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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카프카와 그의 절친 막스 브로트, 그리고 문학적 유산을 둘러싼 복잡하고 긴 법적 분쟁을 마치 한편의 다큐를 보는 듯 다뤄 책이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작가는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 무력함을 글로서 뛰어나게 포착해낸다. 너무나 위대한 탓일까, 그는 자신이 쓴 글조차 자신의 맘대로 없애지 못하고, 절친에 의해 출간된다. 이 책은 여기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표지.jpg


 

베냐민 발린트가 쓴 이 책은 2016년 이스라엘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소송 과정을 기록하며,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윤리적, 정치적 이슈들을 심도 있게 다룬다. 책의 끝으로 갈 수록 우린 카프카, 예술가, 문학가, 그리고 그를 정의내리는 국가와 사상 종교 개인과 관련된 답할 수 없는 질문으로 빨려들어간다.

 

 

 

끝나지 않는 즉결심판


 

이 도서는 카프카의 유고 소유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시간 순으로 다루고 있다. 소송의 타임라인과 각 진영의 주장을 먼저 정리를 하고싶다.


[카프카 원고 반환 소송 타임라인]


1939년 -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의 원고가 담긴 트렁크를 가지고 프라하를 탈출하여 텔아비브에 정착함.


1968년 - 막스 브로트 사망. 자식이 없던 그는 전 재산을 비서였던 에스테르 호페에게 남김.


1974년 - 에스테르 호페의 카프카 원고 소유권을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내려짐.


1988년 - 에스테르 호페가 카프카의 원고 [소송]을 경매에 내놓아 200만 달러에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에 낙찰됨.


2007년 - 에스테르 호페가 사망한 후,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 에스테르의 딸 에바 호페에게 카프카와 브로트의 원고 반환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 소송이 텔아비브 가정법원에서 시작.


2007년~2012년 - 텔아비브 가정법원에서 소송 진행.


2012년~2015년 - 소송이 텔아비브 지방법원으로 넘어가 진행됨.


2016년 - 이스라엘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옴. 에바 호페에게 원고 반환 명령이 내려짐.


2018년 - 이스라엘 승소라는 최종 판결에 따라 원고 인도가 진행되던 중, 에바 호페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고관절 골절 부상으로 삶의 의지를 잃은 에바 호페, 2018년 8월 4일, 향년 84세로 사망함.

 

사건의 발단부터 본다면 책은 거의 카프카 사후의 80년의 시간을 다룬다. 카프카 타계 100주년이 되는 올 해, 책을 읽고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걸보니 카프카는 죽어서도 편할 것 같지 않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고, 그 무엇도 소유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예술가가 남긴 유산을 가지고 우리가 왈가왈부하는 이 상황이 참으로 우습지만, 그럼에도 책을 통해 되돌아본 100년은 마냥 낭비는 아니었다는 생각이든다.

 

사건 속 얽혀있는 개인들의 관계, 입장, 그리고 개인을 관리하고 있는 집단과 국가, 종교, 직업.

 

예술 작품을 두고 하는 소송이라기에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날 것들은 소송과 얽힌 주변인들의 입으로 또 다시 문학화 되고, 가시화된다.

 

결국, 2024년에 사는 우리는 결말을 알지만 그 판결은 판결이고, 그 전에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입장들을 조금 더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에바 호페


 

정당한 상속 재산 - 에바 호페는 카프카의 원고가 자신의 정당한 상속 재산임을 주장. 브로트가 사망하면서 비서였던 에스테르 호페에게 유산을 남겼고, 에스테르가 사망한 후 그 유산이 딸인 에바에게 상속된 것.

 

개인 소유물의 보호 - 이 소송은 국가가 개인의 소유물을 강제로 국유화하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카프카의 원고는 브로트와 에스테르 호페, 그리고 에바와의 사적 관계에서 주고 받아진 것이다.

 

법적 선례 - 1974년 에스테르 호페의 원고 소유권을 인정한 법원 판결을 근거로 가져오며 에스테르 호페의 소유권이 법적으로 확립되었음에도 이를 뒤집으려는 이스라엘의 시도에 억울함을 주장한다.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유대 민족의 문화재 - 카프카의 유산은 유대 민족의 중요한 문화재로서 이스라엘에 있어야 한다. 카프카의 가족과 친구들이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의해 살해된 상황에서, 카프카의 유산이 독일에 있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신탁 - 브로트가 에스테르 호페에게 원고를 단순히 보관하도록 한 것이지, 소유권을 영구히 넘긴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신탁으로 봐야하며, 이 신탁의 관리 권한은 상속될 수 없다.

