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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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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일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뒤로 5년이 훌쩍 지났다. 분명 엊그제 일만 같은데 시간은 냉혹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버렸다.

 

나에게는 인생에서 겪어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팬데믹이지만, 이 세상에는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이다. 에볼라가 있었고, 스페인 독감이 있었고, 코로나를 겪었으며, 그 전에 페스트가 있었다.


소설인지 예언서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1940년대에 나온 책이 담은 세상의 모습이 2019년의 세상과 별다를 게 없다. 사회는 거리로부터 인간을 몰아냈고 우리는 각자의 작은 영토에 갇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사라졌고, 고립과 배척, 그리고 경계가 거리를 잡아먹었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라는 기약 없는 희망을 품고서 하루를 버텼다. 누군가는 그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져 사라졌다.

 

이건 2019년이 아니라 1947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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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an Almasi via Unsplash


 

기시감이 들 만큼 비슷한 풍경이 나에게 질문한다.

 

사람과 그들이 살아가는 거리,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잡아먹은 페스트의 정체는 무엇인가. 페스트는 정말로 단순히 질병인가.

 

어쩌면 그건 질병의 형태만 빌린 전혀 다른 무언가인지도 모르겠다. 감염을 피하고 싶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두르고 위생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적당한 정당화 뒤에 숨어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의심과 불신이라는 창일지도 모른다. 생존과 안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깨끗한 척하는 나를 위해 남을 언제라도 희생시킬 준비가 된 이기심일 수도 있다. 질병, 의심, 이기심, 혹은 제4의 어떤 것. 정체 모를 위험 앞에 선 인간은 무기력하다.


페스트라는 건 꽤 그럴싸한 알리바이가 된다. 우리는 사회가 만든 감옥이라는 훌륭한 선례를 보고 있다. 우리가 죄수로부터 격리되어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감옥에 수감된 죄수와 그들을 가두고 있는, 높고 두꺼운 담벼락을 상상해 보자. 범죄자가 우글거리는 곳이라는 공포감의 한쪽에는 나는 저 속에 있지 않다는 안도감이 자리 잡는다.

 

감옥과 죄수는 내가 그 일부가 아님을 증명하는 알리바이로 기능한다. 마찬가지로, 페스트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의 참혹한 모습은 보는 이에게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님을 증명한다.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이기적이지 않다. 나는 남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비겁한 안도감을 만끽하면서 내일을 맞이한다. 다시 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페스트라고 부르는가.


우리는 언제나 병을 앓았다. 사람이 아프면 예민해지고 여유를 잃어 배려에 내줄 자리를 잃는다. 페스트부터 시작해서 에볼라, 스페인 독감, 코로나까지 이름만 달라졌을 뿐 본질이 변한 적은 없었다. 팬데믹이 다시 찾아 올 거라는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인간은 유사 이래로 아프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질문 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것 외에 마땅한 대책은 없다. “나는 무엇에 아파하는가? 그건 정말 페스트인가?”

 

공포를 동반하는 이기와 의심의 열병 앞에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나를 다시 깨우는 것 외에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우리는 무력하다. 그런 무력한 인간이에 고립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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