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 레위기 19:18
성경의 레위기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켜야 할 율법과 규범을 담고 있다. 그중 일부 구절은 오늘날에도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근거로 인용된다. 그리고 2026년, 호주의 영화감독 애드리안 키아렐라는 자신의 장편 데뷔작으로 레위기의 이름을 내건 ‘퀴어 오컬트 호러 영화’를 공개했다.

비틀린 신앙이 지배하는 외딴 마을. 마을의 금기를 어긴 나임과 라이언은 어른들에게 발각되어 구원 치유 의식을 당한다.
소년들의 억눌린 욕망과 두려움은 가장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한 괴물로 나타난다.
그리고 소년들의 괴물은, 서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레위기〉 시놉시스

10대 소년 ‘나임’은 신앙심이 투철한 어머니를 따라 호주의 어느 외딴 마을로 이사한다. 교회 외에는 갈 곳도, 즐길 거리도 마땅치 않은 따분한 마을에서 나임은 동급생 ‘라이언’을 만난다. 소극적이고 수수한 나임과 다르게 활발하고 열정적인 라이언. 서로 상극인 듯 보이는 둘은 폐공장을 아지트 삼아 비밀스러운 사랑을 키워 간다.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이는 때는 오래 가지 않는다. 우연히 라이언의 집을 방문한 나임은 라이언과 헌터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질투와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힌다. 결국 나임은 목사인 헌터의 아버지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폭로하고, 이 일로 라이언과 헌터는 ‘구원 치유’를 받게 된다.

구원 치유 의식을 받은 직후부터 라이언과 헌터에게 이상 현상이 발생한다. 바로 사랑하는 상대의 모습을 한 미지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악령인지, 괴물인지 모를 그 존재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태연하게 다가와 사랑을 속삭이다가 순식간에 목숨을 위협한다. 자신이 라이언과 헌터를 저주받게 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나임도 이윽고 엄마에 의해 강제로 구원 치유를 받게 된다. 뒤틀린 종교의식에 의해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폭력적인 시선이 팽배한 마을에서 두 소년은 도움을 구할 상대도, 저주에서 풀려날 방법도 찾지 못한다.
영화가 자아내는 공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나임과 라이언은 물론,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 역시 눈앞에 보이는 이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인지, 목숨을 앗아가려는 괴물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 미지와 의심의 공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지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극 중 저주는 인물이 혼자 있는 상황에서 발동한다. 즉, 신뢰할 만한 타인과 함께 있을 때는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임과 라이언이 살아가는 마을은 신앙을 중심으로 형성된 폐쇄적인 기독교 공동체로, 성적 지향을 이유로 배척당하는 청소년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극히 제한적이다. 괴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랑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드러내야 하지만, 이를 밝히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온다. 마음 둘 곳 없는 두 소년은 그렇게 점점 더 궁지에 몰린다.
나임의 어머니는 기독교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시골 마을로의 이사를 감행할 만큼 신앙심이 강하며, 아들 나임에게도 통제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나임이 호소하는 고통에는 무관심으로 일조한다.
이렇듯 자신의 정체성이 죄악으로 규정될 수 있는 상황은 모든 성소수자들이 흔히 겪는 일상이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와 감정을 부정당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마저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현실에 놓이곤 한다. 〈레위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이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낙인과 억압을 가시화한다.

80분 가량의 짧은 러닝타임과 압축된 서사는 완성도 높은 오컬트 호러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아쉬움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호러는 그 자체로 목적이기보다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억압과 공포를 드러내기 위한 비유로 기능한다. 호러라는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영화가 포착하는 것은 괴물의 정체가 아닌 괴물을 만들어 내는 사회의 시선이다. 이 퀴어 오컬트 호러 영화의 방점은 ‘호러’가 아닌 ‘퀴어’에 있다.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레위기 19장 18절은 원수를 갚거나 이웃을 원망하지 말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는 타인을 향한 사랑과 연대의 윤리를 강조하는 구절이다.
영화 속 어른들은 소년들을 사랑하고 보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감정과 존재를 존중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보호라는 명분 하에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인 성경의 ‘레위기’는 동성애를 비난하는 종교인들에게 비난의 근거로 사용되는 단골 소재다. 그렇다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율법은 어디로 갔는가. 어쩌면 영화의 제목은 타인을 사랑하라는 종교의 가르침과 타인의 사랑을 금지하는 종교적 실천 사이의 모순을 드러내는 동시에, 율법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이들에게 그 의미를 되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장편 부문 작품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레위기〉는 10월 21일 정식 개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