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난지한강공원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고 하늘은 언제 비를 뿌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우산을 챙길지 잠시 고민하다가 가방에 접이식 우비 하나를 넣고 한강으로 향했다.
올해 렛츠락페스티벌은 스무 번째를 맞았다. 2007년 처음 시작해 '국내 최장수 록 축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록 페스티벌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렛츠락은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무대를 세웠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제작 지원을 받은 올해는 10월 3~4일 이틀간 열렸다. 토요일에는 영국 밴드 나씽 벗 띠브스(Nothing But Thieves)와 넬, 쏜애플 등이 무대에 올랐고, 필자가 찾은 일요일에는 자우림, 국카스텐, 크라잉넛, 노브레인,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이름을 올렸다.

입구에서 짐 검사는 금방 끝났다. 손목밴드를 차고 들어서자 넓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간만에 찾는 페스티벌이었다. 무대 앞 스탠딩 구역과 뒤쪽 피크닉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이미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다수였다.
무대는 하나로만 구성됐다. 여러 스테이지를 오가며 동선을 짜야 하는 대형 페스티벌과 달리 한 자리에서 모든 공연을 볼 수 있는 점도 왠지 장점처럼 느껴졌다.
요즘은 페스티벌이 과거에 비해 더 다양해진 듯하다. 페스티벌을 즐기는 연령이나 사람들의 수도 그렇고 컨셉이나 아티스트도 다변화됐다고 느낀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자리도 있고 신나게 뛰어놀만한 공연들도 많아졌다. 페스티벌을 좋아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해가 가면서 발전해가는 페스티벌들이 반갑게 느껴진다.
렛츠락 페스티벌은 그동안 어언 20년을 자랑하는 페스티벌로 자리잡았다. 가장 뜨거운 여름에 진행돼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페스티벌도 좋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에 열리는 만큼 더 쾌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락페스티벌의 대표격인 펜타포트나 부산락페도 사랑하지만 서울 내에서 접근성 있게 락페스티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점이 참 좋았다. 특히 이번 공연 일요일자는 라인업이 개인적응로 마음에 들었다. 비교적 신생 밴드의 성장기도 기켜볼 수 있었지만 크라잉넛, 노브레인, 국카스텐, 자우림으로 이어지는 저녁 공연은 이전부터 내내 기다리던 것이었다.
어린 시절 늘었던 노래들을 여전히 이런 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음악에는 추억과 감정들이 깃들기 마련이라 오래오래 익숙한 것들을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어린시절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 컴퓨터반에서 룩셈부르크를 들던 추억, 중학교 때 친구들과 누래방에서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를 부르며 뛰어놀았던 추억이 내내 맴돌았다.

이후 이어진 국가스텐의 무대는 압도적이었다. 독보적인 사운드와 시원시원한 고음이 주는 쾌감이 있었다. 국가스텐의 음악을 예쑬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사 때문이다. 수많은 은유가 들어간 가사는 독창적이고 아름답다.
다들 정해진 시간 내에 밀도있게 무대를 선보이려고 노력해준 점도 좋았다. 페스티벌의 특성 상 어쩔 수 없지만 앵콜무대도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 교차로 무대를 운영할 경우 대기시간과 무대 전환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하나의 무대로 진행하다보니 정해진 타임라인에 맞게 타이트하게 무대가 진행된 부분들이 아쉽게 느껴졌다.
마지막은 자우림이었다. 이날의 헤드라이너가 무대에 오를 즈음, 종일 버티던 하늘이 끝내 비를 쏟기 시작했다. 김윤아의 목소리는 빗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무대 조명에 비친 빗줄기가 마치 연출의 일부처럼 보였다. 비록 예상보다 빨리 쏟아진 비로 인해 몸은 젖었지만 그 순간 속에 있는 경험은 꽤 황홀했던 것 같다.
이틀 간 진행된 페스티벌에 전부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슬슬 쌀쌀해지는 날씨는 체감할 때마다 올해 페스티벌 막차를 잘 탔다는 생각마저 든다. 조만간 또 페스티벌을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올해는 어려울지 몰라도 좋은 기억으로 올해 페스티벌 경험을 마무리하는 만큼 내년에는 더 많은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싶다.
또 올해 렛츠락은 '쾌적한 락 페스티벌'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했다. 단일 무대 운영으로 동선이 단순했고 화장실과 푸드존 대기도 길지 않았다.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밴드부터 한국 인디 펑크의 1세대, 그리고 20년 넘게 정상에 서 있는 밴드까지 한자리에서 마난볼 수 있었다. 비 내리던 난지의 밤, 스무 살이 된 렛츠락은 한국 락이 여전히 현재형이라는 걸 증명했다. 내년 가을에도 한강변 그 잔디밭에서 무대가 다시 서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