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평범한 일상 [영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글 입력 2024.06.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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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he Zone of Interest

 

검은 화면 위에 영화의 제목이 하얗게 뜨고 서서히 사라진다. 검은 배경만 남은 관객은 섬뜩한 사운드를 체험한다. 이 영화, 포스터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아주 기이하고 무서운 영화일 테니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구나!


그런 다짐을 견고히 할 때쯤 차분한 광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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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흐르는 한적한 곳, 어느 가족이 돗자리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풀숲을 거닐고, 물놀이를 하는 평화로운 일상이다. 다 같이 피크닉을 즐기다가 해가 져 갈 때쯤 차를 타고 투덕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평화로운 휴일을 마무리한다.


다음 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어머니는 집에서 정원을 가꾸고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군인인 아버지 루돌프 회스는 군복을 차려입고 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중이다. 건물을 이렇게 설계하면 몇 시간 안에 다 태울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생일인 그를 축하해주기 위해 동료들이 집에 방문한다. 군복 위에 하켄크로이츠 완장을 찬 그들은 이렇게 경례한다. ‘하일 히틀러!’


그때야 비로소 집을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 쳐진 회색 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높은 장벽 너머로는 여러 개의 굴뚝이 설치된 거대한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어머니는 어디선가 난 옷들을 가정부들에게 골라보라고 한다. 형은 어디선가 난 이빨을 만지작거린다. 동생은 총을 든 군인 피규어를 줄 세운다. 그리고 그들이 자주 가는 강가에 어디선가 나온 물질들이 떠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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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톤의 영상, 아름다운 정원, 맑은 하늘, 어느 가족의 일상. 귀를 닫고 눈만 뜬다면 그리고 몇 가지 이질적인 소품들을 제외한다면 우리들의 일상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에서 자그맣게 무언가 들린다. 우리의 일상에는 없는 작은 비명과 총소리가. 그렇게 이질감을 느끼면 소리가 더 선명해지는 듯하다. 

 

너무나 예쁘게 피어난 꽃들이 지르는 듯한 비명 소리에 이 꽃을 예쁘다고 느껴도 되는지 불편한 마음이 든다. 스크린 너머의 관객인 나는 냄새까지 맡을 수 없다. 그 꽃에서는 정말 향기가 났을까.


눈이 있고, 귀가 있기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저 가족들은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배경음은 자연스러운 소리다. 그들의 일상에 깔린 절규 소리는 배경음이다. 타인의 대화하는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에 신경 쓰지 않는 나의 일상처럼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것이며 일상적인 것이다.


우리는 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 다른 습관을 지니고 삶을 살아간다.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은 편리한 인프라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돈이 공기와도 같다. 그걸 누리고 사는 사람은 그것이 없는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유대인 학살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악행이란 태어날 때부터 당연한 삶의 방식이다. 루돌프 회스 가족은 너와 나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것이지 우린 틀린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알고 있는 영화의 법칙이 있다. 주인공은 삶에 어떤 중대한 사건을 겪고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저 변화 없이 비슷비슷한 하루들을 보내는 그들을 본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에도 그들은 여전하다. 정말, 정말로, 그들에게 악행이란 일상과도 같은 것인가 할 즈음 루돌프 회스는 퇴근하다 헛구역질한다. 정원을 가꾸는 아내는 이 식물이 자라 저 담장을 다 덮을 것이라고 말한다. 

 

떳떳지 못하고 숨기고 싶어 하는 그들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 악은 틀린 것이며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갑자기 죄책감을 느끼고 악행을 중단하기를 기대할 수 없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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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one of Interest


다시 한번 이 영화의 제목을 상기시킨다. 내가 기대하는 주인공의 변화라는 영화의 법칙은 무너졌지만, 영화를 통해 내 삶을 되새김질을 할 기회를 주는 영화의 법칙은 아직 존재한다.


관심 영역 안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들의 관심 영역 안에서는 정원을 꾸미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충실히 본인의 행복을 찾으려 한다. 그 영역 밖 타인의 고통에 무심할지라도 말이다. 


내가 속한 나라, 내가 속한 도시, 내 집. 나의 영역. 내 가족들과 친구들과 나의 고통에는 철저히 아파하고 행복을 끔찍이 위하면서. 다른 나라의 전쟁과 빈곤에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불공평함에 시위하는 이들에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교통이 불편하다고 투덜거린다. 내 영역에 전단지 두는 것이 싫어 전단지를 건네는 손을 외면한다. 그리고… 무언가 도파민 터질 만한 것을 기대하고 영화관에 들어간다. 도파민이 없는 그들의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보고 나오며 눈 뜨고 잤다고 말한다.


타인의 행복과 고통에 대한 무관심과 나의 행복과 고통에 대한 이기심이라는 당연함.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내 영역을 둘러싼 장벽을 허물어 볼 때다. 이 영역 밖에는 무수한 고통이 존재한다.

 

 

[이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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