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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비정전
Days Of Being Wild
1990. 12. 22.
사실 아비정전은 흥행 대참패로 유명한 영화다. 왕가위의 데뷔작이자 전작이었던 「열혈남아(1988)」가 화려한 액션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탓에, 전 세계의 영화 팬들은 이어지는 작품 역시 홍콩 느와르의 명맥을 이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둡고 폭력이 난무할 액션영화를 예상했다. 하지만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벙찌기 시작했다. 장국영이 총이 들려있지 않은 맨손을 흔들며 맘보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런닝만 입은 채로 하비에르 쿠가의 'Maria Elena'에 맞춰서 몸을 씰룩였다. 상영이 끝난 후에는 아무도 왕가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들 너무한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정적이 나았을 수도 있다. 한국 개봉 당시에는 격분한 관객 한 명이 중앙극장에서 유리창을 깨트리기까지 했다. 결국 왕가위와 배우들을 굳게 믿고 전폭적인 투자를 했던 제작사는 파산했고 아비정전의 2부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왕가위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주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진적으로 재평가를 받으며 결국 감독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명예를 얻게 된 작품이다. 또한, 2003년 4월 1일에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며 영화가 다시 화두에 오르기도 했다. 주인공인 '아비' 역할을 맡았던 장국영이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털 호텔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 것이다.
다리가 없는 새가 살았다.
이 새는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새는 날다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이 새가 땅에 몸을 닿는 건
생에 단 하루, 그 새가 죽는 날이다.
/아비
이제서야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가 와닿았던 이유를 이해한다. 단순히 연기력이 뛰어나서 캐릭터를 능숙하게 꾸며낸 것이 아니다. 외로움이 공기처럼 익숙해져 버린 '아비'를 장국영은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였고, 왕가위가 탄생시킨 캐릭터에 성공적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존재의 어긋남으로 인한 근원적 고독
아비는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 그녀는 상당한 생활비를 조건으로 걸며 아들을 대신 키워줄 여자를 찾았다. 그래도 밀림 숲에 던져버리지 않았으니 애정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만나주지 않았으니 사랑하지 않은 것인지는 끝까지 의문으로 남는다. 영화에서도 구체적인 파양 사유는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양어머니는 아비를 사랑하기는 했다. 여러 남자와 만나며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긴 했지만.
결국 충만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비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어른으로 자란다.
하루는 그의 양어머니가 취한 상태로 돌아와서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평소에 하고 다니던 화려한 장신구들이 전부 사라진 모습이었다. 화를 참을 수 없었던 아비는 어머니의 금품을 훔쳐 간 남자를 찾아가서 피가 터지도록 때려준다. 아무런 애정이 없었다면 적당히 무시해도 그만이었을 텐데, 남자를 몰아넣고 망치를 들던 행동에서 어머니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보인다. 그녀에게 기른 정이 생겼듯이 아비에게도 정이 붙은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 하는 말들을 보면 매번 모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사랑을 받을 줄 모른다는 부분에 있다. 영화에서는 발이 없는 새와도 비슷한 아비가 잠시 머무르는 두 여자가 나온다. 바로 장만옥이 연기한 '수리진'과 유가령이 연기한 '루루'다. 너무도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여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비에게 사랑을 가득 준다. 수리진은 가진 것 하나 없는 아비를 개의치 않고 평생 함께하고자 했고, 루루는 더 나아가서 '내가 당신을 먹여 살리겠다'고 당차게 말한다. 아비라는 사람을 온전히 사랑한 것이다.
원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서였을지, 아니면 회피적인 성향이 문제였는지. 아비는 소중한 마음들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망 다닌다. 특히 수리진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매정한데, 가만히 있던 여자를 먼저 꼬셨으면서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한때는 입을 맞춰주던 사람의 얼굴에 이제는 귀찮고 피곤하다는 기색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수리진은 다시 한번 상처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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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비가 그토록 회피적이고 방어적이며 이기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여리고 나약한 마음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착한 것과 마음이 여린 것은 분명 다르고, 아비의 경우에는 후자에만 포함된다. 고질적인 외로움으로 인해 그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는데 성정이 굳세지도 못한 탓에 문제를 회피하게 된 것이다. 아비는 지독한 겁쟁이였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사랑해버린 뒤에 버려질 것을 두려워했다. 당장의 외로움 때문에 여자들을 꼬시기는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깊어지게 두지는 않았다. 여자들이 자신의 인생으로 깊숙이 들어오고자 하면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거리를 두었다.
영화 전반에서 그런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에 필리핀의 숲길을 걸어가던 장면이 최고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마침내 친어머니를 찾아가게 된 아비는 다시 한번 버림받는다. 아들이 홍콩에서 필리핀까지 힘들게 찾아왔다는데도 끝까지 만나주지 않았다. 아비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일이 실현된 것이다. 그는 주로 도망을 다니는 역할이었으며 수리진도, 루루도, 양어머니도 항상 아비의 그림자를 쫓아다녔는데.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간 친어머니는 그를 매정하게 버렸다.
