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Showtime!”
지미 맥길은 법정에 들어서기 전 이렇게 중얼거린다. 공연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변호사가 법정에 들어서며 할 만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미 맥길에게 법정은 언제나 하나의 무대였다. 그는 배심원의 마음을 움직이고, 판사의 허점을 파고들며,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의 무기는 법률 지식만이 아니다. 타고난 언변과 기발한 발상,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다.
미국 드라마 《베터 콜 사울(Better Call Saul)》은 《브레이킹 배드》의 프리퀄로, 삼류 변호사 지미 맥길이 범죄자들의 변호사 사울 굿맨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단순히 한 변호사의 타락을 다룬 범죄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섯 시즌에 걸친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남자의 오랜 열등감과 인정 욕구, 그리고 형제간의 불화가 자리한다.
지미 맥길에게는 형이 있다. 척 맥길. 명문 로펌 HHM의 공동 창립자이자 법조계에서 존경받는 변호사다. 척은 원칙적이고 완고하며, 법이라는 제도를 신성하게 여긴다. 반면 지미는 젊은 시절부터 사기와 편법을 일삼았다. 사람들은 그를 '슬리피 지미(Slippin' Jimmy)'라고 불렀다. 지미는 그런 과거를 청산하고자 형의 로펌에서 우편실 직원으로 일하며 공부했고, 마침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그러나 형은 동생을 인정하지 않는다.
척에게 지미는 언제까지나 사기꾼이다. 지미가 변호사가 되었다는 사실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법조계에 대한 모독이다. 척은 동생이 자신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방해한다. 지미는 자신을 가로막은 사람이 형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것이 두 사람의 비극이다. 지미는 형을 존경했다. 전자기파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정신적 증상으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형을 위해 매일 식료품을 나르고, 신문을 가져다주고, 형의 병을 걱정했다. 그러나 그 모든 헌신에도 불구하고 형은 지미를 믿지 않는다.
물론 척의 불신이 전적으로 부당한 것은 아니다. 지미는 실제로 거짓말을 하고, 증거를 조작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규칙을 어긴다. 그는 형이 우려한 대로 행동한다. 문제는 그 반대의 가능성이다. 척은 동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미가 선한 행동을 할 때조차 그 이면의 속임수를 의심한다.
사람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 앞에서 얼마나 오래 선량할 수 있을까.
드라마는 이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지 않는다. 형의 불신 때문에 지미가 타락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지미에게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고, 그는 번번이 편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지미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과거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에 의해 끊임없이 소환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척은 동생의 과거를 기억했고, 지미는 형의 인정을 갈망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았기에 서로에게 가장 잔인한 사람이 되었다.
척이 죽은 뒤에도 지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형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채 새로운 이름을 향해 나아간다. 사울 굿맨. 'It's all good, man'이라는 말장난에서 탄생한 이름이다. 모든 것이 괜찮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남자는 사실 아무것도 괜찮지 않다.
이러한 지미의 모순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시즌 4 마지막 화에 등장한다.
지미는 형의 이름을 딴 장학금 심사에 참여한다. 지원자 중에는 크리스티 에스포지토라는 소녀가 있다. 그는 과거에 절도를 저지른 전력이 있지만, 이후 성실하게 학업에 임해 왔다. 지미는 그녀를 장학생으로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다른 학생들을 선택한다.
지미는 심사장을 떠나는 소녀를 쫓아간다. 그리고 숨 가쁘게 말을 쏟아낸다.
사람들은 네 과거를 잊지 않을 거라고.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은 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그들의 인정을 기다리지 말라고. 네 방식으로 성공하라고. 그들이 정한 규칙에 매달리지 말고, 그들보다 영리해지라고. 반드시 성공해서 그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하라고.
그는 소녀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미의 말은 격려이면서 동시에 저주처럼 들린다. 그는 소녀에게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녀가 정당한 방법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부정한다. 세상이 너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세상의 규칙을 우회하라는 것이다.
소녀가 떠난 뒤 지미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는 누구에게 그토록 절실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크리스티에게? 아니면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지미는 평생 형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형처럼 훌륭한 변호사가 되고 싶었고, 형과 같은 세계에 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인정받지 못한 그는 이제 그 세계를 경멸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질서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하겠다고 선언한다.
