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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하나 빼기] 우리 다시 맞춰볼까요

부여살이 하며

by 정해영 에디터
2026.10.1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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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 우주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라는 본진이 수만 가지의 형태로 여러 세계에 존재한다는 가설은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나는 다른 상상을 더한다. 지금 몸담 세계에 접속하기 이전 또 다른 시공간의 주민이었던 나는 조각나지 않은 온전한 덩어리였을 것만 같다. 그러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모종의 이유로 이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어 했고, 그 조건으로 부서져야 했던 것이다.

       

      한때 나였던 무언가는 수많은 파편으로 쪼개져 불시착했고 소량의 불완전한 부분만이 할당됐다. 흩어진 살점들은 더 이상 나라고 부르지 못할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피어나 살아가게 됐다. 그러니까 무언가와 마주친다는 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나의 조각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존재들이 있다.

       

      이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마다, 지금 모습이 내 가능성의 전부일 리 없다고 믿고 싶을 때마다 또 다른 나를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무를 떠올렸다. 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험준한 절벽 위의 나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다. 이미 거대한 나무가 되어있는 나는 곁가지의 곁가지 같은 얇은 팔을 보며 현실로 돌아온다. 판타지는 영원해선 안 된다.

       

      그래도 항상 바란다. 굳게 닫힌 빗장을 뚫고 나와 뻗어나가는 또 다른 나를 감상할 순간을. 넓은 하늘을 가진 부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그런 찰나가 찾아왔다. 어느 충신의 묘 앞에 우뚝 선 돌배나무, 강 주변을 따라 놓인 느티나무, 단아한 3층 석탑 모두가 생생한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조각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일지도 모를 것들이다. 그들이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이라면 내 원전은 무엇일까. 고요함? 단단함? 우직함? 무념무상? 답을 내리진 않았다. 그저 그들을 한 번 어루만졌다. 다음엔 포옹을 하고 오리라 다짐했다.

       

      자연물과 나를 동등한 위치에 놓을 때면 세상은 사뭇 낯설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애송이처럼 느껴진다. 이 속에서 맨몸으로 단 하룻밤도 버틸 수 없는 건 나밖에 없으니까. 겸허히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데 왜인지 초라하지 않다. 몇 번이고 질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의 정정당당이란 이토록 깔끔한 것일 테다. 나의 정수는 이런 자연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럼에도 대도시의 냉랭한 질서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꾸역꾸역 버텼다. 나의 파편이라고 느껴지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난 공간이었으니까. 그런 서로의 호흡기가 되어주다가 하나둘 자기 숨 쉴 여유도 없다고 느껴졌을 때는 도저히 버티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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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느냐는 듯 나는 숲속에서 태연하게 숨을 쉬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버거운 숨을 쉬고 있을 동료들을 떠올린다. 지금 당장 그들과 나누고 싶은 건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여유다. 볼 수 있는 게 너무 많은 도시에선 한 가지 대상에게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다. 사라지는 것에 익숙한 눈은 무언가를 놓칠 수밖에 없다.

       

      부여에 와서 내 눈은 소멸보다 응시에 더 익숙해졌다. 볼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고, 그것들이 쉽사리 변하지 않을 거란 확신으로 가능해진 변화다. 모종의 신뢰를 얻은 눈은 낯선 대상에게서도 익숙한 무언가를 건져낸다. 그것이 나무와 석탑일지라도. 어쩌면 나의 파편은 모든 대상에게서 발견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 응시할 시간과 여유만 허락된다면. 삶이란 건, 그들로 하여금 으스러진 나를 복원하는 작업이어야만 할 것 같다.

       

      문득 빌딩 숲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무서워진다. 이곳에서 조금 더 단단히 결합된 나는 매서운 콘크리트 문법 속에서 곧바로 해체당할 것만 같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징그러울 정도로 강력한 숲의 생기 속에 머물렀던 나를. 나무가, 돌이 나의 조각이라고 생각했던 때를. 그들을 내 손으로 어루만진 감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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