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렛츠락 페스티벌은 10월 3일부터 4일까지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렸다. 나는 이틀 가운데 일요일 공연을 관람했다. 여러 무대 중에서도 크라잉넛, 노브레인, 국카스텐, 자우림의 공연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오랫동안 한국의 밴드 음악을 이끌어온 팀들이지만, 현장에서 만난 네 밴드의 매력은 저마다 달랐다. 같은 장소에서 이어지는 공연을 보면서도 팀이 바뀔 때마다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크라잉넛의 무대에서는 신나는 음악을 함께 듣는 즐거움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경쾌하게 달리는 연주와 시원하게 뻗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리듬을 따라가게 된다. 음악에 반응하는 관객들의 모습까지 더해지니 공연장의 분위기도 한층 들떴다. 노래를 듣다가 주변의 반응에 웃게 되고, 그렇게 다시 무대에 빠져드는 시간이 이어졌다.
특히 좋았던 것은 크라잉넛의 음악이 가진 친근함이었다. 무대의 힘은 충분히 강렬했지만 그 흥겨움에 참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박자를 맞추는 작은 반응만으로도 공연에 함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밴드의 공연을 보는 즐거움에는 음악 자체의 매력과 더불어, 그 음악을 반기는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브레인은 또 다른 활력으로 관객을 끌어당겼다. 거친 질감의 목소리와 힘 있게 밀고 나가는 연주는 야외 공연장에서 더욱 시원하게 다가왔다. 무대의 기세를 따라가다 보면 곡이 끝난 뒤에도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의 공연을 연이어 즐기면서, 두 팀이 오랫동안 페스티벌 무대에서 사랑받아온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한 이름이라는 반가움에 그날의 생생한 연주가 더해졌다.
국카스텐의 무대에서는 소리에 조금 더 깊이 집중하게 됐다. 하현우의 목소리는 현장에서 들을 때 그 힘이 더욱 크게 와닿았다. 높은 음으로 뻗어가는 순간의 쾌감도 좋았지만, 목소리와 악기들이 맞물리며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인상적이었다. 연주가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그 위로 보컬이 들어올 때마다 무대에 시선이 붙들렸다.
국카스텐을 보면서는 밴드 공연을 직접 듣는 재미를 다시 느꼈다. 녹음된 음악을 들을 때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곡들이 공연장에서는 다른 크기의 소리로 다가왔다. 악기의 울림과 목소리가 같은 공간을 채우는 감각은 현장에서 특히 선명했다. 흥겨움에 몸을 맡기다가도 어느 순간 연주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몰입감 있는 무대였다.

그리고 자우림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날 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은 공연이다. 무대가 이어지는 동안 비가 내렸지만, 음악을 즐기는 마음은 계속됐다. 야외 공연에서 날씨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자우림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비 때문에 아쉽다는 생각보다 지금 이 공연을 더 듣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김윤아의 목소리는 곡의 분위기를 또렷하게 전했다. 힘 있게 부르는 순간에는 음악의 기세에 빠져들었고, 섬세하게 감정을 풀어내는 대목에서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자우림의 음악에 담긴 여러 감정이 밤의 공연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즐겁게 듣던 노래가 문득 다른 여운을 남기기도 했고, 잠시 차분해진 마음은 다음 곡에서 다시 들떴다.
비가 내리는 풍경도 그 시간의 일부가 됐다. 비를 바라보며 듣는 자우림의 음악에는 그날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같은 곡을 다른 장소에서 들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상이었다. 날씨와 음악이 겹쳐 만들어낸 순간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편안한 관람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야외 공연의 재미를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하루를 돌아보면 네 밴드의 무대가 각기 다른 즐거움으로 남아 있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의 흥겨움, 국카스텐의 몰입감, 그리고 비와 함께 기억되는 자우림의 공연까지. 여러 팀의 음악을 하루 동안 직접 듣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록 페스티벌의 큰 매력이었다.
20주년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축제의 오랜 역사를 알려주는 정보가 아니었다. 공연을 보고 나서는 그 시간 동안 쌓였을 무대와 관객의 기억을 생각하게 됐다. 나에게도 이번 일요일이 그런 기억 하나로 남았다. 특히 자우림의 무대를 떠올릴 때면 비 속에서 함께 즐겼던 그 감정이 생생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