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잠시 지낸 적이 있다.
길지 않은 해외 생활이었지만, 그 시간은 이후 삶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에서만 살아오던 내가,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생활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웠고, 살면서 처음 마주한 어려움들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해외에서 살아보는 경험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막연히 20대가 되면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꿈이었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에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해외 생활은커녕, 제대로 된 대학 생활조차 누리지 못한 채 졸업과 취업을 동시에 맞이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앞자리가 바뀌는 순간 느껴지는 무게는 분명히 다르다. 20대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주변의 친구들은 하나둘 각자의 삶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어느새 결혼 소식도 들려오곤 한다.
나 역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 회사에 입사해 3년간 근무하며 나름 안정적인 커리어의 출발선에 섰다. 지금까지의 삶이 모두 만족스러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부러워할 만큼의 선택을 해왔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꿈들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해외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남들이 하나둘 정착해 나갈 무렵, 나는 무작정 떠나기로 결심했다.
정들었던 회사와 작별을 고하고, 다음 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대만. 이전에 여러 차례 여행하며 언젠가는 꼭 살아보고 싶다고 느꼈던 곳이었고, 취미로 중국어 공부를 해오고 있던 터라 큰 고민 없이 대만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마냥 놀 수만은 없었기에, 대만에 있는 한 대학교의 어학당에 등록했다. 중국어를 배우는 곳이다 보니 현지 친구를 사귀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대신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대만에 온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직접 살아보니, 한국에서 그려왔던 해외 생활과는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고, 외로움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편이라 이곳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일부러 한국인이 거의 없는 지역을 선택했지만, 가끔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생활에 적응했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동료들도 생겼지만,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수년간 꿈꿔왔던 삶을 살고 있음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외로움이 나를 자주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나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다시 묻곤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어 공부였고, 그다음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군대 이후로 이렇게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며 지내본 적은 없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도, 외로움을 견뎌내는 일도 모두 앞으로 내가 계속 배워가야 할 과정이다.
언젠가 이 대만에서의 시간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고 느껴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한번 이 이야기를 글로 남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