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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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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정복욕


 

'문명하셨습니다.'라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시드 마이어의 문명(이하 '문명')> 시리즈는 고약한 중독성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외부 사회와 단절된 채 죽은 듯 문명에 빠져 있는 모습을 빗대어 등장한 '밈'이 바로 '문명하셨습니다' 이다. 몇 주 전 파격적인 연말 세일에 이끌려 문명 6를 구매하고 플레이해 본 결과, 그 밈이 결코 거짓에 기반하지는 않았음을 깨달았다.


플레이어는 지도자 캐릭터를 선택하고, 각 캐릭터의 특성에 맞게 작은 땅덩어리부터 시작해 영토를 넓히고, 과학, 종교, 문화, 그리고 군사적 발전을 이루며 융성한 문명을 만들어 나간다. 특징적인 점은, 이 게임은 턴제 게임으로 가상 AI 혹은 다른 멀티플레이어와 마치 보드게임을 하듯 돌아가며 한 턴씩 수를 두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마도 이 턴제라는, 온라인 게임에서 흔치 않은 진행 방식이 문명 6의 중독성에 이바지한 듯하다. 사실, 문명은 그렇게까지 도파민 가득한 게임은 아니다. 화면을 보고 고민하다 보면 눈도 머리도 아프고, 잔잔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유튜브에 올라오는 문명 플레이 영상은 내가 문명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을 때도 일종의 ASMR로 틀어 두곤 했었다. 다만, 아주 조금만, 딱 한 턴만 더, 하며 조금씩 시간을 연장해 나가다가 밤샘으로 이어지는 중독성을 갖게 된 게 아닐까?


문명에는 총 여섯 가지 승리 방식이 존재한다. 지배 승리, 과학 승리, 문화 승리, 종교 승리, 외교 승리, 점수 승리이다. 각각 요구 조건이 다양해서 목표 승리에 따라 게임을 즐기는 방식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선택했던 승리 방식은 다름 아닌 지배 승리였다. 지배 승리는 모든 문명의 수도를 빼앗아 자신의 도시로 보유할 경우 달성할 수 있다. 수도를 편입시키는 방법도 존재하지만, 주로 군사 점령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설령 지배 승리를 택하지 않더라도, 군사 기반을 다지는 건 승리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군사력을 갖추지 않고 다른 분야의 발전에만 몰두하다가 약한 군사력으로 공개 비난을 당하거나 전쟁이 선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방식의 승리를 노리는 과정에서도, 플레이어의 문명보다 더 과학, 문화, 종교, 외교 등이 발달한 국가를 군사적으로 공격하면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쉬워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군사력 싸움으로 귀결되는 모습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군사 지배나 전쟁은 잔잔한 진행 와중에 일종의 도파민 가득한 이벤트이기 때문에, 재미의 측면에서도 절대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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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실제 역사 속에서 전쟁을 일으킨 인물들은 마치 게임을 하듯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요소를 통제할 수 있다는 권력과 정복의 욕구가 맞물려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인명 피해와 인권 침해로 이어졌다. 아주 오래된 게임인 바둑이나 장기조차도 정복과 지배가 승리의 요건임을 떠올린다면, 인간은 권력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내재한 폭력성을 발휘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당장 나조차도,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배우고 공부하면서 문명 6에선 표트르 대제의 세계 정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런 고민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사실 재미있자고 켠 게임에서 이토록 진지한 사색을 한다는 건 웃기기도 하다. 그런데, 게임이라는 현상학적 세계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행동은 정말 현실 세계와 무관할까?

 

사실, 게임과 현실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게임은 현실의 충실한 모방이며, 개인은 게임 속에서 수행적으로 가상의 현실을 구성한다. 물론, 당장 평범한 개인이 '무력 정복'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실천에 옮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그 행위를 선택할 때의 '가치관'을 학습한다. 예컨대, 종교 승리와 정복 승리의 두 가지 가능성 중, 정복 승리가 더 빠르고 직관적이며 자극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한 경우를 보자. 그러한 선택이 반복될 경우, 플레이어는 '속도', '직관', '자극'이라는 선택의 기준을 내면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종교 승리 vs 정복 승리'와 긴밀하게 닮아 있는 현실의 선택에 적용한다.