하지만 아비는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 마음은 절망적일지언정 태도만큼은 누구보다 굳건했다. 두 주먹을 단단하게 쥐고 필리핀의 숲길을 향해 걸어 나간다. 저택의 유리창으로 어머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챘지만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단호하게 떠난다. '어머니가 나를 거절했으니, 나도 어머니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복수심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나른하게 보사노바 음악이 깔리는 와중에 카메라는 열대 숲을 향해 걷는 장국영의 뒷모습만을 담는다. 표정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인물의 처절한 감정이 그대로 와닿기에 손에 꼽히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수리진과 루루
겁이 많은 아비와는 달리 작중에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은 사랑에 용기 있다. 수리진은 원래 소심한 편이지만 아비를 잃고 싶지 않아서 미련할 정도로 붙잡는다. 루루는 아비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잔머리를 굴린다. 자신을 버릴 여지를 주지 않고 비위를 맞춘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막상 재생 버튼을 누르고 나면 5분 만에 그녀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을 유심히 보던 아비는 그녀에게 접근해서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오늘 밤 꿈에서 날 보게 될 거예요.'
자신감과 오만함이 함께 느껴지는 말이었기에 수리진은 순순히 수긍하지 않았다. 다음날에 아비가 다시 찾아오자 내심 동요했음을 감추고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어젯밤 꿈에 당신 본 적 없어요.' 어제 뻔뻔하게 했던 얘기가 있으니 차가운 태도에 기가 죽을 법도 한데 아비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물론이지. 한숨도 못 잤을 테니.'
수리진은 아비가 평범한 남자가 아님을 체감했다. 그래서 마음이 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나중에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냐고 화도 내 보았지만 아비는 천연덕스럽게 손목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시계를 보여주며 말했다.
1960년 4월 16일 3시 1분 전.
그 순간 당신은 나와 함께 있었어요. 당신 덕분에 난 그 일 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군요.
지금부터 우린 친구예요.
이건 당신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죠.
이미 지나간 시간이니까.
/아비
그 순간, 아비에게 빠져버렸음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된 수리진은 그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잠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사랑의 대가로 커다란 실연의 슬픔을 겪게 된다. 자신을 외면하는 아비를 붙잡고 싶었던 수리진은 편지를 무수히 보내고, 직접 집으로 찾아도 간다. 그곳에서는 아비와 함께 루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가령이 맡은 루루는 수리진과 대조되는 인물이다. 직업부터가 댄서인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누구보다 욕망에 충실하고 솔직한 캐릭터인데 동시에 이성적이기도 하다. 한때는 사랑했을 여자에게 매정한 태도를 취하는 아비를 유심히 살핀 그녀는 분노에 흥분하다가도 금세 진정한다. 떠나버리겠다며 엄포를 놓는데도 붙잡지 않자 곧바로 그에게 돌아와서 안긴다. '난 저 여자처럼 바보는 아니에요.'
반면, 비슷한 상황에서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나가버렸던 수리진은 뒤늦게 후회하며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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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보면 루루의 선택이 더 옳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는 상황이 역전된다. 아비가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서 떠난 사건을 기점으로 두 여자의 감정선이 뒤바뀐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비의 지인들을 캐고 다니던 루루는 결국 수리진에게까지 찾아간다. 그리고 괜한 화풀이를 한다. '이런 나를 보고 당신이 통쾌해할 것은 알지만, 어쨌든 그는 날 더 좋아했다'며 시비를 걸어댔다. 그러자 수리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응수한다. '지금 통곡할 사람은 당신이야. 난 이제 멀쩡하다고.' 이미 감정의 갈무리를 마친 수리진은 진작에 평화를 찾았다. 이제는 루루가 힘들어할 차례였다.
무의식중에 사랑을 대하는 태도에서 정답을 찾고 있었다. 훗날 지독하게 힘들어하는 대신에 자존심을 굽히고 옆에 달라붙는 루루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의 장면을 보며 기존의 생각이 보란 듯이 박살 났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새로이 든다. 물론 폭력이나 가스라이팅, 도박같은 문제가 섞인다면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되어 있으니 각자의 성향과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좋겠다. 특히 이러한 문제에는 정해진 답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
루루와 수리진은 분명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이고 아비를 바로 포기하지 못한 이유가 충분히 이해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들의 사랑이 자기파괴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을 체감하면서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비는 이기적이다. 결핍과 트라우마는 면죄부가 아니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은 미화될 수 없다.
이처럼 자기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였으니 이상적인 사랑이 가능했을 리가 없다.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세상에서 공허해 했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외로움'인 것 같다. 아비정전을 포함한 왕가위의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는 「떠난 자 혹은 떠난 것에 대한 그리움과 그에 따른 허무함」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아비가 떠나기 전부터 근원적인 고독이 그들의 옆에 항상 같이 있지 않았나 싶다.
영화가 훗날 재평가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고독과 허무, 공허를 가지고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낡은 고시원에서 소통하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하게 산다고 외로운 것이 아니다. 군중 속에서도 사람은 충분히 고독할 수 있다. 따라서 각자의 이유로 공허를 안고 사는 이들은 아비정전을 보며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어렵지 않게 공감하였을 것이다. 심지어 보기만 해도 눅눅하고 습한 홍콩의 배경은 이 모든 것을 아울러서 보여주기에 적절했다. 땀에 젖어서 달라붙는 머리카락과 탈탈대며 돌아가는 선풍기, 그리고 필리핀의 어느 밀림 숲까지.
간혹 찾아오는 외로움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고, 앞으로도 깨달을 것이란 기대가 없다. 그런 와중에 아직까지도 조용히 이어지는 아비정전의 인기가 위로를 준다. 세상에서 나만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하고 싶다면 여름이 지나기 전에 「아비정전」을 보기를 추천한다.
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수리진
아비를 평생 기억하게 된 수리진처럼, 무심코 재생한 영화가 내내 마음에 남아 안식처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마다 도망칠 수 있는 그런 안식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