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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모자의 생김새를 가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뿐이었다. 어른이 되고 원작을 오마주한 애니메이션 영화 <어린 왕자>를 보았을 때는 어린 시절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떠오르며 <어린 왕자>가 왜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원작의 어린 왕자 이야기와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표현하는 현실 세계의 소녀 이야기,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어린 왕자의 판타지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영화는 어른들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 그리고 무엇을 잊고 있는지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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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의 소녀

 

영화의 주인공인 소녀는 어머니가 짠 시간표대로 10분 단위마다 움직이며 먼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싱글맘인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딸이 그대로 이행하도록 그녀만의 노력을 하고 있고 딸은 그런 어머니의 엄격한 루틴을 고분고분하게 따른다. 새로운 집으로 전학 온 소녀는 친구가 없어 어머니가 출근한 후에는 집에서 외롭게 홀로 시간을 보낸다. 억지로 어른스러운 아이가 된 소녀의 삶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소녀가 최고의 사립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는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월급, 더 넓은 집과 같은 세속적 가치를 좇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타인에 의해 운동, 공부, 자기 계발로 가득찬 계획표를 지키는 소녀의 표정에서는 목적없는 '갓생'을 살기 위해 무리하고 있는 우리의 지친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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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변화: 할아버지와 Little Prince

 

그런 소녀는 옆집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변화한다. 자로 잰 듯 반듯한 주택가들 사이에서 한 눈에 봐도 튀는 독특한 모양의 집에 사는 괴짜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조종사였다. 그는 과거 사막에 추락했을 때 만난 어린 왕자에 관한 이야기를 소녀에게 해준다. 허영심 많은 장미 이야기를 통해서는 미성숙한 사랑을, 자만심 가득한 남자와 돈에 집착하는 비즈니스맨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외적 가치에 집착하는 한심한 어른들에 대해 배우게 된다. 어린 왕자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등장할 때는 현실 세계를 나타내는 CGI와는 다른 종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전환은 시각적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옛날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몰입감을 준다. 소녀는 할아버지와의 시간을 보내며 그녀가 원래 있어야 했던 동심의 세계와 가까워진다. 순수한 우정을 통해서 소녀가 점점 치유되는 것처럼 나 또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어린 왕자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그렇듯이,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들에게 감사해진다. 한편으로는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깨져버린 사랑과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슬쩍 나의 자랑을 늘어놓던 일들이 떠올라서 얼굴이 화끈해지기도 한다. "나 또한 속세에 찌들어서 물질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둔 순간이 있었나?" 하면서 반성도 하게 된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돌아가서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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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성장과 Mr. Prince

 

그러나 소녀와 할아버지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긴다. 어머니는 더 이상 소녀가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겨우 몰래 찾아간 할아버지에게서 ‘어린 왕자’ 이야기가 이별로 끝난다는 사실을 들은 소녀는 실망감에 휩싸인다. 언젠가 할아버지와도 이별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소녀는 할아버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마주한 할아버지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목격한 소녀는 스스로 어린 왕자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소녀는 할아버지의 집에 있던 고장 난 비행기를 타고 회색빛의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소행성에 도착하게 된다. 소녀는 그곳에서 모든 기억을 잊고 어른이 되어 청소부로 살고 있는 어린 왕자, Mr. Prince를 만나게 된다. 어른들이 통치하고 있는 그 행성에서는 "어린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빼앗고 모두가 억지로 빨리 어른이 되도록 하고 있었다. 소녀는 어린 왕자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함께 그곳을 탈출한 후 각자의 세계로 돌아간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소행성에서 오랜 시간 방치되어 결국 바스러진 장미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며 소녀에게 장미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잘 보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소녀는 현실 세계에서 할아버지와 재회하며 이별이 곧 상실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소중한 존재는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며 성장한다.

 

영화는 마지막 챕터에서 이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이별은 조용히,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상대와 언제, 어떻게 멀어졌는지도 모른 채 씁쓸함만 남긴다. 또 어떤 이별은 갑작스럽고 날카롭게 찾아와 마음에 깊은 상처와 충격을 남긴다. 하지만 영화는 이별 그 자체에 집중하며 슬퍼하기보다는 함께 보낸 시간과 의미를 잊지 않기를 당부하고 있다. 사랑과 이별, 삶과 존재에 대해 이토록 많은 사색을 하게 하는 <어린 왕자>는 어렸을 때 내가 받은 인상과는 정말 다르다. 시간이 흐른 후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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