 

 


게임의 정치 사회적 역할


 

이 논의를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가? 문명 6의 사례를 통해, 인간은 게임을 통해 폭력성을 발휘하며, 이것이 현실의 삶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그렇다고 게임의 폭력성이 부도덕하다거나 용인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로는, 앞서 이야기하였듯 게임 자체가 '쾌'의 감정이라는, 그 자체로 비폭력적이며 평화적이기까지 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게임이 설령 폭력성을 드러낼지라도 이를 통해 유희 그 이상의 정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의 폭력은 정당한가?'라는 논의는, '문학, 회화, 영화, 연극 등, 예술이 도덕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 게임은 단순한 유희 그 이상의 예술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 게임은 현실의 모방이며, 게임은 종종 인간의 삶과 관련된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이때, 앞서 논의했듯 게임 속 플레이어가 발휘하는 폭력성은 여느 예술과 마찬가지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매개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1) 연극적 몰입

 

하나는, 연극적 몰입을 극대화함으로써 가능하다. 특히, 플레이어의 선택이 나비 효과처럼 스토리라인에 영향을 미치는 '인터렉티브 게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컨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안드로이드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안드로이드의 권리 투쟁을 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플레이어는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서, 그리고 폭력적 투쟁과 평화적 운동 사이에서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한다.

 

플레이어의 선택은 즉각적이거나 장기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또한, 플레이어는 스토리라인에 몰입하고, 게임 속 인물에게도 상당한 감정 이입 상태에 놓인다. 폭력과 전쟁을 선택할 경우 애착을 가진 인물이 죽거나 다치는 등 그것의 가시적 결과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은 더욱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설령 가상 현실일지라도 플레이어는 자기 선택의 무게와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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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낯설게 하기

 

반대로, 몰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낯설게 하기' 기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게임이 가장 닮아 있는 예술 유형은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은 이미 제작된 매체를 반복적으로 재생하지 않고, 현장성과 동시성을 지닌다. 이 때문에, 연극의 관객은 현장에 대한 감각을 온몸으로 수용하고 또 생산하며, 배우와 상호작용하거나 극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며 비교적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게임에서 플레이어 역시 주어진 플랫폼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통해 게임을 전개해 나간다.

 

연극에서 '낯설게 하기'는, 브레히트가 창안한 개념으로, 관객이 극 중 상황에 감정 이입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극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조성하는 기법이다. 연극에서 이것은 배우가 관객을 향해 말을 건네거나, 독백 또는 해설하거나, 무대 장치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선택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여타 다른 예술 형식과 비교했을 때 연극적 몰입의 정도가 가장 높다. 이 때문에, '낯설게 보기 효과'를 통해 그 몰입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의 낙차 역시 가장 크다.


게임에서의 '낯설게 하기'의 한 방법은 '제4의 벽'을 초월하기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언더테일(undertale)>이다. 이 게임에서 지하 세계를 탈출하는 캐릭터는 만나는 몬스터를 죽이거나 자비를 베풀어 방생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 선택에 따라 게임 속 인물들의 대사나 캐릭터 디자인 등이 변화하고, 예컨대 캐릭터가 지하 세계에서 자신을 돌본 인물을 죽이기로 선택하는 경우, 메인 화면의 NPC는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던가 '얼마나 더 죽일 것이냐'는 대사를 던진다. 이때, 이 대사는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화면 너머의 플레이어를 향한 조롱과 비판이다. 이처럼 게임과 현실 사이 장벽이 무너질 때, 플레이어는 게임 속 상황에 몰입한 채 폭력성을 발휘하다가도, '낯설게 보기 효과'를 통해 자신의 폭력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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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로서의 게임


 

지금까지, 게임에서의 윤리적 딜레마와 게임이 수행할 수 있는 반성적 역할에 대해 논의하였다. 게임은 인간의 내면화된 폭력성을 발휘하는 장이면서도, 동시에 그런 폭력성을 성찰할 수 있는 예술적 체험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게임 속 폭력성 그 자체의 정당성보다도,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메시지와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WHO가 게임에 질병코드를 부여했으며, 오랜 기간 한국 사회는 아이들의 중독을 우려해서인지 게임을 '해로운' 것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최근 이스포츠가 인기를 얻으면서 그러한 선입견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다. 이로부터 나아가, 스포츠로서의 게임뿐 아니라, 문화예술로서의 게임의 역할에도 더 주목해야 한다. 물론, 문화예술진흥법상 게임은 '법적으로'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지만, 게임의 예술적 지위는 '사회적으로' 더 많이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


게임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여느 예술과 마찬가지로 정치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즐기는 현대 사회에서, 문화예술의 새로운 장르로 바라본 게임은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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