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 by Yang EJ (양이제)]
서양화법을 모사하는 행위가 왜 당대 이스탄불에선 금기가 되었을까요? 사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하나의 동작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이나 상해는 그 자체로 가해 행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림이 불러올 파급 혹은 그림의 내용이나 수단에 대해 따져볼 순 있어도,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를 나무랄 순 없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책임과 대중의 비판은 그림을 '그릴' 때가 아닌, 그림이 '공개됐을' 때 발생합니다) 결국 그린다는 것은 종이나 벽 등에 색이나 형태를 덧입히는 일일 뿐입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지만, 본질부터 위험을 안고 가는 살인, 상해, 폭력과는 다르지요. 마찬가지로 <내 이름은 빨강> 속 세밀화가들도 술탄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제공받은 종이 위에 그냥 그림 그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리는 삽화는 사람들에게 혐오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금기로 자리 잡게 되지요. 급기야 세밀화가 중 하나는 작업 중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못해 자신의 동료, 엘레강스를 죽입니다. 어떻게 그리기란 동작이 사람을 극단으로 모는 금기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발단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 등장하는 밀서는 오스만 전통의 화풍을 버리고, 오로지 서양 화법만을 취하는 방식으로 제작됩니다. 서양화에 감탄한 에니시테와 달리, 그 밑에서 일하는 세밀화가 황새, 올리브, 나비는 새로운 화풍이 그저 낯설기만 합니다. 하지만 단지 묵묵히 그릴 뿐이지요. 평생토록 그려왔던 방식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야만 했지만, 스스로 왜 이렇게 그려야 하는지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밀서를 안 좋게 바라보는 화원의 시선도 이러한 혼란에 한몫했지요. 세밀화가는 자신의 소신과 의무 사이에 갈팡질팡합니다. 이후 세밀화가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전통을 완전히 버리고 기계적으로 타국의 화법을 따르는 것이 모국의 소멸로 인한 자신의 국적·정체성 소멸까지 낳을 수 있단 두려움이요. 삽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의 기저에도 같은 실존적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기란 동작을 금기로 만든 것은, 결국 사람의 근원적인 감정, 두려움이었습니다.
명백한 불법이 아님에도 금기는 사회적 파문·처벌을 불러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을 동요시키고, 때로는 비극을 낳습니다. 금기를 어긴 자를 반드시 처벌할 의무는 없지만, 사람들은 그를 마땅히 처벌하고자 합니다. 두려움은 모두에게 내재한 감정입니다. 금기는 이러한 공통 정서로부터 출발한 관념이기에 법 없이도 위력을 발휘합니다. 두려움은 사람이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도 기꺼이 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