그 선언이 바로 사울 굿맨의 탄생이다.
이후 지미는 점점 더 깊숙이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마약 카르텔의 일원들을 변호하고, 위험한 거래에 관여하며,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범죄자들을 보호한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서였고, 때로는 의뢰인을 위해서였으며, 또 어떤 순간에는 자신이 그 일을 너무나 잘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타인의 거짓말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사울 굿맨은 성공한다. 돈을 벌고, 화려한 양복을 입고, 대형 광고판에 자신의 얼굴을 내건다. 이제 누구도 그를 무시할 수 없다. 적어도 그가 만들어 낸 세계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그 성공에는 기묘한 공허함이 있다. 사울 굿맨이 유명해질수록 지미 맥길은 사라진다. 그가 무대 위에서 가장 화려하게 연기할수록 무대 뒤에 남은 인간은 더욱 외로워진다.
여기서 다시 형 척을 생각하게 된다.
척은 지미가 변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미는 형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형에게 반항하는 과정에서 형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이 되어간다. 자신을 규정한 사람에게서 벗어나려 했으나, 오히려 그 사람의 판단에 자신의 인생을 종속시킨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척에게 돌릴 수는 없다. 형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타인을 속이고 범죄에 가담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지미에게는 다른 길도 있었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세계와 싸우는 데 몰두한 나머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린다.
나는 이 지점에서 《베터 콜 사울》이 단순한 권선징악의 드라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선인도 드물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잔인할 수 있고,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동시에 그 사람을 파멸시킬 수 있다. 뛰어난 재능은 누군가를 구원하기도 하지만, 그 재능을 가진 사람 자신을 파괴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미 맥길은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는 형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동료에게 존중받고 싶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성공하고 싶었다. 그 욕망 자체는 평범하다. 그러나 인정받지 못한 상처가 자신을 증명하려는 집착으로 변하는 순간, 그는 무엇을 위해 성공하려 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사막에서 자신의 오줌을 마셔가며 700만 달러를 짊어지고 걷던 지미가 마이크에게 묻는 장면은 어떤가.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거냐고. 마이크는 지미와 달리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을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모든 일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든, 마이크의 말마따나 수많은 선택이 쌓이고 쌓여 결국 두 사람을 국경 지대의 사막 한가운데로 내몰았다. 지미는 생각한다. 사랑하는 킴의 얼굴을. 둘이 오랜 변호 끝에 쓰디쓴 담배 한 대를 나누어 피던 순간을. 그리고 훗날 킴에게 말한다. 당신을 생각했기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그들은 계속해서 선택한다. 그 선택이 정당하든 부당하든, 선의에서 비롯되었든 악의에서 비롯되었든, 선택의 결과는 때때로 그들의 의지를 벗어나 그들을 더 거대한 게임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들은 스스로 게임에 뛰어들기도 하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게임의 말로 이용되기도 한다. 《베터 콜 사울》은 그런 이야기다.
크리스티 에스포지토에게 건넨 지미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너는 할 수 있다고. 반드시 성공해서 그들에게 보여주라고.
어쩌면 그 말은 반쯤 옳고 반쯤 틀렸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만으로 평생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변화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복수하는 일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불신을 반박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그 불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It's Showtime!”
사울 굿맨은 다시 무대에 오른다. 사람들은 그의 익살스러운 말투에 웃고, 기발한 변론에 감탄하며, 대담한 속임수에 혀를 내두른다. 그는 언제나 관객을 즐겁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꺼진 뒤에는 누가 남는가.
화려한 양복을 벗고, 과장된 미소를 거두고, 더 이상 누구에게도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진 순간. 그곳에 지미 맥길이라는 사람이 남아 있을까.
《베터 콜 사울》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유는 한 인간이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도 한 인간이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동안,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그 소녀를 생각한다.
크리스티 에스포지토는 과연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부디 그녀만큼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허비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지미가 끝내 찾지 못했던 다른 길을 발견했기를 바란다.
그녀가 성공했든 실패했든, 적어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는 않았기를.
그것이 지미 맥길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으나 끝내 자신에게 허락하지 못했던 삶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