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푸른 바다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 빗방울이 입 안으로 떨어졌다. 뚝. 뚝. 뚝."
영화 『지느러미』는 유전적 돌연변이 '오메가'와 인간이 공존하는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SF다. 통일은 이루어졌지만 사회는 자유보다 통제를 택했고, 어딘가 북한 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국가가 정한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 사회에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존재한다. 형광색 작업복을 입은 공무원들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오메가'를 처리하는 업무를 맡는다. 공무원들은 오메가에 대한 교육을 받고, 그들을 두려워하면서도 국가가 시키는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명령을 수행한다. 주인공 수진 역시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오메가는 다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정부는 오메가를 위험한 존재라고 가르친다. 수진은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채 오메가를 잡는 일을 반복한다.

사람들은 오메가를 극도로 혐오한다. 지느러미에는 독이 있고, 발가락은 세 개이며, 기괴한 울음소리를 낸다는 이유다. 마치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존재처럼 묘사되지만, 정작 영화 속에서 그들이 실제로 사람을 해치는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잡힌 오메가는 죽임을 당하지 않는 대신, 죽은 오메가를 처리하는 일을 맡는다.
흥미로운 점은 오메가들 역시 서로 뭉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 살아남기 위해 흩어져 살아가고, 심지어 다른 오메가를 경멸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인다.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부정하는 듯한 분위기는 이 사회가 얼마나 깊게 혐오를 내면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 수진은 인간 사회에 숨어 살아가는 오메가 미아를 쫓는다. 하지만 미아는 평범하게 살아갈 뿐이다. 대한민국의 법을 어기지도 않고, 누군가를 해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단 하나의 이유, '오메가'라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추적당한다.
영화는 끝내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오메가는 왜 태어났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물은 왜 오염되었는지, 정부는 왜 오메가를 제거하려 하는지. 그 어떤 배경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은 설명이 아닌 그 사회를 가득 채운 혐오와 불쾌함, 그리고 통제의 공기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할 정도로 피곤했다. 하필 시사회를 본 날도 비가 내려 하늘은 흐렸고, 습한 공기까지 더해져 영화의 분위기와 묘하게 겹쳐졌다. 어두운 조명, 화면 전체를 덮은 그레인 효과, 무겁고 탁한 노란빛, 인간과 오메가가 끝없이 대립하는 긴장감, 그리고 사회 전체를 뒤덮은 혐오까지. 모든 요소가 의도적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끝났지만 나는 그 장면들 속에 한참 머물렀다.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혼자 계속 해석하게 되는 영화였다.
사람들은 오메가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죽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메가를 처리하는 공무원들은 항상 귀마개를 착용한 채 현장으로 향한다. 수진의 어머니는 왜 그토록 오메가를 증오하는 걸까. 정말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또 한 가지 의문도 들었다. 지느러미에는 독이 있고 울음소리는 사람에게 치명적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것은 검증된 사실일까. 아니면 단지 인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만들어진 소문이고, 사회가 만들어 낸 공포는 아니었을까.
이 생각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더욱 커졌다. 오메가 미아가 붙잡히는 순간, 수진의 귀마개는 벗겨져 있었다. 하지만 미아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수진은 죽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 당연하게 믿고 있던 정보들이 모두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화 속 대한민국은 물이 오염되어 있고, 사회는 '얼굴이 지저분한 자가 나라의 최고 인재'라는 말까지 한다. 사람들은 정부가 만들어 놓은 기준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오메가에 대한 공포 역시 국가가 만들어 낸 프레임일 가능성은 없을까. 사람들은 진실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도록 교육받은 것은 아닐까.
영화는 끝내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 덕분에 관객은 계속해서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정말 오메가를 두려워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 낸 혐오를 의심 없이 믿고 있었던 것일까.
『지느러미』 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직접 빈칸을 채우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 이후부터 비로소,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은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