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당대 멕시코 작가 10인의 작품을 비롯, 사진 및 영상물, 장신구, 서신 등 다양한 자료 50여점 등 총 100여점 소개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조선일보사 공동주최로 소마미술관에서 오는 6월 6일부터 9월 4일까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외 멕시코 작가 10인의 작품 총 100여점을 소개하는 “프리다 칼로_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展을 개최합니다.
본 전시는 20세기 초현실주의 작가 프리다 칼로의 절망적인 삶과 사랑에서 예술혼으로 피어난 멕시코 국보급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과 예술적 동맹, 멕시코의 혁명사와 시대상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당대 멕시코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 회화, 드로잉, 사진 및 영상 등 총 100여점 작품을 선보입니다. 특히 프리다 칼로의 인생을 모티프로 한 영화 <프리다>와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상, 프리다 칼로가 사용하던 장신구와 재현된 의상 등을 포함하고 있어 흥미로운 감상이 가능한 전시입니다.
그녀의 삶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일 것이다.
그녀의 삶에 대해서 글을 읽을 수록 이번 전시에 꼭 가고 싶어졌다.
프리다 칼로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전시기간 : 2015. 6. 6.(토) ~ 2015. 9. 4.(금)
관람시간 : 10:00 - 20:00(도슨트 운영시간 :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휴 관 일 : 없음
입 장 료
성인(19-64세) : 개인 13,000원
청소년(13-18세) : 개인 10,000원
어린이(5-12세) : 개인 6,000원
특별요금(65세 이상, 국가유공자, 단체인솔교사) : 6,000원
※ 장애인 : 1~3급 동반 1인까지 무료, 4~6급 특별요금 6,000원
※ 단체 : 20인 이상(2,000원 할인), 어린이 단체(1,000원 할인)
※ 만 4세 이하 어린이는 부모 동반 시 무료입장 (단체 5,000원)
주 최 : 조선일보, 국민체육진흥공단
주 관 : 소마미술관, PIALUX INC, 한솔BBK
전시장소 : 소마미술관 1~5전시실
전시작가 :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등 총 12명
출 품 작 : 회화, 드로잉, 사진, 장신구 등 총 100여점
홈페이지 : www.frida.kr
문 의 : 02-801-7955
전 시 구 성
1 전시실 비둘기와 코끼리 (연표, 사진, 영상)

“내 인생에 두 번의 대형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 사고이며 다른 하나는 디에고이다.”-프리다 칼로-
칼로와 리베라, 비둘기와 코끼리의 결혼 전후 연표, 사진, 영상을 통해 본격적인 관람 전 작품의 이해를 돕는 코너.
2 전시실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있음이 행복하다.”-프리다 칼로-
소아마비, 왼쪽 다리 11곳 골절, 오른발 탈골, 왼쪽 어깨 탈골, 요추, 골반, 쇄골, 갈비뼈, 치골 골절, 버스 손잡이 쇠 봉이 허리에서 자궁까지 관통, 일생동안 척추수술 일곱 번을 포함하여 총 서른 두 번의 수술, 오른쪽 발가락 절단에 이어 무릎 아래 절단. 세 번의 유산.
외형적인 변화와 육신의 고통이 프리다 칼로로 하여금 현실과 초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화판 위의 작은 세계를 만들게 하였고 후대에 사람들이 그 기괴하고 강렬한 유일성에 환호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결코 단순한 절망이 아니다.
교통사고가 내적, 외적인 상흔으로 칼로의 인생 전반을 지배하며 매 순간의 현실로 각인된다. 육체의 뒤틀림과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이 내면으로 침잠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과 사물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칼로에게 주었고, 결과적으로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로 작용하였다.
3 전시실 예술과 사랑

