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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니 - 레위기 [영화]

영화 <레위기>를 보고 난 후

by 임유진 에디터
2026.10.2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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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시골 마을로 이사 온 소년 나임은 그곳에서 라이언을 만난다. 딱히 즐길 거리 없는 낯선 동네에서, 거대한 폐공장과 거친 불꽃은 두 소년만의 비밀스러운 도피처가 되어준다. 하지만 규율과 금기를 상징하듯 두 소년이 나눈 밀회는 이내 끔찍한 저주로 변모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악령, 그리고 오직 나에게만 보이는 공포. 영화 <레위기>는 퀴어 소년이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과 외로움을 오컬트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공장이라는 거대한 건물들이 주는 느낌은 그 자체로 위압적이다. 라이언과 나임이 폐공장에 남몰래 들어가는 순간, 그곳은 두 사람만의 비밀 공간이 된다. 공장 주변에서 계속 피어오르는 불과 연기는 심심한 시골 마을에서 두 사람이 찾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하지만 이 불꽃은 곧 악령을 불러오는 통로가 된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태우던 공장처럼, 나임과 라이언 사이를 지탱하던 믿음과 안전망 역시 불타 사라진다.


      퇴마사가 어떻게 비현실적인 힘을 얻게 되었는지, 의식 이후 눈앞에 나타난 존재가 진짜 라이언인지 환영인지는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영화가 집요하게 물어보는 것은 서사의 개연성이 아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네가 진짜인가’라는 질문이다. 영화 속 괴물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타깃이 된 사람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면 언제든 다가온다. 타인의 눈에는 그 괴물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3자가 보기에는 그저 혼자 공포에 질려 발작하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그들 앞에서 나임은 그저 '정신이 이상해서 바로잡아야 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의 대상은 분명히 실재하고 만질 수도 있다. 하지만 비동성애자들은 만질 수도, 느낄 수도, 볼 수조차 없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는 그 두려움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두려움을 느끼는 당사자가 두려움이 실존한다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들은 두려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게끔 하는 공포의 대상은 지금도 버젓이 밖에 있는데. 이러한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 대목이 바로 편의점 장면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편의점 속 사람들의 반응이다. 편의점 내부에 있는 상황 속에서 ‘지금 당장 저 괴물이 나를 덮칠까 봐’가 아닌, ‘아무도 나와 함께 있어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가 나임에게 앞서 닥친 두려움이다. 분명 공동체 안에 속해있음에도 그 내부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그가 마주한 진정한 공포이자 현실이다.


      상황은 끊임없이 나임을 고립시킨다. 이는 영화 초반부 교회 장면과도 연결된다. 분명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인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딘가 고립된 것처럼 보인다. 나임이 시골 마을로 오게 된 건 본인 의사가 아닌 오로지 어머니 알린의 선택이었다. 어머니는 마을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얻지만, 나임은 그 소속감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어쩌면 나임을 괴롭히는 괴물의 정체는 '아무도 내 곁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나만 볼 수 있는 것을 본다는 외로움,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결말에 다다랐을 때 오히려 나임에게 가장 폭력적인 인물은 라이언이 아닌 어머니 알린이다. 그녀는 나임을 끊임없이 통제하며 마을 공동체의 규율 안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그 규율은 나임과 라이언에게 폭력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나임의 변화다. 혼자 남겨지는 게 두려워 엄마에게 같이 있어 달라고 애원하던 영화 초반과 달리, 결말에서 나임은 자발적으로 엄마 곁을 떠나 라이언을 선택한다. 타인에 의해 들어왔던 마을을 나임이 직접 버스를 타고 빠져나가는 모습은 그가 비로소 자기 삶의 주체성을 찾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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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딩에서 버스 창밖으로 또 다른 라이언의 환영이 나타나며 섬뜩함을 남기지만, 승객들로 가득 찬 버스 안에서 라이언과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듣는 나임에게 그 환영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 나임이 영화에서 가장 심리적 안정을 느꼈던 순간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버스 안에서 내가 실제라고 믿는 라이언과 몸을 맞대고 있던 때다. 두 사람의 얼굴을 오래 보여주는 클로즈업 샷은 나임과 라이언 둘 사이의 공간에 그 어떤 외부 요소도 침입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어폰을 나눠 낀 엔딩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 사이에 둘러싸인 채 '내가 진짜라고 믿는' 라이언과 함께 있는 나임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설령 창밖에 라이언의 모습을 한 악령이 배회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개구리, 공장, 불같은 요소들이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보다 비유나 상징으로만 읽힌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를 해치는 괴물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설정만으로 세부적인 디테일까지 다 채우기엔 부족했다. 사랑하는 이와 닮은 악령이 나타난다는 초반 설정은 영화의 환상성을 미루어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설명이 생략되는 것이 허용되지만, 이 점이 자칫하면 관객에게 흐릿한 혼란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기>가 가진 설정의 힘과 에너지는 강렬하다. 구조적인 아쉬움을 덮을 만큼 매력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퀴어 서사와 오컬트 장르의 독특한 결합을 보여주는 영화 <레위기>는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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