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12월부터 2월까지 석 달 동안 대만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전에도 대만 문화를 좋아해서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기가 우연히 연말연초와 겹치게 되어, 지내는 기간 동안 대만의 크리스마스와 신년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대만은 한국과 다르게, 한동안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 공휴일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행헌기념일’이라는 명목으로 공휴일이었다고 한다. 행헌기념일은 한국의 제헌절에 해당하는 기념일로, 기독교 신자였던 장제스의 뜻에 따라 중화민국 헌법이 성탄절에 맞추어 공포 및 시행되었다. 행헌기념일은 2000년까지 법정 공휴일이었다가 공휴일에서 제외되었고, 25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
따라서 이전에는 기독교 산하에 운영되는 기관들을 제외하면 크리스마스에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지냈다고 한다. 물론 크리스마스가 주는 특유의 연말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많은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각종 장식을 볼 수 있다. 시내의 상점들은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디자인의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사람이 밀집되는 지역에는 각종 연말 행사가 진행된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어학당의 대학교는 가톨릭 재단이기 때문에 매년 연말이 되면 캠퍼스에 성탄절 느낌이 가득한 다양한 조형물들이 설치된다. 특히 밤이 되면 이러한 조형물들에 불이 들어오기 때문에, 학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 지금 시기가 되면 캠퍼스에 방문하여 연말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신베이시의 중심 반차오역 인근에는 매년 ‘크리스마스 랜드’라는 축제가 진행된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롯한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되는 것은 물론, 각종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수많은 시민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한국에서도 점차 인지도 있는 행사가 되어 평소에는 관광객들이 장시간 체류하는 곳이 아니지만, 연말 시기 대만에 방문한 관광객들은 해당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종종 발걸음을 향하는 곳이다.
대만의 연말은 크리스마스보다 신년에 조금 더 무게를 둔 편이다. 매년 1월 1일 0시가 되면 대만의 대표 랜드마크인 타이베이 101은 불꽃 축제가 열린다. 초고층 빌딩에서 사방으로 터지는 불꽃을 보기 위해 현지 시민은 물론,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풍경을 보기위해 타이베이를 방문한다.
새해를 기념하는 행사는 중화민국 총통부에서도 열린다. 이곳은 대만의 총통이 집무하고 있는 상당히 상징적인 장소로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국기게양식을 진행하는데, 1월 1일의 국기게양식은 대규모 국가 행사로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총통이 직접 행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서 신체와 소지품 등을 검사하는 보안검사를 진행한 후에 행사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이른 새벽 시간임에도 수많은 인파가 행사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행사는 대규모의 군악대와 의장대의 퍼포먼스와 함께 총통이 자리한 후 총통부 건물 꼭대기에 국기를 게양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대만에서 맞이한 연말연초는 단순히 한 해가 바뀌는 시간을 넘어, 이곳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짧은 여행으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대만의 모습이 석 달이라는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낯선 곳에서 맞이한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으로 남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또 어떤 일상과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조용히 기대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