 

문서 보관에서의 안정성 - 카프카의 문서가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서 안전하게 보관되고 연구될 수 있음을 강조. 유대 민족의 문화적 유산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데 역할을 충분히 한다.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



브로트의 의지 - 브로트가 생전에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를 방문하여 자신의 문학 유산을 그곳에 두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을 근거로, 브로트의 원고가 마르바흐에 보관되어야 한다.

 

문학적 자산의 보호와 연구 환경 - 마르바흐 아카이브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문학 소장품과 연구 자료를 보유한 기관으로, 카프카의 원고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이미 많은 저명 작가들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카프카의 유산을 추가하여 연구하고 보존하는 데 필요한 전문 인력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

 

중립적인 입장 - 독일 측은 소송 내내 자국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카프카와 브로트의 문학적 유산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소송 제기가 사유재산 압수를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판결: 이스라엘 승소


 

결과 - 에바 호페는 카프카 원고를 포함한 브로트 유산 전부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양도해야 할 것이며, 양도 보상금은 없다.


근거 - 브로트가 원고를 물려줄 때는 적절한 공공 기관을 택해 기탁해주기를 바라면서 물려주었을 거라는 것. 그렇기에 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본인의 유고 인세에 대한 것으로 한정했을 것.

 

결과 - 그렇기에 인세가 발생할 경우엔 에바 호페가 전액을 수령하지만 무엇을 출간할지는 국립도서관이 결정한다. 이 판결에 따르면 에바 호페는 40년간 브로트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기에 법정이 유산의 기탁 기관의 선정할 권한을 갖는다.

 

근거 - 브로트의 유언장 내용을 바탕으로 가장 먼저 언급된 유산 수령 기관이 국립도서관이다. 이것을 그가 이곳을 가장 선호했다는 근거가 된다. 또한 위대한 브로트는 독일어권 문화의 산물이었긴 하지만 이스라엘을 처소이자 활동 거점으로 삼은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과정에서 카프카가 브로트에게 준 원고와 카프카 사후에 브로트가 그의 책상에서 가져간 원고는 구분한다. 후자는 점유물이지 소유물이 아니지만 카프카 상속인이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결과 - 그렇기에 후자 또한 함께 국립도서관에 기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국립도서관이 그의 문학적 부활의 적소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

 

이렇게 정리를 한 것이 책이 갖고 있는 사건의 레이어를 납작하게 만드는 것일까봐 조금 걱정이 된다.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이것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다층의 논점임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그저 내가 자꾸 헷갈려서, 나중에 참고하고 싶어서 정리하는 것이다.

 

내가 흥미로웠던 부분은 최종 판결이 난 후 말들이다. 분명 이성적이고 잘 배운 똑똑한 판사들이 내린 판결인데, 왜 이렇게 모호한 걸까.


"그냥 절망스럽기만 한 게 아니야 겁탈당한 기분이야." - 에바 호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도서관이 끼어들었으니 망정이지, 호페씨의 수상쩍은 손에 계속 맡겼으면, 자료 중에 많은 부분이 -그냥 종잇장이니까- 남아나지 않았을지 모르지." - 스탠리 콘골드(프린스턴 대학 명예 교수, 카프카 학계 수장)


"내 관점에서 본다면 카프카 원고가 가 있어야 할 곳은 저 달이다" - 텔아비브 시인 랄리 미하엘리


"브로트가 그 원고를 구해낼 수 있었던 걸은 전적으로 시온주의 사업 덕분이고 이슈브(1948년 건국선언보다 먼저 팔레스타인 땅에 존재했던 유대인공동체) 덕분이다." - 카를 에리히 그뢰징거

 

각 진영의 주장은 이 소송을 법적, 윤리적, 문화적 논점을 다층적으로 확장시킨다.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카프카와 브로트의 우정이 어떻게 문학적 유산이라는 공적 소유물로 확장되고, 개인의 소유권 문제를 넘어 국가 간의 문화적,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되는 과정이다.

 

카프카의 사후생이 카프카적인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는 점(법원,국가, 작품 그 무엇도 카프카를 정의 내릴 수 없다는 점)은 모든 것도 그가 의도한 서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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