대해서 저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그만두기로 한 하퍼의 용기는 부러웠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저런 관계를 맺으며, 혹은 역할을 맡으며 거짓말로 자신을 치장한 채 살아가고 있기도 하니까요. 여러분 옆에도 하퍼처럼 거짓말을 그만두게 해 주는 이가 있나요? 이 질문을 한 번쯤 생각해 보시면서 이 연극을 즐기시는 것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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