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을 전문(?)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내게 페스티벌은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참석하는 일종의 출석 체크 같은 행사였다. 그런데 올해는 페스티벌 메이트가 생기는 바람에 생각보다 자주 페스티벌에 자리하게 됐다.
페스티벌의 좋은 점은 내가 알지 못했던 가수와 음악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듣고 싶은 노래만 골라 듣고 영원히 그 안에 고립돼 있는 평소와 달리, 그저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 나를 놓아두는 경험. 그것은 오직 페스티벌에서만 가능하다.
코로나19 이후 공연장을 찾는 일이 드물어졌다. 주말 하루를 온전히 페스티벌에 소진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이 어쩐지 두려웠다. 그렇게 공연을 피해 다니다 올해 처음 마주한 것이 원유니버스 페스티벌이었다. 한여름의 페스티벌을 무사히 즐기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내친김에 가을 페스티벌에도 응답하기로 했다.
지소쿠리클럽과 Nothing But Thieves(낫벗띠)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이 또 어디 있을까. 이건 정말 가야겠다.
지소쿠리클럽은 나와 좀처럼 연이 닿지 않았던 비운의 밴드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내 재생목록에 등장한 것이 첫 만남이었다. 이후 내가 한국에 없을 때 그들은 콘서트를 열었고, 야근하던 날에는 제비다방에서 열린 공연을 온라인으로 지켜봐야 했다. 번번이 엇갈리던 인연이 이렇게라도 닿는다면 가야지 싶었다.
가을은 페스티벌의 계절. 그 주말에도 각기 다른 페스티벌이 동시에 열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원하는 분위기와 밴드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렛츠락 페스티벌의 가장 큰 장점은 도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경기도 외곽까지 나가야 했던 대부분의 페스티벌과 달리 난지한강공원까지만 가면 된다는 심적 안도감이라니.
지소쿠리클럽은 예상대로 좋았다. 바다에서 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저 너머에 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물소리가 들리는 듯한 무대였다. 선글라스로 가려진 얼굴 아래 웃고 있는 입. 모두가 목숨을 걸고 펜스 앞으로 몰려드는 여느 페스티벌과 달리 이곳에서는 누워 있기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느지막하게 무대 앞으로 걸어가도 좋아하는 가수의 얼굴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니.
따가운 가을 햇빛 아래, 지소쿠리클럽의 노래가 머리 위로 쏟아졌다.
공연이 끝나고는 사람들을 따라 돗자리에 누웠다. 음향이 얼마나 좋은지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풀밭까지도 음악이 남김없이 떨어졌다. 잽싸게 사 온 반다나를 얼굴에 덮고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페스티벌이라고 꼭 서서 소리를 지르며 즐겨야 하나. 이렇게 누워 음악을 듣다가 가끔 화면에 잡힌 가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좋았다.
무대를 정비하는 동안에는 친구들과 잠시 밖으로 나왔다. 한강 가까운 벤치에 앉아 펜스를 넘어오는 넬의 노래를 들으며 노을이 지는 모습을 관찰했다. 매운 새우깡을 나눠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했다. 누구도 목숨 걸고 시간에 매달리지 않았다. 무엇 하나 계획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되는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 기다리고 기다리던 낫벗띠의 공연이 시작됐다. 소리를 지르고, 웃고, 춤을 추고, 때로는 숨을 멈췄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Lover, Please Stay'가 흘러나오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80분이 8분 같았다. 해가 졌지만 사람들의 소리와 빛으로 바깥은 여전히 밝았다.
페스티벌에서 보낸 하루를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무대 위의 장면만큼이나 무대 밖의 시간이 오래 남는다. 햇빛에 달아오른 얼굴, 풀밭에 누워 듣던 오래된 노래, 강가에서 나눠 먹은 매운 새우깡, 그리고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음악. 다음을 함부로 기약하고 싶은 시간을 뒤로 하고 nothing but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