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츠락의 20주년, 그날은 유난히 날이 화창했다.
운수 좋은 날이라도 된다는 듯이 한강공원의 초입에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었고, 살랑이는 바람에 맞추어 초록색 잔디밭이 푸르렀다.
가을과 한강, 락의 조합이라니
락페하면 생각나는 찌는듯한 더위, 생존을 위한 쿨링 팔토시와 양산이라던가 꽝꽝 얼린 얼음물 같은 것은 이곳에 필요치 않다.
대중교통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머나먼 위치도 아니기에 지하철로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독보적인 접근성은 덤.
"사람이 죽고 있어요!" 같은 일을 방지하고자 뿌려대는 시원한 물대포와 등목 또한 없어진 것은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지만, 멋진 날씨의 가을 한강 피크닉에 더해진 락이라니. 이 극락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빠질 수 없는 김치말이 국수 하나 손에 들어주고, 음식 부스를 어슬렁거리며 먼저 돌아보는 것은 국룰. 저기 사는 어느 락페는 김말국 하나 얻으려면 최소 30분은 대기해야하는데, 바로 획득이 가능하다니 신세계다.
다른 손이 허전하다고 했더니 마실 것이 없다.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곳에서는 주류를 팔지 않는다는 점. (무알콜 주류는 판매하고 있다)
그치만 술이 없다면, 노브레인의 '소주 한 잔'을 들으면 그만이다.
일단 한 잔 마셔!
무대가 하나이기 때문에 골라 먹는 조합은 없지만, 대신 한 곳에 진득하게 자리를 잡고 모든 라인업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용인원을 통제한 것인지 모든 인원이 한 스테이지에 있어도 끼는 듯한 불편감이 없다.
"쾌적함", 그리고 "편안함"이 두 가지가 락페에 있을 수 있는 것이었던가.
이번에 처음 보았던 밴드 스키조는 보컬도 보컬이었지만, 기타와 베이스가 등 뒤를 맞대고 연주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아침과 밤 사이: 크라잉넛, 노브레인
파란 하늘이 지나가고 노을이 져갈 때,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도 주섬주섬 일어나 깃발을 흔들고 슬램을 하러 스테이지로 일어난다. 물론 노을이 져가는 한강공원을 바라보며 가져온 돗자리에서 조금 더 쉬는 것도 방법이다. 아직 우리의 밤은 한참 남아있으니.
흥은 달아오르고 음식부스에서 털어온 음식으로 배는 적당히 찼고. 바로 그때, 그들이 등장했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
둘을 이어서 달아놓다니 아무래도 담당자가 몸이 굉장히 쑤셨던 게 분명하다.
이제는 락페에 빠지면 아쉬운 곡들. 밤이 깊었네, 좋지 아니한가, 명동콜링, 룩셈부르크, 말 달리자. 그리고 '다음에 잘하자'까지.
어찌나 하나같이 몸을 흔들기 안성맞춤인 곡들인지. 페스티벌을 갈 때마다 들어도 텐션을 바로 끌어올리는 데에 딱 맞다.
비둘기가 빠진 것은 아쉬웠다. 여기서라도 외쳐본다.
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
마찬가지로 아는 곡의 향연이 이어진다. 심지어 몇몇은 노브레인의 노래가 아님에도.
이젠 괜찮은데 사랑따윈 저버렸는데
바보같은 나 눈물이 날까
아련해지는 빛바랜 추억 그 얼마나 사무치던지
미운 당신을 아직도 나는 그리워 하네
비와 당신으로 촉촉하게 젖은 감성을 끌어안고 페스티벌은 밤으로 달려간다. 이것이 플래그인 줄도 모르고.
어느 장대비가 락을 멈춰 세우랴
소위 헤드라이너 급 밴드가 나오는 시점이자 오늘의 라인업 중 가장 기대됐던 두 팀이 남아 있다. 국카스텐과 자우림. 밤이 되고 조명이 켜질 때, 관객들은 모든 것에 열광할 준비가 되어있다.
국카스텐의 무대는 광란, 그 자체였다. 나른하며 섬뜩한 보컬과 반복되는 리프로 보컬 하현우는 마치 주교처럼 신도들을 아우른다.
조용히 귀를 막은 채 눈을 감으며 춤을 추는 너
등 뒤에 나를 놓은 채 거울을 보며 춤을 추는 너
거칠은 손을 내밀며 같이 하자고 말을 하는 넌
불안한 몸짓으로 난 거울을 보며 나를 찾고 있네
눈을 가린 채 춤을 추네
귀를 막은 채 춤을 추네
눈을 가린 채 춤을 추네
귀를 막은 채 춤을 추네
압도되어 넋을 놓고 무대를 보던 사람들은 이윽고 눈도 가리고, 귀도 막고 춤을 춘다. 그리고 자우림이 무대로 올라오기 전, 비가 오기 시작했다.
부슬비가 아닌 아주 거센 소나기.
우비도 대피소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관객들은 주섬주섬 늘어놓은 짐을 챙겼다. 그리고 각자의 최선을 다해 무대를 지켰다. 돗자리를, 반다나를, 그것도 없다면 본인의 손을 우산 삼아 마지막까지 이 밤을 놓지 않기 위해.
자우림이 올라왔다.
음향체크를 하는 와중에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관객들과 소통하며 서로 기운을 복돋아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필이면 비가 왔지만,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페스티벌은 끝나지 않는다. 관객도, 아티스트도 자리를 떠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페스티벌, 그리고 락 페스티벌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훌륭한 음악, 맛있는 음식, 끝내주는 분위기. 모두 맞지만, 그중에서도 락이 대두되는 이유는 미친 듯이 정신을 놓고 '락놀이'라는 것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쌓여있던 지나친 스트레스를 완전히 해방하고 사회에서의 나와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날뛰는 것.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이곳에서는 오히려 이질적인 행위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내일 출근할 기력까지 모두 모아 한 번 더 소리를 지를 수 있도록.
그렇기에,
Rock will never 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