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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예술가의 세계를 아는 데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술은 예술가가 지닌 의식과 불가분하다는 당연한 이치를 이해하면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 예로 최근 논란이 되었던 지브리 생성형 AI 일러스트가 비난받았던 배경을 생각해볼 수 있다. 부족한 저작권 의식에 관한 비판이 주를 이뤘지만, AI에 프롬프트를 입력해 수 초만에 지브리 화풍의 일러스트를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가 환경 파괴에 대한 경종을 울렸던 여러 지브리 작품의 정신과는 대척점에 있는 행동이라는 점에서도 비난을 산 바 있다. 한 예술가의 세계를 안다는 것은 곧 그의 예술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물려받는 행위와 같다.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남겨진 예술 작품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퇴색되지 않는 연민과 분노, 슬픔과 사랑 등의 감정을 발견하면서 삭막한 현실 속 말라가는 감성에 물을 주고 인간성을 지키는 이유를 되새기게 된다. 예술을 즐길 때 작품 자체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나 생애 주기에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누구나 이렇게 무언가를 느끼고 싶다는 욕망을 막연히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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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를 깊이, 제대로 알아가는 일은 한 사람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며 표현 자체에 대한 인식에만 머무르지 않게 해준다. 작가가 진정으로 초대하고자 했던 곳으로 걸어들어가며 그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마이아트뮤지엄의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은 알폰스 무하의 스타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만들어진 신비의 베일을 한꺼풀 벗겨준 좋은 전시였다.

 

 

 

무하의 아르누보, 그 중심에 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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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고 느꼈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아름다움의 집약체'였다.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무하의 원화를 감상하며 아르누보 예술가로서의 그의 절묘한 테크닉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무하는 예술을 일상으로 데려오기 위한 아르누보 정신에 따라, 극도로 치밀한 디테일 묘사와 사실성에 집중한 전통적인 예술과는 달리 절제된 묘사로 오묘한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실제로 원화를 가까이에서 보니 무하의 그림을 볼 때 현대의 일러스트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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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선 하나 비져나오지 않은 단정한 드로잉으로 더욱 부각되는 디테일의 아름다움, 색의 조화, 선의 굵기를 조절해 핵심 주제와 주변부에 대한 시선을 적절히 분산하는 스타일은 뒤로 갈수록 능숙함이 배를 더해갔다. 이러한 그의 높은 집중력과 관찰력에서 비롯된 표현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이 묻어나왔다. 특히 포스터 디자인 속에서 그가 그려낸 인간은 생동감이 넘친다.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광고에서 인간 피사체를 내세운 데는 극장의 포스터 디자인으로 유명세를 얻은 무하의 인지도를 백분 활용하려는 광고주의 영향이 크겠지만, 눈에 보이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리는 인간 피사체는 자본 너머 여전히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게 하는 생명력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곧 브랜드와 상품을 사람들이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유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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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을 쭉 스캔하다 보면 한 가지 무시할 수 없는 특징을 또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여성 피사체에 대한 관심이다. 무하는 남성 피사체도 그렸지만, 그의 그림은 대부분 여성을 피사체로 삼았다. 단순히 예술 사조의 특징이라고만 이해하기에는 그가 이후 슬라브 민족을 위해 그린 그림 속에서도 소녀나 여성의 형상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그가 순수하게 지향하는 예술의 방향과 여성이 서로 깊이 결부된 존재가 아닐지 추측해보았다.

 

무하의 그림 속 여성 피사체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가 그린 계절 연작에 등장하는 여성은 자연 그 자체로 치환되는데, 자연이 배경으로 묘사되지 않고 여성이 자연을 그려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때문에 인간으로 무엇이든 표현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의 스타일을 함축하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그림과 디자인을 조화시키는 그의 예술은 인간의 시선을 가장 오래 머무르게 하고 가장 쉽게 시선을 잡아끄는, 인간 피사체를 보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그의 순수한 관심과 절묘하게 맞물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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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그의 상업 예술 작품 구간을 지나치면, 슬라브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한 명의 국민으로서의 무하를 발견할 수 있다. 전시의 끝자락에서는 아르누보 정신 속에서 그가 지닌 민족과 이웃에 대한 애정과의 접점을 발견하고 무하라는 사람과 무하의 스타일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그가 그렸던 그림은 민족의 단결을 염원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주제를 담고 있다. 광고와 상품 디자인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산뜻하고 온화한, 신성한 인간이 아니라 동등한 권리를 지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바라보고 궐기하기를 권유하는 결의에 찬 눈빛을 지닌 사람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1926년 프라하의 제8회 소콜 축제, 슬라브의 형제, 블타바강 위의 축제 EIGHTH SOKOL FESTIVAL IN PRAGUE, 1926, FRATERNAL SLAVDOM, A GALA PERFORMANCE ON THE RIVER VLTAVA.jpg

 

물론 그가 체코에서 체류하는 동안 그렸던 그림들이 전부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무하 특유의 아름다운 여성 피사체가 민족을 수호하는 여신이나 슬라브 민족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당당한 소녀의 모습으로도 그려졌다. 상업 예술의 대가답게 절묘한 구도와 여러 인물의 적절한 배치와 적절한 색조를 이용해 이 시기 그림은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을 자연스럽게 덜어내면서 주제의식에 집중하게 하는 듯했다. 그가 인간을 그리는 방식은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점을 이 구간에서 특히 실감했다. 그의 그림은 이렇게 인간 그 자체와 인간이 지닌 의지의 표상이다.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에게 상품과 브랜드를 소구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데 회의감을 느꼈을 그의 마음에 그의 그림을 통해 공감할 수 있었다.

 


_북 보헤미아 국가 연합 복권_ 포스터 시안, 1912 LOTTERY FOR THE NATIONAL UNION OF NORTH BOHEMIA,  1912 (LOTERIE NÁRODNÍ JEDNOTY SEVEROČESKÉ, 1912).jpg

 

 

전시를 보기 전에도 무하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시를 보고 나오니 그것은 그저 인지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예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듯 예술가를 보지 않고는 보이지 않는 그림도 있는 것이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세상을 위해 예술을 하는 예술가의 소명이라면 그 한 명의 사람을 알아주는 것이 곧 예술을 보는 우리가 그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방법이 아닐까. 예술가가 두른 신비를 동경한다면 그 신비의 근원을, 그의 영혼을 알아줄 가치와 이유도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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