“매 순간 그는 나의 어린아이이자 갓난아기이며, 순간순간, 매일이 내 존재 그 자체이다.”-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를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로 만든 또 하나의 에너지원은 디에고 리베라였다. 육체적 고통에 더하여 리베라의 바람기로 인한 정신적 피폐가 작업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게 하였다. 1929년, 당대의 인기 벽화작가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으로 그로부터 수년간 그의 그늘에서 화려한 멕시코 전통 복장을 한 눈에 띄는 외모의 멕시코 여인으로만 각인되었었다.
리베라가 미국에서 의뢰받은 벽화작업으로 샌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뉴욕에서의 외지 생활이 길어지면서 향수병과 외로움에 지쳐 멕시코로 돌아왔을 때 리베라와 동생 크리스티나의 불륜에 절망한 칼로는 이후 혁명가 트로츠키(Leon Trotsky), 조각가 노구치(Isamu Noguchi)와의 사랑, 동성애 등을 거치며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1937-38년에 8년간의 결혼 생활 중 그린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작품을 남긴다.
4 전시실
4-1 예술과 혁명

“고통, 기쁨, 죽음은 존재를 위한 과정일 뿐. 이 과정의 혁명적 투쟁이야말로 지성을 향해 열린 문이다.”-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와 디에로 리베라의 정치적 성향은 한결같이 혁명적이었다. 1910년 멕시코 혁명 이후 멕시코의 정치․사회․경제적 혼란은 가중되었고 노동자, 농민 중심의 소요가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1922년에 멕시코 최고 명문인 국립예비학교(Escuela Nacional Preparatoria)에 입학한 칼로는 교내 강당에서 프레스코 벽화를 제작 중이던 리베라를 보고 존경하게 된다. 1925년에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로 오랜 시간 침대에서 회복기를 갖는 동안 그림을 시작했던 칼로는, 1928년 교육부 청사의 프레스코 벽화작업 중이던 리베라에게 사다리에서 내려와 그림을 봐달라고 당돌한 부탁을 하면서 인상적인 만남을 가졌고, 결국 1929년에 그의 부인이 된다. 이후 그와 정치적 노선을 같이 하며 많은 거리 시위에 참가하여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심지어는 세상을 뜨기 열흘 전에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리베라와 함께 과테말라의 좌파 대통령 지지 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칼로는 고통과 절망의 무게를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으로 떨쳐내려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작품에서 정치성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라 에스메랄다 미술학교(La Esmeralda) 교수로 위촉되었을 때에도 사회주의 담론보다는 자기성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가르친 덕분에 학생들 간에 그를 추종하는 ‘프리다 사단(Los Fridos)’이 생기기도 했다.
다만 스페인 식민시대의 잔재에서 벗어나려는 의식처럼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었던 것 같이, 칼로는 자신의 뿌리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 도상들(인디오 여인, 테우아나 의상과 장신구, 멕시코 신화 등)이나 그림에 글씨를 넣는 멕시코 전통 봉헌화의 전형적 구조와 세밀한 표현방식을 통해 민족주의적 성향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4-2. 비바 프리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 칼로-
결혼 전에는 심플한 블라우스와 단정한 치마를 즐겨 입었던 칼로는 결혼 후 리베라 취향에 따른 점도 없지 않으나 전략적으로 멕시코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전통의상을 입게 된다. 땅에 끌릴 정도로 긴 치마에 하얀 레이스 망토로 얼굴을 둘러싸 꽃처럼 보이게 만드는 테우아나 여인의 전통 의상은 칼로의 자화상에도 등장한다. 골반만 느리게 흔드는 테우아나 여인의 관능적인 춤사위와 협곡마을에서 큰 소리로 흥정을 하며 행상을 하고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성생활을 했던 그녀들의 파워풀한 여성성은 리베라의 여성편력에 지친 그녀가 본능적으로 꿈꿨던 세계이기도 하다.
5 전시실 멕시코 근대 미술

“멕시코 민중의 예술은 민중의 것이며 위대하다. 또한 민중의 것이기 때문에 집단적이다.”-기술노동자, 화가와 조각가 조합’ <사회, 정치, 미학 선언> 중-
자료 및 사진 출처 : 소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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