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라는 단어는 다소 무겁다. 살아온 시간을 잊어버리고,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일까. 이제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로 다가온 소재를 유쾌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뮤지컬이 있다. 제목부터 인상적인 작품,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연상되는 제목 때문이었을까.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작품은 치매를 앓으며 자신만의 '이상한 나라'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 춘자씨와, 엄마의 흩어진 기억의 조각을 찾아가며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춘자씨가 살아가는 세계
무대 위에서 만난 춘자씨에게는 순수하고 해맑은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문득 마음이 아리고 애틋해졌다.
지금은 나이가 든 춘자씨에게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자신만의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른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극을 보는 동안 객석 곳곳에서 눈물과 훌쩍임이 들려왔다. 춘자씨에게 자신의 부모님을, 혹은 미래의 자신을 대입했기 때문일까. 나 역시 무대 위의 춘자씨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를 먹고, 언젠가 가족의 변화를 마주하거나 스스로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춘자씨의 이야기는 무대 위에 머무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과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춘자씨를 찾아가는 가족들
춘자씨가 자신만의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가족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엄마의 흩어진 기억을 찾아 나서면서도 눈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때로 웃음을 자아내고, 마음 한편을 씁쓸하게 만든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있고, 그럼에도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춘자씨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이라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서로를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마음이 있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현실을 견디며 결국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웃음과 애틋함을 함께 남긴다.
춘자씨가 살아가는 세계와 가족들이 바라보는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어긋남을 바로잡으려는 일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 있다. 작품은 가족 간의 소통이 부재한 현실을 짚어내면서도,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기억과 상실의 경계는 차갑고 두렵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그 안에서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일. 작품은 그 쉽지 않은 과정을 유쾌하게 때론 뭉클하게 그려낸다.
기억과 상실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가장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오는 10월 16일부터 11월 15일까지 더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