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모네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우연히 본 그림은 계속 생각났다. 평소 자연과 공원의 자연스러운 풍경을 좋아하는 내게 모네의 작품은 그야말로 '취향저격'이었다. 자연의 풍경을 부드럽게 화폭에 담는 모네라는 화가에 관해 강렬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무턱대고 도서관에서 찾은 책 '모네 : 빛과 색으로 완성한 회화의 혁명'은 작가가 직접 프랑스 지베르니 등 모네가 생활하던 공간을 돌며 보다 생생한 모네의 일대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전시회의 도슨트처럼, 작가의 눈으로 직접 담은 모네의 생활공간과 유럽의 풍경은 모네의 그림을 현대와 연결 지어 볼 수 있었다.
야외에서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캔버스에 담은 모네의 삶은 현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다. 특히 세상의 변화와 고난, 역경에 대응하는 그의 모습과 그의 그림을 보며 모네만의 부드러운 강인함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고난에 대응하는 모네
‘모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수련’일 것이다. 깊고 푸른 연못에 떠 있는 수련과 물에 닿아 반사되는 빛의 색감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수련’은 연작이라는 점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말년의 모네는 자기 집 정원의 같은 연못을 200장 이상 그렸다고 한다. 온도, 습도, 공기가 변함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그려진 ‘수련’ 연작은 그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 Claude Monet, Water Lilies, Imag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그러나 고요하고 아름다운 ‘수련’이라는 그림 이전에는, 비주류 화풍으로 비웃음을 받았던 모네의 젊은 시절이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인상주의 화풍은 주류 화풍에 반하는 평가를 받았다. 일상의 인상을 그대로 화폭에 담는 화가들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동료들과 함께 ‘화가, 조각가, 판화가, 무명 예술가협회’를 만들어 따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사회에서 ‘비주류’로 낙인찍히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한다는 건, 생각보다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몇 달간 고생하며 그린 그림을 전시회에 내걸어도 돌아오는 건 비난과 야유 뿐이고, 내 작품의 가치를 끊임없이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버텨내는 게 어려울 것이다. 말년의 ‘수련’ 연작은, 이 모든 고난을 묵묵히 이겨내고 계속해서 붓을 잡은 모네에게서 탄생한 작품이었다.
게다가 말년이 되어도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히 강렬했다. 백내장으로 색을 식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병을 앓기 전 모네는 대상과 자신 사이의 ‘덮개’를 그려왔다. ‘덮개’는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빛, 바람, 안개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병으로 인해 이 ‘덮개’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날씨와 인상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이지 않듯이, 특정한 순간에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 모네에게는 분명히 존재하는 인상이었던 것이다.
- '모네 : 빛과 색으로 완성한 회화의 혁명' p.231~232
그럼에도 그는 자기 눈으로 보이는 대상과 색을 활용해 그림을 그렸다. 이 당시 그가 그린 작품을 보면 기존의 그가 사용하던 색감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에 그린 작품과 동일한 ‘수련과 일본식 다리’이지만 형상이 불분명해지고 거친 색감과 붓질로 표현되었다. 말년의 모네만이 포착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기존의 화풍에 비해 보다 추상적인 모네의 후기 작품은, 당시 새로운 물결로 떠오르던 추상회화의 시작점으로 평가받았다.
▲ Claude Monet, The Japanese Bridge (W.1929). Imag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청력을 잃어가는 과정에서도 음악을 쓴 베토벤처럼, 모네도 예술가에게 있어 중요한 눈이 병으로 인해 쓸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모든 직업에 있어 타고난 재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가고 고난을 어떻게 이겨나가는지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모네를 통해 배운다.
정원과 수련의 비밀
말년에 그가 그린 '수련과 일본식 다리'는 특히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색감은 사라지고 어둡고 묵직한 색채가 화폭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의 배경이 된 모네의 정원과 연못이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일본 판화 ‘우키요에’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물’이라는 소재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모네는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아, 일본 판화에 등장하는 아치형 다리와 연못, 등나무가 있는 신사의 모습을 참고해 지베르니의 정원을 꾸몄다. 그리고 이 정원에 ‘물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Claude Monet, Water Lilies and Japanese Bridge, Imag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실제 이 책에 실린 ‘물의 정원’의 실사 사진을 보면, 모네가 그린 ‘수련과 일본식 다리’와 그 풍경이 거의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녹음이 짙은 계절의 모습은 동화에서 나올법한 환상적인 느낌까지 든다. 사진을 좀 더 오래 응시하고 있으면 마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배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모네가 거주하던 실제 지베르니의 집에는 일본풍 그림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다. 실제 일본 작품부터 자신이 그린 그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일례로, 모네의 두 딸이 엡트강에서 배를 타는 장면을 그린 '엡트강에서의 뱃놀이'는 단색 면 위에 긴 배와 노가 서로 다른 사선의 방향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구도는 일본의 우키요에에서 찾아볼 수 있다.
