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서 뉴욕과 할리우드까지,
한 조각의 피자가 바꾼 300년의 역사
우리가 사랑하는 피자는
나폴리의 좁은 골목에서부터
어떻게 세계의 식탁까지 오게 되었을까?
화려한 귀족의 주방이 아니라 와인 저장고와 선술집이 즐비한 나폴리의 골목. 피자는 그곳에서, 적은 돈으로 허기를 채워야 했던 서민들의 손에서 태어났다. 재료도 소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흔하게 구할 수 있었던 돼지기름이나 채소, 콩 몇 가지가 전부였다. 시간이 흐르며 토마토와 치즈를 올린 피자도 생겨났지만, 당시엔 피자의 여러 형태 가운데 하나였을 뿐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자리를 차지한 건 아니었다.
그때 생겨난 '마르게리타 피자'는 19세기 나폴리를 방문한 마르게리타 여왕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토마토의 빨강, 모차렐라의 흰색, 바질의 초록으로 이탈리아 국기를 표현해 왕비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이는 피자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신화가 진실이 아니었다면, 피자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다시 써야 할까?
[피자에 담긴 세계사]는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던 피자에 관한 상식에 질문을 던지며 출발한다. 음식 역사학자 루카 체사리는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피자를 둘러싼 신화와 전설을 걷어낸다. 동시에 나폴리 서민들의 음식이 왕실의 식탁에 오르고, 이민자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 마침내 세계인의 음식이 되기까지 300년의 역사를 흥미롭게 되살려낸다.
서민 음식으로 출발한 피자는 왕실이나 귀족의 음식처럼 풍부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 기원과 변화 과정을 정확하게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루카 체사리는 오래된 요리책과 신문, 각종 문헌에 흩어진 작은 흔적까지 샅샅이 찾아 나선다. 피자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시대에 따라 토핑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록을 통해 하나씩 복원한다.
이 책은 단순히 '최초의 피자'를 찾아가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의 시선은 피자를 만든 사람에서 피자를 먹은 사람, 다시 피자와 함께 이동한 사람들에게로 확장된다. 이탈리아 이민자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넌 피자가 미국인의 일상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영화와 대중문화는 피자의 이미지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새로운 조리 방식과 식품 산업은 어떻게 피자를 세계 곳곳으로 퍼뜨렸는지 차근차근 따라간다.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과 만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생각하는 피자의 모습이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피자는 새로운 도시와 사람, 재료와 문화를 만날 때마다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왔다. 어쩌면 피자가 세계인의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변화에 있었는지 모른다.
오래된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피자'라고 불러온 음식의 모습이 시대마다 달랐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570년 바르톨로메오 스카피의 요리책에는 오늘날의 피자보다는 파이에 가까운 음식이 '피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후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면서 점차 오늘날의 피자와 가까운 형태가 나타났고, 19세기 나폴리에서는 튀긴 피자와 접은 피자 등 다양한 형태의 피자가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한 가지 모습의 '정통 나폴리 피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피자의 운명을 크게 바꾼 것은 사람들의 이동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 수많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여러 도시에 정착했고, 그들과 함께 피자도 바다를 건넜다.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라는 공동체를 비롯해 이민자들의 공동체에서 먹던 피자는 점차 미국인들에게 알려지며 북미를 넘어 남미와 유럽으로도 퍼져나갔고, 20세기에는 가스 화덕과 냉동식품, 외식 산업의 발달과 맞물리며 더욱 빠르게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피자를 먹고, 파티 테이블에 피자가 올라오고, 동네 가게와 슈퍼마켓에서도 손쉽게 피자를 살 수 있게 되면서 피자는 더 이상 이탈리아만의 음식이 아니었다. 어느새 피자는 나폴리의 지역 음식에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더 나아가 국경을 초월한 세계인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피자의 역사는 단순한 음식의 역사가 아니다. 피자 한 조각을 따라가다 보면 나폴리 골목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던 서민들의 삶과 일자리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 이민자들, 빠르게 성장한 미국의 도시와 식품 산업, 전쟁 이후 달라진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중문화, 국경을 넘어 음식과 문화가 뒤섞이는 세계화의 풍경까지 만나게 된다.
우리가 무심코 집어 드는 피자 한 조각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300년에 걸쳐 만들고, 옮기고, 변화시켜 온 세계의 역사가 겹겹이 쌓인 것이다. 나폴리의 골목과 왕실의 식탁, 대서양을 건넌 이민자들의 삶과 미국의 대중문화, 산업화와 세계화의 역사까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음번 피자 한 조각은 이전과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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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체사리(Luca Cesari) -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음식 역사학자.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미식 전문지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유력 경제 일간지 [일 솔레 24 오레(Il Sole 24 Ore)]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음식과 미식의 역사를 연구하며, 특히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유명한 요리들이 언제, 어떻게 탄생하고 변화해 왔는지를 탐구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음식 문화를 대중에게 알리는 전문가로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8개국에 수출된 [파스타의 짧은 역사(A Brief History of Pasta)]가 있다.
이현경 -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비교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대사관이 주관하는 제1회 번역문학상과 이탈리아 정부에서 주는 국가번역상을 수상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통번역학과 조교수를 지냈다. 옮긴 책으로 [올빼미의 낮] [표범] [너에게]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것이 인간인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