▲ Claude Monet, The Canoe on the Epte, Imag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인간의 생활상을 자연스럽게 묘사함과 더불어 이렇게 묘한 동양풍의 느낌이 그의 작품에 드러나서인지, 모네의 작품은 전혀 낯선 세계의 그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자유롭고 진보적인 행보와 특별한 예술적 취향까지 들여다보니 비로소 모네라는 작가가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예술가
게다가 모네에 대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바로 모네의 현실적인 판단과 행동력이었다. 흔히 순수 예술을 생각하면 자기 작품에만 몰두하는 예민한 작가를 떠올린다. 그러나 모네는 작품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인간관계 또한 적극적으로 꾸려나갔다.
이 책에서는 모네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모네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그의 최초의 연작인 ‘생리자르역’과 관련된 일화는 모네의 사업가적 수완을 잘 보여준다. 당시 증기기관차를 직접 그리기 위해서는 역장의 허락을 받아 역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모네는 특유의 말솜씨를 이용해 역장에게 북역을 그릴지, 서역을 그릴지 고민 중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러자 역장은 북역에 명예를 뺏기기 싫어 허가를 내주었다는 일화이다.
▲ Claude Monet, The Saint-Lazare Station, Imag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이외에도 모네는 존경하던 마네의 작품이 외국으로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 문화계 인사들을 설득하여 모금 활동을 하기도 했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시회를 여는 것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당시 세잔이 모네를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인식하기도 했다는데,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예술가는 작품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모네가 살던 당대에는 그러한 기조가 더욱 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있어 가능하다면, 동료와 긍정적으로 교류하고 필요할 땐 직접 기회를 만들어내는 능력 또한 필요함을 모네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는 개인적인 작품 활동과 국가라는 경계선을 한계로 두지 않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예술가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재능과 미술사적 가치 못지않게 사회적 관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중략) 적어도 이들이(인상주의자들) 개별적으로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했다면 살롱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못했을 것이며, 프랑스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미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 '모네 : 빛과 색으로 완성한 회화의 혁명' p.263
또한 모네는 후원자들과의 관계도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돈을 밝히는 존재가 아닌 자기의 예술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동료로 인식하였고, 덕분에 그의 작품은 유럽을 넘어 미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예술 활동을 위해 필요한 자금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혹자는 모네를 굉장히 수완이 좋고 정치적인 인물, 혹은 세잔의 표현대로 돈을 밝히는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가 다른 화가들에 비해 현실적인 면에 조금 더 밝았던 것이 아닐까? 새로운 미술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을 읽어내고, 그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뜻이 맞는 동료와 후원자들을 모아 없던 길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 '모네 : 빛과 색으로 완성한 회화의 혁명' p.263
모네가 걸어온 발자취를 보며 모네에 대한 작가의 평가에 크게 공감했다. 작가의 말대로 모네는 남들보다 기회를 발견하고 돈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한 시각이 좀 더 열려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등극한 그의 화풍처럼, 모네는 예상보다도 더 유연하고 신선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술가의 일대기에서 인간관계와 사회적 처세에 대해 새롭게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작품의 뒷이야기 정도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모네가 살아온 방식과 주변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등 지금의 내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책 곳곳에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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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는 모네는 내게 ‘미술 입문의 창구’가 되었다. 그가 화폭에 담은 수많은 자연의 풍경과 빛, 공기와 바람은 내게 큰 인상을 주었고, 이 책을 읽으며 모네의 일대기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제 ‘수련’을 볼 때, 그저 아름다운 연못이 아닌, 모네가 끝까지 버텨낸 생존과 혁신의 흔적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이 예술을 즐기는 묘미이지 않을까. 내게 인상을 준 작품이 이 책을 통해 내 안에 깊게 새겨졌다.
더불어 실제 모네가 살았던 공간을 탐방하며 기록된 실사 사진을 통해 한 번쯤 모네의 생활상을 담은 지역들을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남긴 그림과 실제 풍경을 대조하며 모네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